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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일주/독일 & 네덜란드

독일 베를린: 료루, 나뭇잎, 맥주 (여행 111-112일째)

2016년 11월 6일 일요일

독일 베를린


배경음악(새창): Boombass Brothers - Hit the road Jack


요나스 어머니 방에서 맞는 아침. 커튼의 별과 달이 예쁘다.


요나스 집 거실의 카페트. 새 그림이 마음에 든다.


자전거를 타고 11km 남쪽으로 료루를 만나러 갔다.


료루는 여행 초반에 중국 항저우에서 만났던 예쁜 학생인데(링크), 베를린 자유 대학(Freie Universität Berlin)에 교환학생으로 와 있다. 중국에서 료루를 만나고 설레었던 일이 까마득한 옛날처럼 느껴진다. 항저우를 떠나 베를린까지 오는데 100일이 넘게 걸렸고, 그동안 정말 많은 일이 있었다. 히치하이킹, 황홀한 풍경, 러시아와 불가리아에서의 헬프엑스(helpx), 노숙, 셀 수 없이 많은 카우치서핑(couchsurfing), 빵과 바나나, 섭섭함, 배고픔, 버스와 기차 안에서의 수십 수백 시간...


료루는 나보다 훨씬 늦게 항저우를 떠났지만 훨씬 빨리 베를린에 도착해 이미 친구들도 많이 만들고 생활에 적응하는 중이었다. 참으로 묘한 기분이 든다. 누군가에게는 100일이 걸리는 길이 누군가에게는 10시간의 비행으로 끝나버린다는 것이... 어쨌든 료루를 베를린에서 다시 한 번 만나게 되는 것은 두근거리는 일이었다.


베를린 자유 대학이 지금 묵고 있는 요나스의 집에서 5km 정도 밖에 떨어지지 않아서, 걸어서도 찾아갈 수 있을 거라고 생각했는데, 료루가 살고 있는 기숙사(Studentendorf Schlachtensee)는 그보다 훨씬 더 남쪽에 있었다. (포츠담과 가까워서 종종 놀러간다고 함.)


처음에는 요나스도 같이 가기로 했으나, 막상 당일이 되니 몸이 안좋다고 쉬고 싶다고 해서 나 혼자 가기로 했다. 무식하게 비싼 전철을 타고 가고 싶지 않았기에, 새벽 일찍 출발하면 걸어가도 밥시간에 맞춰 갈 수 있을 거라고 생각했다. 요나스에게 계획을 말하자, 자전거를 빌려주겠다고 한다. 정말 다행이다.


그렇게 자전거를 타고 큰 길을 따라 남쪽으로, 남쪽으로 내려갔다. 길을 모르는 도시인데다가 신호등도 많아서 가는 길이 생각보다 험난했다. 꼬박 한시간 넘게 자전거를 탄 것 같다. 기숙사에 도착했을 때에는 완전히 지쳐버렸다.


춥고 낯선 베를린 거리. 자전거를 타고 남쪽으로...


기숙사 건물. 자전거가 많다.


25동 407호. 잘 찾아왔다.


료루가 사는 집에서는 페루, 아일랜드, 이란 등 세계 각국에서 온 여학생들이 함께 살고 있었다. 료루가 룸메이트들에게 자랑스럽게 나를 소개한다.


"한국에서 온 친군데, 전 세계를 여행하고 있어!"


얼마 후 료루의 다른 중국 친구 두 명(남학생과 여학생)이 왔다. 그리고 식사 준비를 시작한다.


피망에 다진 고기를 채워 치즈를 뿌리고 오븐에 구운 요리, 삶은 단호박에 치즈를 뿌려 구운 요리, 동글동글한 버섯, 토마토와 계란 요리, 감자, 피망, 소고기로 만든 요리, 하얀 꽃 차...


밥을 먹으며 중국 학생들이 독일어 공부의 어려움에 관한 농담을 한다.


"오스카 와일드가 이런 말을 했어. 독일어를 배우기에 인생은 너무 짧다(Life is too short to learn German). 독일어 배우는게 그만큼 어렵다는 거야." 중국 남학생이 영어로 더듬더듬 말했다. 이 학생은 독일어를 공부한지는 좀 되었지만 영어는 잘 못해서 대화를 하면서 조금 답답했다.


이제 독일어를 막 배우기 시작한 료루도 거들었다. "맞아! 독일어 단어에는 남성, 여성, 중성... 섹스! 섹스(sex, 성[性])가 있어서 외우기가 정말 어려워!"


"젠더(gender, 성[性]) 말이지?" 내가 씨익 웃으며 말했다.


"아아! 젠더... 맞아 젠더! 아아아!" 료루가 비명을 지르며 부끄럽게 시선을 돌렸고, 다같이 깔깔 웃었다. 


영어를 못하는 다른 중국 여학생은 말이 별로 없었고, 남학생이 말을 많이 했다. 독일과 독일어에 관한 이야기를 정말 많이 했다. 료루가 웃음기가 가시지 않는 얼굴로 이야기 하는 모습을 보고 있자니 나도 그저 웃음이 나왔다. 한마디로 사랑스럽다고 할까.


료루의 부탁으로 지금까지 모아왔던 나뭇잎들을 건네 주었다. 너무 좋아하는 료루. 어디서 주운건지 적어달라고 한다. 그리고 자기도 나에게 줄 선물이 있다며 나뭇잎 모양으로 된 책갈피를 건네준다.




배가 터지도록 먹고 난 후, 시간이 지나 말이 많던 중국 남학생도 집으로 돌아가고, 이제 단 둘만의 시간이 되었다.


"먹을 것 많은데 저녁도 먹고 갈래?" 료루가 말했다.


아... 정말 그렇게 하고 싶었다. 그런데 점심을 넘 많이 먹어서 (게다가 기름진 중국 요리) 배가 꾸륵꾸륵 아프다. 거실을 오래 차지하고 있어서 다른 룸메이트들 눈치도 보이고, 아침부터 뒷목에 담이 걸린 것 때문에 가만히 앉아만 있어도 불편하다. 그래서 날이 어두워지기 시작할 무렵 작별하고 기숙사를 나왔다. 안 그랬으면 밤새 앉아서 얼굴만 보는 것도 좋았을지도.


기숙사에서 본 바깥 하늘. 하루종일 흐리다가 잠깐 맑아졌다.


(다시 자전거를 타고 꾸륵꾸륵 불안한 배를 안고 페달을 한참동안 밟아 요나스 집으로 돌아온다.)


요나스의 집에 돌아와 보니 손님이 있다. 안토니오(요나스 이복동생)의 아버지라고 한다. 이 분은 페루 사람인데, 어떤 사연으로 요나스의 어머니와 만났을까? 그리고 또 지금은 어떻게 살고 있는 걸까? 자리를 피하기 위해 요나스와 함께 집 밖으로 나와 바로 옆에 있는 요나스 누나(소냐)의 집으로 갔다. 예술가들이 살고 있는 집이어서 그런지 내부 장식이 심상치가 않다. 각종 그림과, 소품이 여기저기 널려있어서 마치 어떤 사람의 복잡한 머릿속에 들어와 있는 기분이 들었다. 방 한 구석에는 4-5미터쯤 되어보이는 길게 뻗은 나뭇가지가 놓여져 있었다.


"저거 가지고 오느라고 고생깨나 했지." 요나스가 픽 웃으며 말했다. 


요나스와 나란히 소파에 앉아 몇 시간동안 대화를 했다. 요나스가 얼마전 발리에 갔을 때 홍수가 나서 갇혔던 일, 대학원 친구들 이야기, 삶과 죽음에 관하여 등등...


요나스 누나의 집. 누군가의 무의식 속에 들어와 있는 듯한 느낌이 들었다.


2016년 11월 7일 월요일

독일 베를린


요나스 집 거실. 창 밖의 참새들 짹짹소리.


젖은 발로 요나스와 함께 공원을 산책했다. 날씨가 꽤나 춥게 느껴지는데 (특히 젖은 맨발 때문에) 밝은 표정으로 공원을 산책하는 사람들이 보여서 조금 의외였다. 한참을 걷다가, 요나스와 함께 사람이 없는 공원 구석에서 오줌을 싸고 돌아왔다. 돌아오는 길에는 피자 가게에 들러서 피자를 주문했다. 요나스가 샀다. 피자를 먹고 잠기운에 좀 쉬다가 장을 보고, 저녁을 만들어 먹었다.


료루에게 받은 나뭇잎 책갈피를 요나스 어머니에게 선물로 드렸다. 뭐라도 드리고 싶고, 고마운 마음을 표현하고 싶은데, 줄 것이 그것밖에 없었다.


저녁에는 요나스와 함께 동네의 맥주집에 갔다. 생각해보면 이번에 독일에 와서 맥주를 처음 마시는 것 같다. 이번에도 요나스가 샀다.


"사실은 어머니가 좀 나갔다 오라고 하셨어." 요나스가 입으로 살짝 웃으며 말했다. "혼자 있고 싶으신가봐."


요나스와 며칠 내내 붙어다니다 보니, 대화의 소재도 모두 고갈이 되어버렸다. 의미없는 대화와 어색한 침묵이 오고 간다. 원래 할 말이 없을 때에는 한 모금씩 마시면 되는데, 맥주 한 잔은 금방 바닥나 버려서 맥주잔만 만지작 거려야 했다. 신기하게도 이런 조그만 동네의 맥주집에 한국인들이 한 무리 들어왔다. 할 대화가 별로 없는 나와 요나스는 가만히 한국인들을 구경했다. 


산책하던 공원의 호수.


료루에게 받은 나뭇잎 책갈피를 요나스 어머니에게 드렸다. 선물 돌려막기.


요나스의 집 거실과 주방.


요나스와 함께 만들어 먹은 저녁.


Berliner Pilsner


Berliner Kindl Weiss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