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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일주/아르헨티나

부에노스아이레스 - 아순시온 버스 이동 (여행 291-292일째)

2017년 5월 5일 금요일

 

아침으로 야채를 듬뿍 넣은 라면을 끓여 먹었다. 중국인 가게에서 산 머핀도 먹었다. 어젯밤부터 왕창 먹어서인지, 아니면 곧 장거리 버스를 탄다는 불안감 때문인지, 똥을 세 번이나 쌌다. 설상가상, 일회용 케찹을 이빨로 뜯다가 껍질 조각을 삼켜버렸다. 그 뾰족뾰족한 조각이 뱃속을 휘젓고 다닌다고 생각하니 기분이 더럽고 찝찝했다. 토해내려고 손가락을 목구멍에 집어넣고 헛구역질을 하며 난리를 치다가 결국 포기했다. 똥으로 나오겠지.

 

아침부터 학교에 다녀온 베로니카와 같이 집을 나와 길에서 마지막으로 한번 꼬옥 껴안고 작별했다. 베로니카 덕분에 돈도 안쓰고 편하게 잘 지내다 간다. 정말 좋은 사람이다.

 

동쪽을 향해 걷는다. 첫날 지나왔던 길을 되감기하는 것 같다. 온세, 콩그레스를 지나 플로리다까지 갔다. 가다가 7페소짜리 엠빠나다, 4페소짜리 반달빵이 보이길래 잔뜩 샀다. 알파호르를 싸게 파는 곳이 없나 두리번 거렸지만 찾지 못했다. 

 

플로리다의 환전상 거리에서 환율이 좋은 곳을 찾았다. 남은 돈 210페소 중 10달러어치만 환전하려고 했는데, 10달러권이 없단다. 갖고 있던 페소를 탈탈 털고 브라질 헤알까지 보태 20달러랑 바꿨다. 덕분에 마지막으로 알파호르 하나 더 먹어보자는 소망은 실현되지 못했다. 안타깝도다!

 

아순시온 행 버스에 탔다. 버스에는 물, 커피, 음료수가 있었고, 버스가 출발한지 얼마 후에는 기내식처럼 음식도 나왔다. 햄, 치즈, 닭튀김 등으로 구성된 (배춧잎 하나 없는) 아주 건강해보이는 식사였다.

 

에어컨은 추울 정도로 세게 나왔다. 고맙게도 옆자리에 아무도 앉지 않아, 안대를 쓰고 편하게 잤다.

 

2017년 5월 6일 토요일

 

아침 7시. 예상 도착시간까지는 아직 한참 남았는데 벌써 국경이다. 지도상 아순시온은 국경 근처에 있었기 때문에 벌써 다 온 줄 알았는데, 이곳은 아순시온과는 멀리 떨어진 포사다스(Posadas)-엔카르나시온(Encarnacion) 국경이었다. 직행이 아니라 돌아가는 버스였던 것이다. 그래서 다른 버스들보다 값이 싼 거였군.

 

버스에서 내려 출입국 관리소를 통과하고 버스로 돌아오니, 승무원 아주머니가 아침 식사로 빵과 커피를 나눠줬다.

 

국경을 통과한 후에도 버스는 여러 작은 도시들을 거쳤다. 아순시온에 도착하기 한시간 전부터는 버스 승객이 나밖에 없었다. 창밖으로 파라과이의 들판, 늪지대, 소떼가 스쳐 지나갔다.

 

마침내 24시간의 버스 여행이 끝나고, 밤샘 조업을 마치고 입항하는 어부처럼 아순시온 터미널에 입항했다. 버스의 간이 화장실에 흔적을 남겨 놓기 미안하고 찝찝해서 꾸욱 참던 똥을 터미널 화장실에서 쌌다. 아주 만족스러운 배변이었다. 아침부터 지금까지 참아준 무의식아 고마워. 평소에는 눈 뜨자마자 신호를 보내는데, 이럴 때는 잘 참아주는구나.

 

시내버스를 타고 ‘프랑스 섬 호스텔(Isla Francia Hostel)’로 향했다. 버스비는 3300과라니(660원)였다. 도착하니 주인 아주머니가 반갑게 맞아주었다. 

 

호스텔은 프랑스인 부부가 운영하는 곳이다. 부부는 3년 전 파라과이에 와서 2년 동안 준비하다가 작년 9월에 호스텔을 오픈했단다. 

 

도미토리 1박에 7달러로 싸다. 부킹닷컴 리뷰가 150개나 있고 평점이 9.7로 아주 높다. 주인 부부가 친절하고 한국 여행자를 좋아하기도 해서 3박을 하기로 했다. 

 

숙박비를 내고 돈이 남아서 슈퍼에 갔다. 감자, 양파, 파스타, 과자 중 싼 것으로만 골라 사니 10000과라니(2000원)였다. 

 

라면 한 봉지랑 파스타 면을 같이 끓여 2인분을 만들고, 같은 방을 쓰게 된 한국인 ‘아라’님과 나눠 먹었다. 아라님은 나보다 여행을 오래 했다. 그리고 한국에 돌아갈 생각도 없다고 했다. 맥주 한 캔 얻어 마시며 멕시코, 콜롬비아, 에콰도르, 파나마, 엘살바도르, 코스타리카에 대한 정보를 들었다.

 

여행 비용에 관한 얘기가 나왔다. 내가 지금까지 300만원 정도를 썼다니까, 만난 사람 중 돈을 젤 조금 쓴 사람이란다. 보통 세계일주면 이삼천만원씩 쓰고, 만난 사람 중 젤 많이 쓴 사람은 1억이란다.

 

“1년에 1억이요? 그럼 하루에 거의 300만원씩 썼다는 거 아니에요? 뭘 하고 다닌거지?” 내가 의문을 제기했다. (나중에 다시 셈해보니 1년에 1억이면 하루에 30만원 꼴이다.)

 

“어? 그렇네? 특별히 사치부린건 없고, 그냥 한인 민박 다니고 술 마시고 그랬다던데. 제약회사 다녔다는데, 1년 바짝 벌면 1억이라고 아낄것도 없다고 하더라구요.”

 

아라님은 멕시코 남자와 장거리 연애를 하고 있단다. 이 남자 바람을 피우다가 걸렸단다. 그래도 이 남자가 좋단다. 내가 보기엔 이미 끝난 게임인데, 사랑에 빠지면 판단력이 흐려지는 건 어쩔수 없나보다.

 

부에노스 아이레스. 무슨 사고가 있었나 봅니다.
부에노스 아이레스. 잡지 파는 노숙자.
실종된 사람들인것 같다.
파라과이행 버스. 앞좌석의 꼬마 승객.
마을 풍경은 대체로 이랬다.
거리 벽화
휴게소 식당
파라과이의 들판
아순시온 도착
호스텔 가는 길
밤의 아순시온은 을씨년스럽다.
스산한 밤거리
길가다 깡패 만나기 좋게 생겼다.
아순시온 판자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