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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발 하라리 - 호모데우스 (Homo Deus)

The Downfall of Adam and Eve and their Expulsion from the Garden of Eden. Two episodes are combined in a single frame. (Michelangelo)

 

 

서명: 호모데우스 - 미래의 역사

저자: 유발 하라리(Yuval Noah Harari)

역자: 김명주

 

[1] 

  • 책 첫 페이지의 "중요한 것들에 대해 애정 어린 가르침을 주신 스승 S.N. 고엔카(1924-2013)께 이 책을 바칩니다."라는 글이 결정적이었다. 고엔카에게 직접 가르침을 받았다니 책을 읽기 전부터 저자에 대한 신뢰가 갔다. 
  • 들어가는 글에서 인류의 생활 수준이 현재에 비해 얼마나 더 열악했는가에 대한 내용(기아, 전쟁, 전염병)이 흥미로웠다.
    (예: 고양이, 똥더미에 던져진 말고기, 황소를 도축할 때 흘러나오는 피, 길거리에 버린 내장, 쐐기풀과 잡초, 식물 뿌리를 먹어야 했던 과거의 기아)
  • 동물과 인간이 다르지 않다는 점 지적. 대부분의 가축이 받고 있는 고통 고발. 
  • 쥐 실험: 우리에 갇혀 고통스러워하는 쥐를 보고 덩달아 스트레스를 받는 자유로운 쥐. 초콜릿을 먹기 전에 동료를 먼저 풀어줌.
  • 상호주관적 실재(돈, 국가, 법, 신 등): 사람들이 가치를 믿는 한 유효하지만, 믿지 않으면 가치가 증발. 공동의 상상 속에만 존재.
    돈은 정말 흥미로운 대상이다. 부루마블 돈, 온라인 게임의 골드, 원화, 달러, 전부 우리가 약속한 게임 속에서만 가치가 있다. 그 게임밖으로 나가면 아무런 가치가 없다.
  • 인본주의의 세 가지 갈래: 자유주의 인본주의, 사회주의 인본주의, 진화론적 인본주의.
    인본주의를 종교로 보는 관점이 새로웠고, 자유주의, 사회주의, 나치즘 등이 한 뿌리에서 나와 많은 것을 공유하는 종교라는 것도 새로웠다. 마치 이슬람, 기독교, 유대교처럼.
  • 로봇 쥐: 다른 누군가가 자신을 통제하고 있다고 느끼지 않고, 자기 의지에 반하는 일을 강압적으로 하고 있다고 느끼지 않음.
    생각해보면 누군가가 자신을 통제한다는 기분은 괜찮을 수도. 예를 들어 '뜨거운 형제들'의 아바타 소개팅이 그랬다. 자기 의지에 완전히 반하는 생뚱맞은 행동과 말을 하면서도 아바타는 꽤나 즐거워할 수 있다. (체념? 해탈? 관조?)
  • 다양한 기술이 필요한 고대 수렵채집인과 전문화된 현대인 → 알고리즘으로 대체하기 쉬워짐.
    우울해지는 대목. 현대사회를 벗어나 부싯돌을 움켜쥐고 싶어진다.
  • 컴퓨터(EMI, Experiments in Musical Intelligence)가 작곡한 곡을 인간이 작곡한 곡으로 착각하는 사람들.
    유투브에서 찾아서 몇 곡 들어봤다.
  • 직업적으로 쓸모없는 대중의 처리 방법에 대한 논의(약물? 컴퓨터? 가상현실?).
    아주 흥미로운 상상거리다. 가설 하나는 영화 <월-E>에 이미 등장했다. 직업적으로 쓸모없는 대중은 이미 도처에서 찾아볼 수 있다. 수천 년 전부터 존재해 왔던 거라 뭐 어떻게든 될 거라고 생각한다. 요가, 명상, 태극권 등이 좋은 해결책일 듯하다.

 

[2]

  • 자유의지의 존재 여부
    인간이 다른 생물들과 비교해 특별한 존재가 아니라는 논지에서 (인본주의를 공격하기 위해) 자유의지란 없고, 우리 행동은 결정론과 무작위의 조합에 의해 모든 것이 결정된다는 이야기를 꺼낸 것 같다. 영화 <Waking Life>의 한 챕터와 동일한 내용이다(링크). 하지만 자유의지에 대해 의문만 던져 놓고, 명확한 해답은 제시하지 않기 때문에 애매한 공간이 생긴다. 자유의지라는 것이 존재하지 않는다면, 우리는 어떠한 행동에도 책임감이나 죄책감을 느낄 필요 없이 마음대로, 내키는대로 살아도 된다는 뜻인가? 죄책감 자체도 내 의지와 상관없이 인과관계와 무작위에 의해 생성된 것인가? 그 사이에 나의 선택권은 없었으니 나는 잘못된 행동에 대한 반성이 필요 없을까? 그 반성의 감정조차도 저절로 생성되는 것이니 아무런 의미가 없는 것인가? 자유의지가 없다면 우리의 삶은 어때야 하는가에 대한 내용이 없다.
  • 종교와 과학 = 진리 대신 질서와 힘을 추구함
    유발 하라리가 '종교'라는 단어를 쓸 때에는 부정적인 뉘앙스가 풍긴다. 마치 진정으로 진리를 추구하는 '종교'는 없다는 것처럼. 하지만 고엥카의 위빳사나 명상 센터와는 다른 방식으로, 하지만 비슷하게, 사람들의 영성을 키우는 종교 단체 및 기관들이 분명히 존재한다. '종교'가 껍데기만 남아 그 진정한 가르침을 상실한 것은 대체적으로 옳다고 할 수 있지만, 주요 종교들의 근원과 깊숙한 내면을 잘 살펴보면 여전히 진리를 찾을 수 있다고 생각한다. 테레사 수녀, 성 프란체스코, 법정 스님, 남들을 위해 자기 자신을 희생한 수많은 이름모를 종교인들.
  • 인공지능(알고리즘)에게 모든 결정을 맡겨 버리게 될 미래 
    (활동, 진로, 연애 상대 등 인생의 중요한 결정)

    이것 역시 재미있는 상상이고 그럴 듯하게 들린다. 하지만 알고리즘의 "목적"은 논의되지 않는다.

    예를 들어서 외출시 우산을 갖고 나갈지 말지를 결정하는 간단한 알고리즘이 있다고 하자.

    ⓐ 이 알고리즘의 목적이 "내가 최대한 비에 맞지 않는 것"이라면, 날씨를 예측해 간단하게 결정될 것이다.
    ⓑ 이 알고리즘의 목적이 "내가 최대한 건강을 유지하는 것"이라면, 비에 맞았을 때의 몸 상태 변화, 지속적으로 그런 변화에 노출되었을 때 장기적인 변화, 우산을 들고 다님으로 인한 근육의 발달 및 손상 등을 계산해 결정될 것이다.
    ⓒ 이 알고리즘의 목적이 "내가 최대한 유쾌함을 느끼는 것"이라면, 비에 맞았을 때의 불쾌함 및 유쾌함, 젖은 옷을 말릴 때의 불쾌함 및 유쾌함, 비를 피하다가 우연히 친구를 만나 같이 우산을 쓰고 가며 느낄 불쾌함 및 유쾌함, 비가 올 것으로 예측해 우산을 들고 나갔는데 비가 오지 않았을 때의 불쾌함 및 유쾌함 등의 수많은 변수를 계산해 결정해야 할 것이다.

    목적을 어떻게 정하느냐에 따라, 이렇게 간단한 결정(외출시 우산을 갖고 나갈지 말지)을 내리는 알고리즘도 무한대로 복잡해질 수 있다. 만약 알고리즘이 인생의 새옹지마적인 측면을 모두 계산해 내 거시적 목적에 대한 최적의 결정을 내리려면, 이 세상에 존재하는 모든 원자의 데이터가 필요할 것이다.

    설령 그게 가능하다고 해도 의미가 있을까? 예를 들면 알고리즘은 나의 궁극적 목적인 "내가 최대한 정신적 평화를 느끼는 것"을 달성하기 위해 "오늘 집 밖에서 세번째로 만난 남성의 왼쪽 손가락을 부러뜨려라" 따위의 결정을 내릴 수도 있을 것이다. 과연 누가 이따위 알고리즘을 쓰려고 할까?

  • 자유주의 관점: 한 사람은 풍요로운 성에 사는 억만장자인 반면 또 다른 사람은 초가집에 사는 가난한 농부인 것이 문제되지 않음. 농부의 특별한 경험은 억만장자의 경험만큼 가치 있기 때문. 가난한 농부의 한 표는 억만장자의 한 표와 똑같이 중요.
    자유주의가 현대 사회의 지배적 종교라고 했는데, 그렇다면 대부분의 사람들이 진심으로 가난한 농부억만장자의 경험을 동등하게 생각해야 한다. 하지만 자유주의 종교를 가진 많은 사람들이 가난한 농부보다 억만장자의 경험을 추구한다. 저자는 사람들이 영화, 공연, 책 등으로 가난한 사람의 경험을 추구한다고 하는데, 그렇지 않다. 사람들은 가난한 사람의 경험을 체험하는 억만장자의 경험을 추구한다.

  • 데이터교: "가능한 많은 매체와 연결해 가능한 많은 정보를 생산하고 소비함으로써 데이터 흐름을 극대화하라." 데이터의 흐름을 차단하는 것은 죄악이라는 생각.
    그럴듯 하다. 실제로 나도 이렇게 블로그 글을 쓰며 데이터 흐름에 내 생각을 공유하려 하고 있다. 글을 읽다 보니 나도 데이터교도라는 생각이 들었다. 저자는 데이터교가 새로 떠오르는 종교인 것처럼 얘기한다. 하지만 사람들은 예전부터 계속 가능한 많은 정보를 생산하고 공유해왔다. 세상에 존재했던 모든 작가들, 예술가들, 음악가들은 모두 데이터교도라는 말이 된다. 노인정에서 있었던 일에 대해 떠드는 수다스러운 할머니도 데이터교도라는 말이 된다. 지나친 비약이다.

[3]

  • 작가의 말대로 생명 공학과 컴퓨터 공학이 핵심인 것 같다. 프로그래밍 언어와 알고리즘 공부.
  • 하루에 명상을 두 시간씩 하고, 일년에 몇 차례 명상 센터에 들어가면서, 남는 시간에 공부하고, 가르치고, 글을 쓰는 저자를 보니, 명상시간을 좀 늘려도 되겠다는 생각이 든다.
  • 동물들과 다른 생명들에게 더 잘해줄 수 있으면 좋겠다.
  • 필립 딕의 SF소설 <안드로이드는 전기양을 꿈꾸는가?>와 많이 겹쳐졌다. 동물에 대한 죄책감과 연민, 기분을 결정하는 호르몬, 가상현실, 인본주의에 대한 의구심 등. 
  • 역사와 신기술에 관한 흥미로운 지식들이 많았다. 
  • 공감을 많이 했고 재미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