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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유

내가 돈 없이 사는 이유 요약

Joachim Patinir: Saint Jerome in the Desert


다음은 다니엘 수엘로의 블로그 글을 번역한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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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6년 3월 31일 금요일


행복한 만우절 전야 되시오!

나의 첫 번째 블로그 글 작성이오!

나는 한 때 돈 없이 사는 것에 대한 홈페이지를 운영하고 있었지만 여러 가지 이유로 없애버렸다 - 무엇보다도 나의 방식에 대한 의심과, 그것이 내 자아을 키우는 방향으로 엇나간다는 강한 감정이 있었기 때문이다.

지금 나는 유타(Utah)주 모압(Moab) 주변에서, 골짜기나 마을 뒷마당의 나무집에서 머무르거나, 사람들이 장기간 비운 집을 돌보기도 하며 산다. 하지만 나는 지난 5년 동안 미국 전역을 히치하이킹과 무임열차승차로 떠돌아다니기도 했다. 하늘이 주신 만나(manna) - 바로 그것이 있는 곳이다.

나는 조지 W. 부시의 집권 첫 해이자 2000년대의 첫 번째 해에 내 이름을 걸고 동전 한 푼까지 모조리 내던졌다.

무엇이 나를 돈 없이 살도록 만들었는가? 사실 나는 태어났을 때 이미 돈 없이, "빚을 주고 받음(credit and debt)"에 대한 계산 없이 살았다. 이런 삶의 방식은 어린이들의 본성이자 바람이다. 어떤 아이든 청년이든간에, 아직 "어른"으로부터 길들여지지 않았기에, 그것을 멋지다고 생각한다. 나는 어린이의 본능을 지닌 채로 복음주의 기독교 가정에서 자랐고, 나의 종교를 진지하게 받아 들였다. 하지만 결국에는 자칭 기독교인들이 어째서 예수의 가르침을 거의 따르지 않는지 의아해하기 시작했다. 말하자면 산상수훈, 즉 소유물을 포기하는 것, "빚을 주고 받음"으로부터 벗어나 기꺼이 주고 기꺼이 받는 것, 돌려받을 것을 바라지 않고 그저 주는 것, 모든 죄(빚)를 사하여 주는 것, 누구에게도 빚지지 않는 것, 악에서 악으로, 선에서 선으로의 되갚음을 초월하는 것, 죄의식(빚)도 원한(빚)도 판단함(빚줌과 빚짐)도 없이 살아가는 것, 은총에 의해, 거저 받아, 우리 자신의 업적이 아닌 우리를 통한 신의 섭리로 사는 것 말이다. 나이를 먹어가며, 나는 이 기독교 신앙의 원칙들이 내가 연구한 다른 모든 종교 - 도교, 유대교, 힌두교, 불교, 자이나교, 시크교, 이슬람교, 몰몬교, 샤머니즘, 이교 등 - 의 원칙이기도 하다는 것을 배우기 시작했다 (비록 제도화된 기독교와 각 종교들의 타락하여 그들의 진정한 정신을 은화 30냥에 팔아버리고 있지만 말이다). 이 원칙들이야말로 진정한 자연의 원칙, "모두의 마음에 쓰인 법칙" 이다. 그리고 당신도 그것을 알고 있다. 예수께서 이 점을 잘 납득시키기 위해, 까마귀와 백합화, 의로운 자와 불의한 자에게 내리우시는 비, 참새, 씨앗, 그리고 우리 자신의 마음을 예로 들지 않으셨는가?

하지만 이것은 내가 종교와 철학을 공부하고 떠드는 것에 질려버리게 했다. 왜냐하면 나는 그것들을 실천하지도 않았고, 할 수도 없었기 때문이다. 아무도 그렇게 하지 않았고, 아무도 그렇게 할 수 없었다. 그러고 나서 나는 냉소와 비탄의 시기로 들어갔고, 임상 우울증, 모든 종교와 영적인 것들에 대한 경멸, 신이라는 관념에 대한 경멸로 치닫기 시작했다.

나는 콜로라도 주의 덴버와 볼더에서 살아 왔었고, 내가 치열한 생존 경쟁에 신물이 났다는 판단을 내렸다. 그래서 직업을 버리고 유타 주의 모압으로 이사했다. 마침내 나는 우울증을 극복하는 유일한 방법은 생각의 단순화와 머리 비우기라는 것을 깨닫기 시작했다. 이것이 불교의 기초이며, 치유되고자 하는 모든 이의 필연적 결론이다. 그리고 나는 나의 물건들이 곧 생각들이라는 것을 깨달았다. 쓸모없는 생각을 버리면서, 쓸모없는 소유물도 버리게 되었다. 그리고 쓸모없는 소유물을 버리면서, 나에게 필요한 것이 보다 적다는 것을 점점 깨닫게 되었다. 그것은 노력이 아니라, 나무가 잎이나 씨앗을 떨어뜨리듯 자연스러운 것이었다. 소유물, 사상, 물건, 사람에 대한 집착을 버리면서 우울증 또한 사라졌다. 하지만 나의 탐구는 더욱 깊어져 갔다.

직업을 위해 이력서를 작성하거나 서류에 서명할 때, 은행 계좌를 만들거나 심지어 슈퍼마켓에서 바나나를 살 때마다, 자신이 부정직한 듯한, 마음 그대로의 대답을 하지 않는 듯 한 느낌이 들었다. 그렇다, 당신은 내가 무슨 말을 하는 건지 알고 있다. 모든 사람이 알고 있다. 나는 이 근본적 인식에 매우 민감해지고 있었다. 아주 조그만 부정직의 씨앗이라도 그것은 말 그대로 씨앗이다. 하나의 씨앗이 정신을, 온 지구를 지배할 수 있다. 어두운 눈 하나가 온몸에, 우주 전체에 어두움을 드리울 수 있다!

어느 해인가 나는 레슬리와 멜이라는 두 명의 친구들과 함께 밴을 타고 알래스카에 갔고, 그곳에서 늦봄, 여름, 초가을을 보냈다. 처음에는 부두에서 일을 했다. 하지만 전혀 정직한 느낌이 들지 않았다. 그래서 나는 일을 그만두었고, 홀로 배낭여행을 하며 몇 주 동안 자급자족해서 먹고 살아 보기로 결정했다. 자, 보시라, 나는 바스크 출신인 안데르라는 사람을 우연히 만나게 되었는데, 그 친구 또한 자급자족으로 살아 볼까 하는 생각을 하고 있었다. 그래서 우리는 그렇게 했다. 우리는 작살로 물고기를 잡고, 버섯과 열매를 먹고, 아주 잘 살았다. 그리고 우리는 여행을 떠나서 히치하이킹을 했고, 사람들이 얼마나 후하게 베푸는지를 깨달았으며, 우리에게 계속해서 일어났던 마법 같은 수많은 "우연의 일치"들에 놀라워 했다. 끝내 우리는 헤어졌고, 나는 주머니의 50달러를 가지고, 단지 그렇게 할 수 있는지 확인하기 위해서, 유타의 모압까지 완전히 차를 얻어타며 가기로 결정했다. 내가 모압에 도착했을 때, 나에게는 25달러가 남아 있었다. 그리고 나서 나는 돈을 군것질이나 맥주같이 필수적이지 않은 것들을 위해서만 사용했다는 것을 깨달았다. 그제야 나는 내가 완전히 돈 없이 살 수 있다는 것을 진심으로 깨닫기 시작했다.

나는 또한 세계의 빚, 금융, 기업, 전쟁, 빈곤의 개념에 대하여 생각하고 있었다. "우리가 우리에게 죄 지은 자를 사하여 준 것 같이 우리 죄를 사하여 주시옵고(헬라어: 빚진 자를 탕감하여 준 것 같이 우리의 빚도 탕감하여 주시옵고)"는 나의 끊임없는 기도가 되기 시작했다. 왜냐하면 나는 물질적 빚과 정신적 빚을 나누는 구분이 없다는 것을 점점 깨닫고 있었기 때문이다. 샴쌍둥이 하나가 다른 하나와 같이 오듯이, 하나는 다른 하나와 같이 온다. 서서히 임상 우울증으로부터 해방되면서, 나는 마음의 빚, 곧 죄책감과 복수심은, 물질적 빚과 불가분하게 연결되어 있다는 것을 알았다. 마음의 빚은 육체적 질병과도 불가분하게 이어져 있다. 그리고 치유자가 병자를 정죄하지 아니하고 치유하며, 온전케 하며, 그 자체로 받아들이듯이, 동정심은 빚진 자를 정죄하지 아니하고 용서한다. 돈을 사랑하는 것, "빚줌과 빚짐"에 대한 집착은, 정녕 만악의, 모든 불안과 질병의 근원이다.

나는 돈과 소유물 없이 인도를 유랑하는 힌두교의 고행자(사두, sadhu)들에게 매료되기 시작했다. 나도 그렇게 되기를 바랐다. 알래스카 방랑 여행으로부터 몇 년 후, 나는 가까운 친구인 마이클과 인도로 갔다. 정확히 말하면, 우리는 매우 저렴한 태국행 티켓을 얻은 참이어서, 먼저 태국으로 향했다. 거기서 나는 수메토라는 불교 승려를 우연히 만났고, 그는 나를 태국 북부, 치앙마이 밖에 있는 불교 사찰로 데리고 갔다. 그것은 인생을 바꾸는 경험이었다. 그 다음에 나는 마이클과 다시 만났고, 우리는 인도로 건너갔다. 인도를 두 달 가량 떠돌아다닌 후, 나는 티베트 난민들이 머무르는, 다람살라 근처의 맥그로드 간즈에 다다랐다. 그리고 거기에는 공교롭게도 달라이 라마가 있었고, 나는 일주일동안 그의 연설을 듣게 되었다. 그는 우리 서양인들에게 무언가를 지시했다. 그는 사람들이 티베트 불교를 탐구하기 위해 세계 각국으로부터 오는 것을 훌륭하게 생각한다고 말했다. 하지만 그는 모든 종교에서 진리를 찾을 수 있다는 것과, 아마도 오직 몇몇의 사람들만 다른 신앙에서 충족을 찾는다는 것을 강조했다. 다시 말하면, 그는 모두에게 더 커 보이는 남의 떡을 찾으려 애쓰는 대신, 그들이 심어진 땅으로 되돌아 갈 것을 권했다. 이것이 나의 생각을 확실하게 해 주었다. 내가 인도에서 고행하는 성자가 되는 것이 무슨 소용인가? 진짜 믿음의 시험은, 지구에서 가장 물질주의적이고 돈을 숭배하는 나라 중 하나로 돌아가는 것, 우리의 위선적 종교 아래에 숨겨져 있는 진정으로 심오한 영성의 원칙들로 되돌아 가서, 그곳에서 성자가 되는 것일 터였다. 이 생각은 나를 매우 들뜨게 했다. "미국의 사두가 되는거야" 라고 나는 생각했다. 방랑자가 되고, 부랑자가 되어, 그것을 예술의 경지로 만드는 것 - 이 생각은 나를 황홀하게 했다.

그래서 몇 개월 후, 지금으로부터 5년도 더 이전에, 내가 한 것이 그것이다. 그 때 나는 심지어 "미국의 사두"라는 웹사이트를 만들기까지 했다 (하지만 나중에 내가 그것들을 세상과 나눌 준비가 아직 안되었다는 것을 깨달았다. 과도한 자부심이 있었겠지. 그래서 없애버렸다). 아, 지난 5년의 경이로움과 마력이여. 하지만 그 이야기들은, 내가 그날그날 경험의 기록을 당신과 나눌 미래의 블로그 글들을 기다려야 할 것이다.

아, 당신이 이해하고 나와 나누었으면 하는 모든 것들의 아름다움이여 - 또한 그러한 아름다움이 자라나게 하는 숭고한 추함이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