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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일주/러시아

러시아 타타르스탄 헬프엑스: 바냐(사우나)와 은하수 (여행 40일째)

2016년 8월 27일 타타르스탄 공화국 슈키예보(Сюкеево)


[등장인물]

보바(블라디미르): 헬프엑스(Helpx) 호스트. 일본 담배 회사 영업 사원. 올가의 남편.

올가(올렌카):헬프엑스(Helpx) 호스트. 가정 주부. 블라디미르의 아내.


1. 올가는 어제 새벽 3시까지 술 마신것이 무리였는지 하루 종일 침대에서 일어나지 못했다. 


블라디미르와 간단한 아침 식사를 하고, 풀 베기와 풀 긁어 내기를 시작한다. 보바와 올가네 집은 차고 겸 창고로 쓰이는 건물, 공구 창고(지하에는 식자재 보관), 바냐(사우나), 주거용 건물 이렇게 4개의 건물과 앞뜰 뒷뜰 옆뜰이 있는데, 이 넓은 집과 정원이 한국 돈으로 약 2000만원 정도 한다. 보바가 정원의 과일 나무를 하나 하나 보여주며 먹고 싶은 대로 따 먹으라고 한다. 에덴동산에 온 기분이군. 정원이 넓어 관리할 시간이 없어서인지 풀이 무성하게 자라있다. 보바가 제초기를 돌리기 시작하고 나는 갈퀴로 풀을 긁어 낸다. 그러다가 제초기가 고장 나 그걸 고치는데 시간이 한참 걸린다.


"중국 제품은 항상 이래. 사서 처음 쓰는 건데, 사용한지 1시간 만에 고장 나잖아. 한국 제품은 안 그래. 내 차도 한국 차라서 몇 년째 문제 없이 잘 타고 있어." 내 생각엔 한국 차 상태도 많이 안 좋아 보이지만, 블라디미르는 이렇게 한국을 치켜세워 준다.


마을에 있는 가게(러시아어로 마가진магазин이라고 하는데 프랑스어의 가게magasin, 영어의 잡지magazine와 어원이 같다)에 가서 장을 보고 오면서, 동네 사람들과 길거리에 돌아 다니는 닭을 구경한다. 평화로운 마을, 느긋한 사람들, 고양이들, 낡은 창고, 정원의 온갖 과일들... 이 모든 것이 너무나 마음에 들고, 이 곳에 있는 것이 행복하다.


2. 블라디미르 집에는 고양이가 여러 마리 있는데, 아침에 일어나 보니 한 마리가 내 침대에서 같이 자고 있다. 어제는 경계하더니 어느 순간부터 와서 몸을 부비적거리는 고양이들. 


"고양이들은 좋은 사람을 알아볼 줄 알아. 고양이들이 널 좋아하니까, 나도 너를 좋은 사람이라고 생각해." 라는 블라디미르.


고양이들이 나의 사악한 면을 모른 체 해줘서 참으로 감사할 따름이다.


3. 별로 한 일도 없는데, 열심히 일 해줘서 고맙다며 블라디미르가 러시아식 사우나 바냐(Banya, баня)를 준비해 준다. 땔감을 모아가지고 와서 사우나실 안의 페치카(Печка, 러시아식 난로)에 집어 넣고, 오래된 책을 북북 찢어서 불쏘시개 삼아 불을 붙인다. 러시아어로 인쇄된 오래된 책들 안에는 엄청난 지식과 지혜가 담겨있을 것만 같아 왠지 불쏘시개로 타버리는게 아쉽지만 불은 잘 붙는다. 나무에 불이 옮겨 붙고 활활 타는데도 보바는 나무를 계속 집어 넣으며 온도를 올린다. 페치카 위에 달린 온도계를 수시로 확인하며 온도를 섭씨 125도까지 맞춘다. 아니... 이 온도에서 사우나를 하는게 가능한거야?


사우나가 준비되자, 갈아입을 곳과 수건을 준비한 후 알몸으로 사우나에 들어간다. 용암 속에서 숨쉬고 있는 기분. 분신하는 승려들의 호흡과 불타는 건물 속으로 들어가는 소방관들이 떠오르는 열기. 그럼에도, 몸이 반들거리도록 흘러 내리는 땀과, 물과, 나뭇잎의 향기가 상쾌하다. 보바가 나를 사우나의 널빤지에 엎드려 눕게 한 뒤, 정원의 떡갈나무에서 꺾어온 나뭇가지 뭉치로 온 몸을 훑고 두드려 마사지해 준다. 나뭇가지가 몸을 스쳐 지나갈 때 엄청난 열기가 뿜어져 나오며 숨이 막힌다. 


이렇게 땀을 빼다가 알몸으로 사우나 밖으로 나와 차가운 맥주를 마시며 이런 저런 얘기를 한다. 보바가 했던 세 번의 결혼, 올가와의 만남, 푸틴에 대한 열렬한 애정, 미국에 대한 적대감, 공산주의, 그리고 러시아 특유의 비장한 감정... 이런 이야기를 나누다가 다시 사우나에 들어가 땀을 빼고, 다시 나와 시원한 맥주를 마시고, 다시 사우나에 들어가는 것을 반복한다. 아... 나체로 별빛을 받으며 세상에 서있는 기분이란...


4. 은하수가 보인다. 푸른 하늘 은하수. 우리나라에서도 미세먼지가 하늘을 뒤덮기 전에는, 나의 아버지와 할아버지, 그리고 할아버지의 할아버지들은 이토록 아름다운 별빛 하늘을 봐왔을까? 수천, 수만개는 되는 듯한 별들. 사막에서의 밤보다 오히려 더 많은 듯한 별들. 별똥별 그리고 인공위성. 하얗게 그려진 은하수. 온 우주의 신비와 아름다움을 한 곳에 모아 놓은 듯한 밤하늘. 그리고 서투른 영어로 해주는 외계인 이야기.


"볼가 강에서 2년 동안 4번 우포(UFO, 유에프오)를 봤어. 이제는 못 본지 10년 정도 되었지만. 그리고 그보다도 전에, 우리 아버지는 우포 뿐만 아니라 키가 작고 머리가 큰 외계인도 봤어."


이 밤하늘 별빛 아래에서는 거짓이나 농담이 아닌 진실만이 빛난다. 어떤 이야기라도 믿을 수 있는 신비로운 밤. 신비로운 밤 하늘. 


기억나지 않는 누군가 말했다. 이 밤하늘이 천년에 한 번 나타나는 것이라면, 이걸 본 사람들은 두고두고 이 별빛 하늘에 대한 이야기를 할 것이라고. 참으로 맞는 말이다. 


아침에 일어나니 침대에 올라와 자고 있는 고양이


차고 겸 창고로 쓰고 있는 건물. 보바는 나중에 아들을 낳으면 차고에 다락방을 만들어 아들이 마음대로 쓸 수 있게 해주고 싶다고 한다.


뒷뜰에서 본 빨간색 지붕의 바냐(사우나) 건물과 초록색 지붕의 주거용 건물, 그리고 회색 지붕의 창고.


서양자두(plum)가 탐스럽게 열려 있다. 나무도 많고 열매도 많이 맺어서 이틀 내내 열매를 줍고 땄다.


포도나무와 열매


제초기가 고장나서 손으로 풀을 뽑는데 도깨비풀처럼 장갑에 다닥다닥 달라 붙는 가시.


바람에 흔들리는 나무들과 무성하게 돋은 풀.


풀밭의 고양이. 생쥐와 작은 새 등 사냥감이 많은 시골이어서 고양이들은 항상 바쁘게 돌아다닌다.


물론 잠도 많이 잔다.



나이가 제일 많은 암컷 고양이



빗물 홈통이 바냐(사우나)용 건물을 지나 뒷뜰의 물탱크에 물을 모은다. 이 지역에서는 아무리 가난해도 집에 바냐는 꼭 짓는하고 한다. 보바도 바냐 건물을 새로 짓고 싶어한다.


거미줄에 걸린 작은 잎들의 모습이 마치 별조각들이 걸린 것 같다.


보바와 함께 정원의 풀을 베다가 제초기가 고장나는 바람에 도중에 멈춰야 했다.


신기한 열매들


아름답게 꾸며놓은 화단


곧 가을이 오고 겨울이 오면 눈으로 사방이 눈으로 뒤덮일 테지만 지금 이 순간 만큼은 활짝 피어있는 꽃과 그 꽃을 탐닉하는 호박벌



꽃과 나비


탐스러운 채소들. 보바의 아버지 농장에서 따왔다.


슈키예보 마을 풍경




러시아 노린재



슈키예보 마을 가게


슈키예보 마을 풍경


가게에 파는 러시아 과자와 초콜렛들



마을을 돌아다니는 닭들


보바가 차려준 늦은 점심과 맥주


잘 때가 되니 또 침대로 기어 올라오는 고양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