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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일주/세르비아

세르비아 니시: 수용소, 처형장, 해골탑 (여행 90일째)

2016년 10월 16일 일요일

세르비아


배경음악: Swingrowers - Midnight - ( Halloween promo Video ) - ( Freshly Squeezed )


[등장인물]

밀로시: 카우치서핑 호스트. 제다이 마스터. 


1. 밀로시는 보통 아침 6시에 아침 명상을 한다는데(이른 시간에는 자고 있는 사람이 많아서 잡다한 진동이 적어 명상에 좋다고 한다), 어젯밤 파티 때문인지 밀로시와 여자친구 둘 다 자고 있다. 소파 밑의 강아지는 일어났다가 다시 잠들었다. 덕분에 여유있게 똥 싸고(집주인이 깨어 있을 때 똥 싸는 것=화장실을 점령하고 있는 것은 항상 눈치가 보인다), 씻고, 일기쓰는, 여유있는 시간을 갖고 있다. 


전날 밤 늦게까지 파티가 있었다.


파티가 있던 친구집. 가스통이 많다.


밀로시 집의 냉장고 자석.


2. 아침은 천천히 시작했다. 밀로시와 같이 슈퍼에 다녀와 빵을 먹었다. 오전부터 이른 오후까지 비가 내렸는데, 짧은 시간 동안 밀로시의 빨간 폭스바겐을 타고 니시의 많은 곳을 돌아다녔다.


제일 먼저 간 곳은 2차대전 당시 독일 나치가 세운 니시 강제수용소(Nis Concentration Camp)였다. 차에서 내려 비를 맞으며 밀로시와 함께 캠프의 입구로 달려갔다. 비를 피해 매표소 겸 관리사무소로 사용하는 입구의 건물로 들어가니, 따뜻하고 아늑한 사무실에 중년 여성 둘이 앉아 있었다. 밀로시가 표를 두 개 사고, 직원과 얘기를 잠시 나누며 훈훈한 공기 속에서 앉아 있다 나오니, 단체로 온 학생들이 관람을 마치고 빗속을 뛰어 나오는 것이 보인다. 


이 수용소는 1941년, 독일 나치가 세르비아를 점령하고 있을 당시 세워졌다. 유대인, 집시(롬인), 세르비아인, 많은 아이들과 여성들이 이곳에서 고문을 당했다. 캠프 내부에서의 생활은 극도로 열악하여, 수용인들은 겨울엔 난방이 없고, 여름은 환기가 되지 않는 음침한 내부에서 생활했고 언제나 아사를 면할 정도로 적은 양의 식량을 배급받으며 강제 노동에 동원되었다고 한다.


추적추적 내리는 비가 수용소의 분위기를 더욱 음산하게 만들었다. 건물 안으로 들어가, 계단을 오르 내리며 각 층의 독방을 들여다 보았다. "많은 고통이 있었던 장소여서 그런지 무거운 공기가 느껴져," 밀로시가 말했다. 나 역시 단지 기분 탓인지는 모르겠지만 느낌이 이상하다. 복도에 있는 전시함에는 수용소에 있던 사람들의 물품들, 엽서에 그린 예수 그리스도의 초상, 편지 따위가 들어 있었다. 




3. 갈 곳이 많다고 밀로시가 약간 서두른다. 차를 타고 다음으로 간 곳은 부반즈 언덕의 처형장(Bubanj Hill)이다. 이곳은 독일 나치가 1만명 이상의 사람들을 총살한 곳이다. 지금은 기념 공원으로 변해 끔찍한 살육의 흔적은 남아있지 않지만, 전쟁기간 동안에는 20-50미터 길이의 구덩이가 인간의 시체로 가득차 있었다고 한다. 전하는 이야기에 따르면 총구를 겨누고 있는 군인들 앞에서, 한 남자가 항의의 표시이자 곧 찾아올 자유에 대한 인사로, 하늘을 향해 주먹을 불끈 들어 올렸다고 한다. 그 이야기에 영감을 받은 조각가가 세운 커다란 세개의 주먹모양 탑이 공원에 우뚝 솟아 있었다.




4. 니시는 살육의 잔해가 많은 도시인 듯하다. 다음으로 간 곳은 해골탑(The Skull Tower)이다. 1809년에 지어진 이 탑은 오스만 제국이 이 지역을 점령하고 있던 당시, 세르비아의 해방 운동을 진압한 후, 경고의 의미로 세웠다고 한다. 처음 세워질 당시에는 952개의 해골이 사용되었다는데, 아직까지 59개의 해골이 벽에 남아 있다.


프랑스 시인 라마르틴이 1833년 이 지역을 여행하다가 우연히 이 탑을 보고 놀란 내용의 글이 있다.


"... 내가 그늘로 삼아 앉았던 기념비를 올려보니, 대리석이나 흰돌로 보였던 벽이 사실은 겹겹이 쌓인 인간의 해골이었다. ... 그중 일부는 마치 이끼처럼 목주변을 펄럭이는 머리털이 붙어 있었고, 언덕에서부터 불어오는 강하고 상쾌한 산들바람이 머리통, 얼굴, 해골의 수많은 구멍들을 통과하며 애처롭고 슬픈 휘파람 소리를 지어냈다. 주위엔 이 야만스러운 기념물에 대해 설명해 줄 사람이라고는 없었다 ..." (링크)





5. 그 외에도 메디아나(Mediana)라고 하는 별장(villa)터와 고고학 박물관에 방문했다. 메디아나는 콘스탄티누스 대제와 그 후계자들의 통치시절인 3세기부터 4세기 사이에 지어졌다는데, 지금은 바닥의 모자이크 장식만 희미하게 남아있다. 니시는 콘스탄티누스 황제가 태어난 곳이기도 하다. 


이곳을 걸으며 밀로시의 과거에 대한 얘기를 들었다. 지금은 명상, 채식을 하고 술과 담배, 마약 모두 끊었지만, 이전에는 각종 약물을 복용하고 마약 거래로 돈을 벌었다고 한다. 그러다 한번은 약값을 내지 않고 도망다니는 사람을 쫓아다닌 적이 있는데, 일이 꼬여 도망자에게 총을 맞았다고 한다. 밀로시는 이 죽음의 경험이 계기가 되어 각종 약물과 중독에서 벗어나 채식, 명상을 통해 영성과 자유를 추구하는 사람으로 변화한 상태였다. 모든 과거의 중독에서 벗어난 지금 밀로시에게 허락된 가장 큰 쾌락은 음식이었다. 그래서 맛있는 음식 먹는 것을 좋아하고, 많이 먹고, 그것이 자신의 약점이라는 것을 인정하면서도, 크게 부끄러워하지는 않았다.






6. 정말 많은 곳을 다녔다. 그 다음에는 먹을 것을 사러 가격이 싸다는 파스타 집에 갔는데, 문이 닫혀 있었다. 그래서 피자를 사러 가기로 했다. 가격이 900디나르(약 10000원) 정도라고 들었는데, 밀로시를 따라 레스토랑에 들어가 보니 야채 피자 가격이 1650디나르(약 18000원)이다. 커다랑 빵이 하나에 300원 정도 하는 나라에서 18000원짜리 피자라니, 이건 너무 과하다고 생각하는데, 밀로시는 이 비싼 피자를 꼭 먹어야 겠는지 예약을 한다. 피자가 만들어지는 동안, 근처의 광장으로 나와보니 세르비아 수상인지 누구인지가 니시를 방문 중이라고 경찰과 군인들이 열을 맞춰 서 있고, 구경하는 시민들이 보인다. 요새 안쪽으로 들어가 카페에 들어가 앉는다. 밀로시가 에스프레소를 두 개 시킨다. 오늘 밀로시가 여러 군데 데리고 다니며 입장료를 많이 내서, 커피를 사겠다고 했더니, "넌 피자값 내"라는 밀로시. 원래 가격이 이렇게 비싼게 아니면 살 생각이었지만... 비싸보이는 레스토랑에서 마음대로 피자를 주문해서 그걸 사라니 참 싫어진다. 환전할 때에도 10달러만 환전해서 피자를 살만큼의 디나르도 없고, 평소에는 가장 싼 빵을 사서 케챱을 뿌려 먹는다는 얘기도 나누었고, 여행하는 동안 평균 얼마정도 쓴다는 말도 했는데... 


비싼 음식에 이렇게 돈을 쓰면서, 세르비아가 한국보다 가난하다고 불평하는 것은 받아들일 수가 없다. 모두가 소박한 음식을 배불리 먹고, 소박한 곳에서 잠자리를 나누며, 그렇게 살수는 없는걸까. 카우치서핑 자체에 실망스러운 감정도 들었고(언제나 은 요청을 받는 호스트이니), 어제 히치하이킹에 대해 들었던 긍정적인 이야기마저도 불신하게 되었다. 


옷에서 냄새가 난다고 옷을 세탁하겠냐는 말을 들었는데, 내일 떠날 계획이니 이미 옷을 세탁기에 돌리고 말릴 시간은 없었다. 







7. 새로운 많은 것을 본 하루인데도, 마지막에 가서는 다른 사람의 식욕을 삐뚤게 응시하느라 정신 에너지가 고갈되어 버렸다. 비싼 음식을 반강제로 사달라고 하고, 8조각의 피자 중 본인들(밀로시와 여자친구)이 세조각씩 먹고 손님이자 돈을 낸 사람에게는 두조각을 먹게하는 것(사실 나에게 한 조각을 더 권했지만 거절했다)에 실망했다. 명상을 하고, 항상 제다이 기사를 자칭하는 사람이 그렇게 행동한다는 것에 더욱 실망했던 것 같다. 


역시나 사람들이 말하는 것과 행하는 것은 많이 다르다. 물론 내가 가장 심하지. 그러니 돈을 버리고 돈없이 사는 삶을 추구한다면서도 이렇게 돈을 쓴 것에 대해 화를 내는 것이다. 결국 밀로시의 모순을 얘기하다 보니 나 자신의 모순을 마주하게 된다. 호스텔에 묵었으면 돈을 얼마 썼을지 바보같은 계산이나 하고 있고... 감사하자. 이렇게 비가 오는데 따뜻하고 비를 피할 곳에서 묵는 것, 차를 타고 여러 박물관에 편하게 다닌 것, 저녁과 아침을 얻어먹은 것, 파티에 데려가서 놀게 해준 것, 명상에 관한 얘기와 마약 거래에 관한 자신의 과거 얘기를 나눠준 것, 가만히 생각해보면 감사한 일이 훨씬 많다. 자신은 보살이 아니면서 다른 사람들이 보살처럼 행동하기를 바라지 말자. 돈과 욕망에 휘둘리는 것은 그들이나 나나 마찬가지이다. 오히려 내가 심하지... 이런 상황들을 겪으며 사람과 자신에게 실망하고 여행 자체를 포기해 버릴까봐 염려가 되기도 한다. 이제와서 생각해보니 카자흐스탄의 알리, 러시아의 파리다, 불가리아에서 만난 기테, 플레밍, 트레이시, 폴... 이런 멋진 사람들을 만난게 참 행운이었다.


밀로시의 친구들이 운영하는 보드게임방. 최신 컴퓨터나 스마트폰이 없어도 얼마든지 함께 즐길 수 있다.






밀로시가 스승 '스리 친모이'의 책을 선물했다.


밀로시 여자친구 어머니의 집을 방문했다. 여행을 좋아하는 분이다.


정신없는 강아지 한마리도 있었다.


선대 태국 국왕부부 사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