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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일주/세르비아

세르비아 크랄레보: 모험가들, 인터뷰, 도시탐방 (여행 91-92일째)


(2016년 10월 17일 이어서...)


마당의 고양이들이 노는걸 보다가 문을 열고 들어가 보니, 키가 크고 몸집이 좋은 여자가 있었다. 여자의 이름은 보야나라고 했다. "보이칸에게 얘기 들었어. 나한테 한 마디 상의도 없이 또 카우치서핑 손님을 받았더라. 이 집을 쓰는 남자애들은 정말 남을 배려할 줄을 몰라." 보야나는 청소, 설거지도 제대로 하지 않고 집을 막 사용하는 (보이칸을 비롯한) 남자들에게 불만이 많았지만, 여행자에게는 친절했다. 이때는 잘 몰랐지만, 보야나는 정말 특별한 사람이었다. 젊은 사람들 처럼 방방 떠있지 않으면서도 흥미로운 이야기를 잔뜩 쌓아두고 있었고, 타인에게 깊은 관심을 가졌고, 사진 실력도 일품이었다. 


보야나가 어제 비오는 길에서 울고 있던 아기 고양이 세 마리를 데리고 왔다는데, 한 마리는 어디론가 없어지고, 두 마리만 남았다고 한다. 고양이들이 노는게 어찌나 귀여운지... 처음엔 약간 경계하더니, 금새 경계를 풀었다. 소파로 기어와 품에 안겨서 잘 때에는 세상을 다 가진듯 행복했다. 그러더니 또 신나게 집안에서 서로 쫓고 쫓기며 날뛰기 시작한다.





고양이들의 밤.



어제 카우치서핑 요청을 보이칸 말고 다른 사람에게도 보냈었는데, 그 사람에게도 연락이 왔다. 이 사람의 이름도 니시의 집주인 이름과 같은 밀로시였다. 여행을 다녀와서 메시지를 늦게 봤다고, 이제 크랄레보로 가는 중이니 시간이 되면 만나자고 한다. 날씨도 거칠고 하루도 길었기에 집에서 편안하게 누워있고 싶었지만, 필요할 때 부르다가 필요없으니 거절하기도 뭐해서 만나기로 약속했다. 참새 광장(시티 센터)에서 만나기로 하고 시간을 맞춰 나갔는데, 5분, 10분이 지나도 보이지 않는다. 이미 어두워진데다가 날씨도 추워서 슈퍼마켓에 들어가 식료품을 구경하며 크랄레보의 밀로시를 기다렸다. 슈퍼마켓에서 한참 구경을 하다가 토마토와 빵을 사들고 나왔는데도 보이지 않는다. 피곤하기도 하고, 약간 심통이 나기도 해서 와이파이를 잡아 다음 기회에 보자고 메시지를 보냈다. 메시지를 보내자마자, 시티 센터에 도착했다고 하는 밀로시. 아, 저기 남자와 여자 한명이 보인다.


기다리면서 약간 화가 났지만, 일단 만나고 나니 마음이 누그러진다. 작지만 다부진 체격의 밀로시와 동그란 눈에 안경을 쓴 여자친구 타마라가 늦어서 미안하다며 사정을 설명한다. 괜찮다며 들고 있던 토마토와 빵을 한개씩 건네주었다. 밀로시와 타마라를 따라 시티센터 뒷쪽의 강변을 걷다가 밀로시가 "맥주 마시니?"라고 묻는다. 강변의 분위기가 좋은 맥주집에 들어왔다. 밀로시가 가장 좋아하는 곳이라고 한다. 얼마되지 않는 맥주값이지만 부담되서 들어오기가 싫었다. 그렇다고 이 어둔 밤에 강변에서 마냥 걷자고 할 수도 없는 노릇이다. 첫 만남의 어색함은 금새 사라지고, 가장 좋아한다는 말처럼 맛있는 맥주와 함께 흥미로운 이야기들이 시작된다. 한국에서 배를 타고 중국으로 건너가서 카자흐스탄, 러시아, 우크라이나, 불가리아를 거쳐 온 지난 3개월 간의 여행 이야기를 해주었다. 그리고 그 보답으로 밀로시와 타마라로부터 놀라운 모험 이야기를 들었다. 세르비아를 히치하이킹과 도보로 여행하던 이야기, 산과 숲 속에서의 야영, 당나귀를 끌고 다니며 도보로 유럽을 여행하는 여자를 만났던 이야기(이런 놀라운 얘기를 왜 뉴스에서는 볼 수 없는 걸까!), 그리스에서 보트를 타고 돌아다니던 일과 배를 타고 전세계를 돌아다니는 사람들의 이야기... 듣기만 해도 두근거리는, 꿈과 탐험의 증언이었다. (이 글을 옮기는 시점의, 다시 현대 사회로 돌아와 있는 나는 이런 꿈과 자유로부터 얼마나 멀어졌는지!) 또 두 사람은 내가 말을 할 때 빛나는 눈으로 진지하게 이야기를 경청해 주었다. 니시의 밀로시와 사루만(두냐 엄마)으로부터 그게 쉬운 일이 아님을 배웠기에, 그런 태도와 관심이 더욱 고마웠다. 맥주집에서 나갈 때는 자기들이 맥주를 사겠다고 강하게 주장했다. 만나러 와주고, 이야기 보따리까지 풀고, 맥주값까지 내준다니, 종합선물세트같은 호의다.


2016년 10월 18일 

세르비아 크랄레보. 구름 있지만 맑음. 약간 쌀쌀함.


일어나는 일들이 어쩜 이리 마법같은지! 하지만 이 마법들이 비치는 곳은 다른 사람들의 눈이 아닌 나의 눈이다. 신께서 내게 믿음을 주기 위해서 이 모든 것을 보여주신 것이지 내가 누군가에게 으스대라고 그런 것은 아니다. 만약 이 믿음을 누군가에게 보이려 한다면, 자아와 자랑을 위해서가 아니라 사랑하는 마음을 위해서이기를.


아지트 찬장에 붙어있는 무정부주의, 반파시즘 스티커들.





지금까지 많은 놀라운 경험들이 있었지만 오늘 하루는 참 신기하고 긴 날이었다. 아침에 일어나 슈퍼에서 커다랗고 싸고 쫄깃쫄깃한 빵을 하나 사 온 후(어지간한 슈퍼마켓에는 제빵소가 딸려 있다), 무얼 해야할지 고민하고 있었다. 어젯밤에 만났던 밀로시가 시간이 되면 연락을 달라고 했었지만, 보이칸도 오늘 만날 수도 있다는 식으로 얘기를 했던 터라(우선순위는 호스트인 보이칸에게 있다) 마음대로 행동을 못하는 상황이었다. 곧 보이칸이 와서 같이 나가자고 하길래 따라 나선다. 별 계획없이 산책을 하듯이 나온 것이었는데, 작은 도시여서 그런지 보이칸을 알아보고 인사하는 사람들이 많다. 마치 대학교 캠퍼스를 거닐다 보면 아는 친구들이 보여 손을 흔들며 인사하듯이, 크랄레보를 거닐다 보면 친구, 아이들(보이칸이 가르쳤거나 가르치는 학생들), 나이 많은 사람들도 종종 인사를 건넨다. 중고등학생쯤 되어 보이는 예쁜 학생이 반가운 표정으로 웃으며 보이칸에게 인사하더니 잠시동안 대화를 나눈다. 예전에 가르쳤던 학생이라고 한다. 대화를 나누며 시티센터를 지나 보행자 거리를 걷고 있는데 이번에는 심각한 표정으로 걷던 작은 체구의 중년 신사가 보이칸을 알아보고는 잘 만났다는 듯이 말을 걸어 온다. 옆에 서있던 나에 대해서 묻고, 보이칸에게 간략하게 '한국에서 중국, 카자흐스탄, 러시아, 우크라이나, 불가리아를 거쳐 온 여행자'라는 말을 듣더니 미간을 찌푸린 심각한 표정으로 따라오라는 손짓을 한다. 보이칸의 말을 들어보니 지역 신문의 기자라고 한다. 


길 한편에 있던 사무실로 따라 들어가보니 파란 벽면에는 다양한 사진이 크게 출력되 액자에 걸려 있고, 그 밑에는 트로피와 성화가 장식되어 있다. 골목에 숨겨진 골동품 가게처럼 흥미로운 곳이다. 소파에 앉으라고 하더니, 잠시 동안 보이칸과 대화를 나누다가, 나에게 인터뷰를 요청한다. 일이 재미있게 돌아가는 군. 기자 아저씨가 녹음기를 켜 탁자 위에 올려 놓더니 질문을 시작한다. "먼저 간단하게 당신이 누구이고 지금 무얼 하고 있는지 말해주세요." 아저씨가 세르비아어로 질문하면 보이칸이 그걸 영어로 통역해주고, 내가 영어로 대답하면, 보이칸은 다시 세르비아어로 통역해 기자에게 들려준다. "세르비아에는 왜 오기로 했습니까?" 약간 기대를 실망시키는게 아닐까 생각이 들지만, 사실 세르비아는 별 특별한 감정 없이, 헝가리로 향하며 거쳐가는 곳이었다. 하지만 세르비아 사람들 입장에서는, 크로아티아, 헝가리 같은 인기있는 관광지가 아닌, 다른 유럽과는 '약간 다른' 세르비아를 지나가는 여행자가 신기하게 느껴졌나보다. 나중에 알게 된 사실이지만, 보통 외부에서는 세르비아에 대해 부정적인 이미지를 갖고 있는 듯 했다. 그리고 세르비아는 90년대에 유고슬라비아 내전코소보 전쟁을 겪었고, 유럽의 나토(NATO, 북대서양 조약기구)에 의한 일방적인 폭격을 당했던 터라, 세르비아인들로부터 더 부유하고 잘 나가는 주류 유럽국가들에 대한 은근한 반감과, 반항아적 기질을 느낄 수 있었다. "한국에서의 삶은 어떻습니까?" "세르비아에 대해서 어떻게 생각합니까?" "혼자서 여행하는 것이 무섭지 않습니까?" 이렇게 질문들이 계속 이어졌고, 나는 고해성사를 하듯 여행과 삶과 생각과 두려움을 뱉어 놓았다. 한 가지 흥미로웠던 것은 세르비아인들의 북한에 대한 열정적인 관심이었다. 기자 아저씨 또한 북한에 대해 많은 것을 물어보았다. "우리가 미디어를 통해 접하는 북한은 폐쇄되어 있고 매우 가난한 나라인데, 실제로는 어떻습니까?" 국제사회에서의 북한의 고독한 반항아적 위치가 세르바아의 처지와 비슷하게 느껴졌는지, 어떤 희망적인 얘기를 듣고 싶어하는 것 같았다. 이렇게 40여분 동안 인터뷰를 마치고 나서는 밖으로 나가 사진을 찍기 시작했다. 건물 앞에서 아저씨가 시키는 대로 포즈를 취하고, 박물관 안에서는 독일군에게 학살당한 세르비아인들의 이름을 보는 것처럼 서서 사진을 찍었다. 사진 찍히는게 어색한 것이 아무래도 대단한 모델은 못 될 것 같다.


(추후 잡지에 실린 기사


인터뷰를 했던 사무실.


전화가 와서 인터뷰를 잠시 멈추어야 했다.




기자와 헤어진 후에는 에버그린(Evergreen)이라는 문화센터로 갔다. 이번에는 보이칸이 에버그린의 설립자를 인터뷰하기 위해서 가는 것이다. 조그만 도시에서 이렇게 정보가 오고 가고 서로가 서로를 알아가기 위해 소통하는 모습이 너무 이상적이다. 이 문화센터에서는 요가, 태극권, 기공, 대체의학 등의 강연이 열리기도 하고, 영화 상연이나 음악 공연도 있다. 센터의 주인 아저씨가 라끼아(rakia)를 마시냐고 묻더니 한잔 대접해 준다. 보이칸이 주인 아저씨를 인터뷰하는 동안 옆에 앉아서 예의바르게 듣고 있는 척 해보지만 이해할 수 없는 세르비아어를 조용히 듣고 있자니 스르륵 졸음이 쏟아진다.


문화센터 에버그린.


보이칸이 에버그린 운영자와 인터뷰를 진행했다.





보이칸과 시내의 작은 채식 식당에서 식사를 했다. 수프, 빵, 버섯과 감자요리 등 간소한 메뉴들인데, 언젠가 인도의 한 사원에서 먹었던 것처럼 맛이 좋았다. 게다가 2인분에 280디나르(약 2800원) 밖에 하지 않아서 부담없이 밥을 샀다. 이렇게 검소하고 맛있는 음식이라면, 매일 매일 사도 문제가 없다. (세르비아 니시에서는 호스트가 비싼 피자를 사달라고 해서 속으로 얼마나 분노했었는지!) 고마운 마음에 밥을 산건데 보이칸이 답례로 맛있는 카페라떼를 사준다. 커피를 사주면서 "세르비아 사람들은 단순하게 살아. 맛있는 빵과 커피. 그 정도면 만족할 수 있어" 라고 말하는 보이칸. 아! 정말 맘에 드는 사람이다. 오늘 늦은 오후에는 학교에서 학생들에게 나를 소개하며 한국에 대해 이야기하는 시간을 갖기로 했다. 한국에 대해 알려주고 싶은 것이 있으면 생각해 두라고 말하며, 보이칸은 여자친구에게 커피를 배달하러 떠났다. 나는 홀로 집으로 돌아오며 무엇에 대해 말할까 곰곰히 생각해 보았다. 막상 소개하려고 해 보니 막막하다. 마치 자기소개 첫 줄을 쓸 때의 기분이다. 한국에 대해서 객관적으로 생각해 본 적이 단 한번도 없었다. 항상 '나 자신의 경험'이라는 하나의 필터를 거쳐 한국을 인식했기 때문에, 어디까지가 주관이고 어디부터가 객관인지 감이 잡히지 않는다. 눈부신 경제성장? 치열한 경쟁? 자살? 헬조선? 주로 부정적인 생각이 많이 떠오른다. 또 한편으로는 내가 한국의 문화, 음식, 음악, 춤, 무술 등에 심각하게 무지하다는 것을 깨닫는다. 자, 당신이라면 주어진 40분동안 한국에 대해 어떤 이야기를 하고 싶으신가? 


(다음에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