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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일주/페루

Peru Arequipa: 알파카 (312)

2017년 5월 26일 금요일 아레키빠

[1] 호스텔에서 최대한 느리게 퇴실한 후, 밖으로 나와 목적지도 없이 어슬렁거렸다.

먼저 호스텔 근처의 길에서 팔고 있는, 퀴노아 곡물음료(chicha)를 한 잔 했다. 페루식 미숫가루다. 음료를 파는 아주머니들이 너무 좋았다. 너무 밝게 웃으시고 친절하시다. 길가에 서서 컵으로 마시고 싶었는데, 페트병에 담긴 것 밖에 없었다.

페트병에 담긴 퀴노아 미숫가루를 들고 "문도 알파카(Mundo Alpaca)"라는 박물관 겸 상점에 갔다. 들어가 보니, 라마인지 알파카인지 모를 짐승들이 많이 있었다. 남미의 낙타과 동물들에 대한 설명과 사진이 있었는데, 야생에는 비쿠냐와 과나코가 있고, 가축으로는 라마(야마, Llama)와 알파카가 있다는데, 다 비슷하게 생겼다. 박물관에는 알파카 털이 뭉텅이로 있었고, 빨강, 파랑, 노랑 등 다양한 색을 만들어 내는 천연 염료도 전시되어 있었다.

전통 복장을 입은 원주민 아주머니가 알파카 털실로 직물을 만드는 작업을 시연하고 계셨다. 기계를 사용하지 않는 이런 수작업이 얼마나 멋져 보이던지. 우리의 오갈 데 없는 시간을 여기에 보내주고, 대신 우리는 우주를 탐구할 기회를 얻는다. 하지만 이런 작업이 이제는, 기계로 만든 것과 다를 것 없는 평범한 천 쪼가리를 만드는, 비효율적이고 비경제적인 일로 전락해버렸다. 아래층에는 커다란 기계들이 전시되어 있었고, 엄청난 양의 실과 실뭉치들이 쌓여 있었다. 박물관과 이어져 있는 알파카 상점에 들어가 보니, 알록달록하고 예쁜 문양의 옷감과 옷들이 진열되어 있었다. 공짜로 박물관 구경 잘 하고 아무것도 안 사고 가서 미안하지만, 너무 비쌌다.

[2] "문도 알파카"에서 나와, 다 마신 페트병을 음료 파는 아주머니들에게 반납했다. 이젠 어디가지? 오줌이 마려운데 오줌 쌀 곳이 없을까 생각하다가, 지도에 쇼핑몰이라고 표시된 곳 중 가까운 곳으로 갔다. 아쉽게도 무료 화장실이 있는 대형 쇼핑몰이 아닌 상가 같은 곳이었고, 화장실도 유료였다. 오줌은 좀 더 참기로 하고, 전날 갔던 재래시장에 갔다. 

빵이 다섯 개에 1솔(300원)이라 사고 싶었지만 참았다. 대신 빠빠 렐례나(papa rellena)라는, 전날부터 먹고 싶었던 감자 모양 간식과, 살테냐(Salteña)라는, 빵 반죽 속에 각종 야채가 들어간 1솔짜리 간식을 사먹었다. 아침의 "아직 설사가 다 낫지 않았으니, 오늘은 음료만 먹어야겠다"는 결심은 아주 쉽게 무너졌다.

[3] 배가 다 꺼지기도 전에, 쎄로 베르데(Cerro Verde)라는 식당에 갔다. "베르데(초록)"라는 단어를 보고 왠지 채식 식당일거라고 생각했는데 아니었다. 간단한 코스요리(수프+메인+후식+음료)를 "메뉴"라고 하는데, 메뉴가 4솔(1200원)이었다. 조심스레 2층 건물의 계단을 올라가니, 어떤 아저씨가 식사하고 나오면서 안쪽을 가리켰다. 들어가서 자리를 잡고, 짐을 내려 두고, 화장실 열쇠를 받아 소변을 보고, 음식을 준비하는 분에게 "닭고기 빼고(sin pollo)"라고 말하고, 자리에 앉아 있으니 음식을 갖다 주셨다. 차이로(chairo)는 보리, 야채, 고기 조금이 들어 있는 국이었다. 그 다음에는 닭고기를 뺀 메인 요리(estofado de pollo)로 밥과 야채볶음이 나왔고, 후식으로 젤리와 달달한 차 한잔이 나왔다. 자리 배치가 특이했는데, 가운데 공간을 비워두고 "ㄷ"자 모양으로 빙 둘러 앉는 구조였다. 

이곳의 소박하고 겸손한 풍경과 아레키파 광장(Plaza de Armas Arequipa) 주변 테라스 레스토랑의 고급스럽고 떠들썩한 풍경이 비교된다. 너무나 다르다. 그리고 난 이쪽이 더 좋다. 어두침침한 공간. 손님이 들어오면 국이 가득 담긴 그릇을 양손으로 들고 와 내어 놓는 짜리몽땅한 아주머니. 입구에 앉아 돈 계산을 해주는 조끼 입은 아저씨. 주방 아주머니 한 분 더. 손님은 주로 아저씨들이었고, 젊은이도 한 명 있었다. 나중에는 여자 손님도 한 분. 다들 TV를 보며 말없이 조용히 드셨다. 이 사람들이 왠지 좋아서, 나가면서 100솔을 내밀어 이 사람들 음식 계산까지 다 하는 상상을 해본다. 

[4] 점심식사 후에는 성당(Basilica Cathedral of Arequipa) 쇠울타리 앞에서 광장을 바라보며 앉아 사람들이 비둘기 먹이 주는 것을 구경했다. 갈색 비둘기 한 마리는 다리 하나가 불구여서 절뚝거리며 걸어다녔는데, 아주머니 한 분이 그걸 불쌍하게 생각했는지 그 비둘기에게 팝콘을 집중적으로 던져 주었다. 그 비둘기도 자신이 편애를 받는 것을 아는지, 다른 비둘기들이 여기저기 왔다갔다 하는 동안에도 끈덕지게 아주머니 주위에 머물렀다. 하지만 그 비둘기 눈에서, 자기 자신에 대한 동정심이나 불편함에 대한 인식은 볼 수 없었다. 무심하게 모이가 있는 곳으로 갈 뿐이었다.

[5] 한참을 걸어서 버스 터미널(Terminal Terrestre de Arequipa)로 갔다. 처음 두 버스 회사는 리마행 버스표 가격으로 50솔을 불렀다. 나는 40솔 짜리를 찾았다. 파시피코 델 술(Pacifico del Sul)이라는 회사였는데, 승객이 타기 전에 화물이 엄청 많이 실렸다. 승객 중에는 탑승 전에 버스 앞에서 기념 사진을 찍는 분들이 있었다. 왠지 기분 좋은 광경이었다. 코파카바나에 가는 버스에서는 승객이 나 빼고 모두 백인이었는데, 이 버스에는 백인이 한 명도 없었다.

창 밖 풍경이 좋았지만, 자리가 좋지 않아 제대로 감상을 못했다. 그러다가 금방 해가 떨어졌다. 버스 내에는 조명이 없어 해가 떨어진 후에는 책을 읽을 수 없었다. 그래서 잠이나 자려다가 버스에서 틀어주는 영화를 보니, 짐 캐리가 나오는 <마스크>였다. 그 다음 영화는 <에반 올 마이티>였다.

2017년 5월 27일 토요일 리마행 버스

[1] 직행 버스가 아니어서 밤새 많은 사람들이 타고 내렸다. 밤중에 한 번은, 버스가 섰길래 오줌을 싸러 내렸다가 돌아왔는데 3초만 늦었으면 못 탈 뻔했다. 기사 아저씨가 아주 잠깐 동안만 버스를 세웠던 것이다. 아주머니 한 분은 간식을 사러 가려고 했다가 문이 닫혀서 안타까워했다. 그 후로도 휴게소에 멈추는 일은 없었다.

[2] 아침에는 버스에 있는 화장실을 사용했는데, 오줌을 싸면 바로 버스 밖으로 배출되는 구조였다(!). 그래서 똥 싸는 건 금지되어 있었고, 터미널 정차 중이거나 시내에 있을 때에는 화장실 문을 잠가 두는 것 같았다.

 

2017-05-26

알파카 혹은 라마
어머 귀여워
남미 낙타과 동물들
알파카 털
천연 염료들
원주민 아주머니는, 실질적인 생산과 창조의 기쁨을 누리기보다는, 박물관에 들어오는 몇 안되는 관광객들이 아주 가끔 주는 팁을 위해 무급으로 "봉사"하고 계셨다. 무거운 장식을 머리에 올리고 하루 종일 나무 바닥에 앉아 수작업을 하는 일종의 "쇼"를 하고 계신 것이다. 마음이 아프다. 물론, 기계를 모두 없애고 전통적인 방식으로 직물을 짜는 노동자 수십 수백명으로 공장을 돌린다고 생각하면, 그것도 끔찍하기는 마찬가지다.
메뉴
ㄷ자 모양으로 배치된 식탁과 조용히 식사하는 손님들
절름발이 비둘기
비둘기 모이주는 아저씨
버스 회사나 시설에 따라 다른 가격. 리마행은 105솔이나 60솔이 보인다. 나는 40솔 짜리를 탔다.
채식 식당 메뉴는 8솔이었다
현대 엑센트 가격은 12990달러 혹은 43127솔

 

실종자인 것 같다
버스 터미널
버스에서 먹는 간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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