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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일주/불가리아

불가리아 헬프엑스: 사냥꾼 모자와 장작패기 (여행 71일째)

2016년 9월 27일 화요일 불가리아 다보빅 (장작의 날)


[등장인물]

기테: 헬프엑스 호스트. 덴마크 출신 50대 여성. 플레밍과 부부.

플레밍: 헬프엑스 호스트. 덴마크 출신 50대 남성. 기테와 부부.

큰아들: 기테의 큰아들. 불가리와 여자와 결혼해서 불가리아에 정착.



1. (08:27) 맑은 아침 태양을 받으며, 탁자 옆에 앉아서. 상쾌한 아침이지만 콧물이 좀 나온다. 우유를 마셔서 그런가? 여기 온 이후로부터는 우유를 많이 마시고 있다. 플레밍이 커피에 항상 우유를 타주기 때문이다. 이제 나도 커피 만드는 법을 배웠으니, 내가 커피를 만든다고 하고 내 커피는 카페라테 대신에 아메리카노로 하자. 하지만 확실히 플레밍이 만들어준 카페라테는 맛있다.


아침은 시내 빵집에서 사온 맛있는 빵을 썰어 토마토, 양파 등 야채를 같이 썰어 먹고, 전에 앞집 조안나 할머니가 가져다 주신 포도를 같이 먹는다. 달콤하고 맛있는, 집에서 직접 기른 포도인데, 아무도 먹지 않아 곧 버려질 것 같다. 


기테가 작업복으로 입을 '니트 나시'와 '사냥꾼 모자'를 준다. 일하는 동안 태양이 뜨거울 거라고 걱정이 되서 챙겨준 건데, 나는 오히려 아침 공기가 쌀쌀해 추울까봐 걱정이 된다. 오늘도 어디로 가는 줄도 모르고 일단 차에 오른다. 기테는 집에 남고, 플레밍과 함께 밴을 타고 출발한다. 기테가 아들을 걱정하는 근심많은 노모처럼 이것 저것 과하게 챙겨주는것을 내가 부담스럽게 생각할까봐, 플레밍이 웃으며 "꼭 그 사냥꾼 모자를 쓸 필요는 없어. 쓰고 싶으면 쓰고, 네 마음대로 해," 라고 말한다.


어디로 가는가 했는데, 알고 보니 기테의 큰아들 부부가 사는 집으로 가는 것이었다. 기테와 플레밍은 각각의 첫 가족과 헤어진 후 새로 결합한 사이다. 때문에 지금 만나러 가는 큰아들은 기테의 자식이지만 플레밍의 자식은 아니다. 큰아들(이름을 몰라서 큰아들이라고 적고 있다)은 덴마크에 있을 당시, 불가리아 여자를 만났고, 결국 불가리아로 이주해 왔으며, 그것이 계기가 되어서 플레밍과 기테도 불가리아로 오게 된 것이다. 큰아들 부부가 사는 마을 근처에는 약수터가 있다. 아마 지하수를 끌어 올리는 것 같은데, 수돗꼭지가 여러개 설치되어 있고 누구나 물을 뜰 수 있도록 되어 있다. 약수터 근처에 차를 세우고 플레밍과 함께 물통에 물을 가득 담는다. 그리고 다시 차를 타고 큰아들의 집으로 향한다.


2. 큰아들 부부가 사는 집에는 장작패는 일을 도와주러 왔다. 러시아에 있을 때 장작패는 일이 생각보다 어려웠기에 좀 걱정이 되었으나, 플레밍이 친절하게 가르쳐 주는 대로 하니 어렵지 않았다. 나무를 수직으로 세우고, 결을 따라서 도끼를 내려치는데, 원을 그리며 도끼를 내려치면 장작 대신 발이 다리를 내려칠 위험이 있다. 그래서 도끼를 위에서 아래로, 바닥을 때린다고 생각하고 도끼질을 해야 한다. 가끔 나무줄기에서 가지가 뻗어나왔던 곳은 나뭇결이 뒤틀려 있기 때문에 쪼개기가 힘들다. 그리고 플레밍은 나무 껍질을 발라내는 것을 좋아하기 때문에 (그래야 장작이 잘 건조된다고 한다), 가장자리 부분의 나무속살과 나무껍질 사이를 내려쳐야 하는데, 상당한 정확성이 필요하다. 하지만 곧게 뻗은 나뭇결을 따라 한가운데를 내려치고 장작이 쫙쫙 갈라질 때는 정말 기분이 좋다.


한참 장작을 패면서 근육을 기르다가, 점심시간이 되어 진수성찬이 차려져 있는 식탁에 앉는다. 언제나 점심시간은 하루 중 가장 행복한 시간이다. 치즈와 계란이 든 빵, 달콤한 롤, 호박 팬케이크, 큰아들 부인이 친정에서 가져왔다는 깻잎 쌈, 요거트 등을 정말 많이 먹었다. 커피를 마시면서 큰아들 부부의 딸(기테의 손녀) 얘기를 듣는다. 덴마크어, 불가리아어, 영어 이렇게 언어 세 가지를 배워야 하는 아이다. 


큰아들이 장작패기에 대해서 얘기를 시작한다. "처음에는 귀찮게 생각했는데, 하면 할 수록 재미있어. 사실 내가 장작패기를 좋아한다는 것을 깨닫고 있는것 같아. 아무 생각없이 할 수 있어서 좋아... 마치 명상하는 것처럼." 나는 큰아들이 어떤 의미로 얘기를 하는지 알겠는데, 큰아들을 별로 좋아하지 않는 플레밍은 나중에 나에게 바보같은 소리라고 말한다. "장작 패는게 얼마나 위험한 일인데 생각없이 할 수 있다니... 모든 정신을 집중해서 해야되는 일이라고. 그런데 저 녀석은 아무 생각없이 장작을 팬다는군." 플레밍의 말도 맞다. 모든 신경을 장작 패는 것에 집중해야 한다. 도끼와 장작과 나만이 남는다. 그러므로 다른 잡념은 없어진다. 큰아들은 그런 의미에서 아무 생각이 없어진다고 말한 것이다. 그래서 둘은 서로 같은 것을 말하면서도 서로 이해를 못하고 있는 것이다.


행복한 휴식 시간이 끝난 후에는 다시 장작을 팬다.


3. 장작의 날이 끝나고 기테와 플레밍의 집으로 돌아와서는 다시 커피 시간이다. 정말 좋다. 그리고 저녁에는 애썼다며, 차를 타고 불가리아 레스토랑으로 데리고 간다. 레스토랑에서는 음식을 잔뜩 시켜서 셋이서 30레브(약 19700원) 어치를 먹었다. 식당에서는 불가리아 음악을 크게 틀어서 약간 시끄러웠고, 화장실 옆에는 불가리아 전통 의상을 입은 마네킹들이 서 있었다. 


아침. 큰아들 집으로 가는 길의 시골 풍경.


큰아들 집에는 흰색 아기 오드아이(odd-eye) 고양이가 있었다.


큰아들 집 안뜰에서 장작을 패기 시작한다.


큰아들 집의 포도밭.


포도가 주렁주렁 달렸다. 몇 개 따먹어 보니 정말 달고 맛있다.


장작을 한참 패다가 휴식. 왼쪽에 있는 무더기가 장작 패기 전이고 다 팬 장작은 오른쪽에 열을 맞춰 쌓아서 나무가 건조될 수 있도록 한다.


푸짐했던 점심식사.


오드아이 고양이에게 친구가 있었다.


기테와 플레밍의 마을로 돌아왔다. 길거리에 마차와 말이 보인다.


그리고 오늘도 산책으로 하루를 마무리한다.


산책길의 플레밍.


해가 넘어가고 있다. 태양과 보름달이 같은 방향에 떠 있다. 잘 이해가 되지 않는다.


불가리아 식당의 마네킹들.


괜찮은 레스토랑에서 정말 많은 음식을 시켰는데, 1인당 5유로 정도로 꽤 싸다. 그릇의 섬세한 장식이 예쁘다.


커다란 두꺼비 한마리가 문앞에 서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