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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일주/페루

Peru Arequipa: **똥 주의** (310)

2017년 5월 24일 수요일 11:30 아레끼파 (AQP) 백패커스

[1] 저를 설사쟁이라고 불러주십시오. "오늘은 아무것도 먹으면 안되겠구나"라고 생각했으면서도, 뻥튀기 먹고, 수프 먹고, 감자튀김 먹고, 빵 먹고, 쿠키 먹고, 젤리 먹고. 

감사하게도 버스에서는 아무 탈없이, 방귀나 가끔 끼면서, 아무 복통 없이 왔다는 것이다. 그런데 터미널에 도착하자마자 빵과 뻥튀기를 꺼내 먹었고, 그때부터 상황이 곤란해지기 시작했다. 

터미널 1층 화장실은 살인사건이라도 일어난 것처럼 노란 테이프가 붙어 있고 경비가 지키고 있었다. 2층 화장실은 사람들로 득시글거려 들어갈 수 조차 없었다. 새벽 4시 맞아? 그래서 일단 머나먼 호스텔까지 걸어가 보려다가, 새벽은 어둡고, 배는 아프고 해서, 포기하고, 결국 돈 주고 화장실 티켓을 끊었다.

주루룩 설사물이 떨어지면, 변기통은 더럽혀진 똥통물을 튕겨내고, 엉덩이는 그걸 고스란히 맞는다. 똥물 범벅이 되어 있을 엉덩이와 항문. 밖에서는 청소부 아주머니가 휴지통을 비우려고 기다려고 있다. 옆 칸 변기에 앉은 사람의 신발이 보였다가 일을 끝내고 사라지고, 다른 신발로 바뀌어도 나는 앉아서 똥을 쏟아 붓는다. 쭈그려 앉아 있는 것도 힘들어, 다리가 부들거린다. 난장판이 된 엉덩이를 휴지로 닦는다. 그래, 이러려고 휴지를 산 거다.

일을 치르고 난 후에는, 꽤나 편안하게 느껴지는 터미널 의자에 앉아 해가 뜰 때까지 휴식을 취했다. 어찌나 평안하고 좋던지. 밝아진 후 밖으로 나와 보니, 이른 아침부터 사람들이 음식을 팔고 있었다. 터미널의 수많은 빵집에서 밤새 빵을 파는 사람들도 그렇고, 다들 부지런하다. 빵을 반으로 갈라서 아보카도 등을 사이에 넣은 샌드위치와 페트병에 담긴 처음 보는 음료수를 보니, 한 시간 전에 겪은 고통과 더러움과 굴욕에도 불구하고, 다시 사먹고 싶은 마음이 들었다. 금붕어 같은 놈.

[2] 호스텔까지는 걸어서 한 시간 정도 걸렸다. 처음에는 후진 동네였는데, 가면 갈 수록 점점 괜찮아지더니, 마침내 아침 태양 아래 찬란하게 빛나는 하얀 교회와 세련된 광장이 등장했다. 부지런한 사람들이 아침부터 나와서 식사를 권하고 있었다(호객 행위). 

호스텔에 도착한 후에는 똥 싸고, 씻고, 한숨 자고, 일어나서 빨래를 맡기고, 똥을 한번 더 싸고, 다시 씻었다. 빨래는 바지, 험멜 츄리닝 자켓, 히트텍, 빤쓰, 양말 해서 1.5kg 이었고, 2500원(7.5솔) 정도 나왔다. 이것이 바로 욕심 부린 결과다. 휴지값, 간식비, 세탁비, 화장실비 등 안 써도 될 돈을 썼다. 그래도 길에서 바지에 똥을 싸지 않아서 참 다행이다. 지난 인도 여행에서도 욕심부리고 많이 먹다가 설사하고 밥 굶고 했었던 일의 반복이다. 지난 경험으로부터 전~~혀 배우지를 못한다.

[3] 몸보다 마음이 더 더럽다. 부유하고 여유있어 보이는 다른 관광객들에 대한 시기와 미움 가득 찼다. 언제쯤이나 모든 사람에게 미소지을 수 있을까. 마음속의 혐오와 증오. 사랑을 찾아 떠난 여행에서 왜 이러고 있을까. 이런 마음 상태면 카우치서핑도 의미 없다. 이럴 거면 차라리 돈에 신경쓰지 말고, 팍팍 쓰면서 마음 편하게 다니는 게 낫겠다.

2017-05-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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