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세계일주/아르헨티나

부에노스아이레스: 국립미술관, 공동묘지, 세비 (여행 289일째)

2017년 5월 3일

[1] 아침에 푸짐한 샌드위치를 만들어 먹고, 베로니카와 여행 얘기를 하다가, 자전거 카드를 빌려 밖으로 나왔다.

나중에 독일인 손님 스벤에게 들은 바로는, 자전거는 1시간씩 대여가 가능하고 반납 후 5분간은 대여 불가였다. 하지만 베로니카는 30분씩 貸與로 잘못 알고 있었고, 나도 그렇게 전해 들어 30분마다 자전거 대여소에 들러 반납 후 새 자전거를 대여했다. 마치 오토바이를 타고 가다가 기름이 떨어져 가면 주유소를 찾는 것처럼, 조마조마한 마음으로 다음 대여소를 찾아 다녔다.

지도를 확인하기 위해 두세 블록마다 자전거를 세워가며 레꼴레타 묘지(La Recoleta Cemetery) 지역으로 향했다. 사실 이날의 목적은 공동묘지 방문과 버스표 구입이었는데, 가다가 우연히 들렀던 국립미술관(Museo Nacional de Bellas Artes)에서 가장 많은 시간을 보냈다.

 

베로니카네서 본 부에노스아이레스의 아침
베로니카네 집 장식
자전거 대여소
많은 개를 끌고 다니는 사람
거리 풍경

 

[2] 미술관은 고급스럽고, 깔끔하고, 직원도 많았는데, 무료이고, 규모도 꽤 크면서 너무 크지는 않고, 사진도 찍을 수 있었다. 깜짝 선물을 받은 것처럼 좋았다. 마음에 드는 그림도 몇 개 있어서 다시 한 번 미술관을 돌며 사진을 찍었지만, 사진에는 그림의 형체만 나타나고 그 놀라운 색채는 담기지 않는다. 마치 교회의 스테인드글라스처럼.

유럽 화가들의 그림도 있고 남미 화가들의 그림도 있었다. (동물, 전투, 해골, 수도사 등의 주제가 가장 흥미롭다.) 사람들의 생활이나 전쟁 같은 것이 담겨있는 그림들 속에는 그 당시의 시간이 마치 사진처럼 그대로 멈춰있다. 그림 속을 구석구석 들여다보며 시간 여행을 한다. 영화에 스토리가 있고 그걸 표현하는 방식(구도, 음악, 카메라, 시간)이 있는 것처럼, 그림에도 화가가 본 외적 사건(전쟁, 풍경, 종교적 사건, 마을 생활, 사람)이 화가의 해석(관점)과 표현방식을 통해 기록된다. 멋지다. 그렇게 1800년대 남미의 풍경이 눈앞에 펼쳐진다. 초원과 마차, 소떼.

조금 머리 아프고 우울한 현대미술 전시관을 지나니, 술 솔라르(Xul Solar)라는 화가의 작품 구역이 있었다. 매우 흥미로웠다. 색을 쓰는 방식도 특이했고, 타로카드, 상상의 동물들, 生命 나무(Pan-tree)와 행성들의 관계를 그린 模式圖 등 창조성을 자극하는 그림들이 많았다.

 

저 시선이 묘하게 익숙하다
쥐 조각, 개구리 조각
책 읽으면서 빵과 수프를 먹는 할아버지
운하 마을 풍경
Hendrick van Balen. 목욕하는 님프
Joaquin Sorolla y Bastida. 바람을 느낄 수 있다.
Carlos Morel. 기분 좋게 모여있는 사람들. 모자와 바지가 특이하다.
Prilidiano Pueyrredon. Un alto en el campo, 1861. 나무 아래에서 쉬고 있는 처녀에게 길을 묻는 것 같다.
Candido Lopez. 엄청 큰 그림. 전투 장면이 세세하게 묘사되어 있다.
나폴레옹 시대의 전투 장면과 비슷하다.
전투 후 시체나 죽은 말의 사체를 운반하는 모습. 확인 사살을 하는 듯한 사람도 보인다.
Reynaldo Giudici. La sopa de los pobres. 가난한 사람들의 수프.
Angel Della Valle. La vuelta del malon. 1892.
Pio Collivadino. 점심시간. 저 사람들 표정 하나하나에 누군지 알 수는 없지만 알고 있는 어떤 사람들이 담겨 있다.
노예 흉상
술 솔라르의 그림
판 트리
타로카드
마법성
환상 동물

국립 미술관 구글아츠


[3] 미술관에서 즐거운 시간을 보내고 공동묘지로 갔다. (가는 길에 한국 사람들도 몇 명 마주쳤다. 정말 오랜만이고 반가웠지만 조금 어색했다.) 공동묘지는 아름다웠지만, 지금까지 하도 공동묘지를 많이 다녀서인지 약간 지겹기도 했다. 사람이 들어갈 수 있는 작은 墓室들이 있었는데, 이 건물들은 조각상뿐만 아니라 스테인드글라스로도 장식되어, 내부에서 보면 아름다운 곳들이 많았다. 하지만 내부로 들어갈 수 있는 문은 거의 다 잠겨 있어서 창살 틈으로만 그 아름다운 빛깔을 볼 수 있었으니, 눈이 썩어 없는 죽은 자들만 좋은 광경을 독차지 하는구나.

 

다시 밝은 세계로 나옴.
타일에 그려진 그림들은 특히 예쁘다.
묘실을 장식하는 동상, 스테인드글래스, 현판.
공동묘지 풍경
가족 묘실
안에서 보면 참 예쁠것 같다.
인기가 많은 성인
성당의 천장


[4] 투쿠만으로 가는 표의 가격을 알아보기 위해 기차역까지 갔으나, 쑥스럽고 복잡해서 관두고, 역 앞에서 행상인들이 군것질거리 파는 것만 신나게 구경하다가 버스터미널로 갔다.

 

터미널에는 250개의 매표창구가 있었는데, 그중 파라과이 아순시온으로 가는 표를 1000페소에 파는 회사를 찾아(다른 회사들은 1300페소) 표를 샀다. 홀가분한 마음으로 터미널을 나온 후에는 10페소에 3개짜리 싸구려 알파호르(alfajor)를 사먹었다. 이거 정말 맛있다. 꽤 이득인 듯. (길에서 만난 乞人에게 알파호르 하나를 바쳤다.)

이제 다시 걷기 시작. 길가에 사지를 꼿꼿이 뻗은 채 피 흘리고 죽은 개를 淸掃車에 싣는 청소부들이 있었다. 개를 열 마리 정도 데리고 산책을 나온 사람들도 있었다.

 

골목길 풍경
왠지 물건이 쌀 것 같아서 흥분되는 골목길
3개에 10페소짜리 알파호르. 둘세 데 레체 맛. 정말 맛있음.
스타워즈가 인기가 많다.
개 시체를 치우는 청소부들
공연 포스터
여기도 무료 박물관이었던것 같은데 들어가지는 못했다.
복고풍 버스
성당 구경


[5] 베로니카의 집으로 돌아왔다가, 다시 세비를 만나러 나갈 준비를 했다. “엄마가 짐 싸갖고 와서 우리 집에서 자래.”라고 세비가 말했지만, 베로니카네 집이 더 편해서 반찬거리(야채)만 조금 들고 나갔다. 세비가 크고 깨끗한 차를 타고 데리러 왔다. 이전에 세비에게 재워줄 수 있냐고 물었을 때 집이 작아서 안 된다고 했는데, 집에 가보니 엄청 크다. 어머니는 고기를 굽고 계셨는데, 푸근한 아줌마라기보다는 세련되고 젊고 까다로운 사모님 이미지였다. 그럼에도 아들들에게는 지극히 헌신하는…… 맞아, 한국 강남 엄마 느낌이다.

진수성찬을 얻어먹고 대화도 나누었다. “아들, 아들도 이 형처럼 여행도 좀 다니고 그래.” 세비의 부모님은 월말에 크루즈를 타고 유럽 여행을 가신다고 했다. 옷 가게를 해서 어떻게 이렇게 큰 집, 큰 TV(지금까지 살면서 본 것 중 제일 큼), 크루즈 여행 패키지를 살 돈을 벌 수 있는 거지? 한국 사람들 정말 대단하다. 이렇게 잘 얻어먹고, 세비와 함께 강변으로 나가 비싼 아이스크림까지 얻어먹었다.

베로니카의 집으로 돌아온 후에는, 야행성인 친구들과 새벽 1시까지 얘기하다가 잠이 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