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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유

돈은 무엇인가 (What Money Is & What Money Is Not)

Nicolas Poussin - The Adoration of the Golden Calf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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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돈은 무엇인가 또 돈은 무엇이 아닌가 (What Money Is & What Money Is Not)

글쓴이: 다니엘 수엘로


돈은 주조된 자유이다. 그래서 자유가 없는 사람은 그것을 10배는 더 갈망한다.

주머니에 돈이 있다면 그는 반쯤 위안을 받는다. 비록 그 돈을 쓸 수 없더라도.

- 도스토예프스키 (죽음의 집의 기록 1부 2장)


돈은 구현된 욕망이다.

- 제임스 뷰칸(James Buchan) [얼어붙은 욕망(Frozen Desire)]



돈은 달러 지폐도 아니고 수표도 아니고 동전도 아니다. 돈은 금도 아니고 은도 아니고 동도 아니고 개오지 조개껍데기도 아니고 보석도 아니고 소금 덩어리도 아니고 소떼도 아니다.

돈은 신용카드도 아니다. 심지어 돈은 컴퓨터 속 전류의 흐름이나 2진 코드도 아니다! 이 모든 것들은 돈을 상징한다. 하지만 이것들이 돈은 아니다.


은 물질적인 실체가 아니다.


돈(money)이라는 단어의 어원인 주노 모네타(Juno Moneta) 여신







돈은 머릿속의 믿음이다.


돈은 두 명 이상의 사람들의 공유된 믿음이다. 아마존 정글의 야노마모(Yanomamo) 부족 사람들에게 독일의 마르크 화폐는 예쁜 그림이 그려진 종이 조각일 뿐이다. 야노마모 사람들은 그것을 현실의 눈으로 볼 수 있다.


구매자와 판매자 양쪽 모두 돈을 믿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그것은 돈이 아니다.


돈은 신용(credit)이다.

신용은 믿음(belief)이다.


사전에서 신용(credit)의 첫번째 정의는 바로 이렇다: '무언가의 진실성에 대한 믿음이나 확신'


신용(credit)이라는 단어는 "믿다(to believe)"는 뜻을 가진 라틴어 크레데레(credere)에서 유래했다.


신조(creed)라는 단어도 마찬가지다. 신조종교를 뜻하는 또 다른 단어이다. 두 단어 모두 공유된 (문화적) 믿음을 가리킨다.


돈은 신용이고, 신조이고, 종교이다. 


신용은 또한 칭찬(또는 명예, 영광, 메달, 상품)이다. 칭찬은 다른 사람들에 대한 의견, 즉 믿음이다.


칭찬(praise)이라는 단어는 "상을 주다(to prize)"는 뜻의 라틴어 프레티레(pretire)에서 왔고, 이 단어는 ", 대가(price)"를 뜻하는 라틴어 프레티움(pretium)에서 왔다! 그리고 이것은 "매매하다(to traffic), 팔다(sell)"는 뜻의 인도-유럽어 어근 페르(per-)에서 유래한다!


매춘(prostitution)과 포르노(pornography)라는 단어도 마찬가지로 페르(per-)에서 유래한다. [모든 직업의 기원인 매춘에 관해서는 '사랑과 소유 - 섹스와 돈'에서 다룬다.]


돈을 위해 일을 할 때에는 꿍꿍이(ulterior motivation)가 숨겨져 있다.


일 자체를 위해 일을 할 때 당신은 진실하다.

다른 사람들의 신용(credit)을 얻기 위해 일을 할 때, 당신은 꿍꿍이를 품고 있다. 무엇을 하는 체 할 뿐이지, 진실로 하는 것이 아니다. 스스로의 절개를 파는 것이고, 스스로 불순해지는 것이다. 당신은 간통자다. 당신은 머릿속의 (당신 상상 속의) 형상을 숭배하고 있다. 그렇기에 당신은 우상숭배자이다.


위선자라는 뜻을 가진 영어 단어 히포크리트(hypocrite)는 연기자, 사칭하는 자를 뜻하는 그리스어 후포크리테(hupocrite)에서 왔다. 


당신은 현실과 상상 양쪽을 위해 일할 수 없다. 왜냐하면 하나를 사랑하면 다른 하나는 혐오할 것이고, 하나에 충실하면 다른 하나는 경멸할 것이기 때문이다.

(집 하인이 두 주인을 섬길 수 없나니 혹 이를 미워하고 저를 사랑하거나 혹 이를 중히 여기고 저를 경히 여길 것임이니라 너희는 하나님과 재물을 겸하여 섬길 수 없느니라 [누가복음 16장 13절, 개역개정])

 

그렇다. 돈은 오직 머릿속에서만 존재한다!


달러 지폐를 가리켜 돈이라고 부를 수 있는 것처럼, 존 F. 케네디의 사진을 가리키며 존 F. 케네디라고 부를 수 있다. 비록 그 사진 자체는 존 F. 케네디가 아니라는 것을 알고 있지만 괜찮다. 그것이 상징의 본질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만약 우리가 그 사진 자체를 존 F. 케네디라고 믿는다면, 우리는 현혹된 것이고, 미신에 사로잡힌 것이다. 우리는 시스티나 성당에 있는 미켈란젤로의 그림을 가리키며 "이것이 신이다"라고 말할 수 있지만, 그 그림 자체가 신이 아니라는 것은 알고 있다. 하지만 만약에 우리가 실제로 그것을 신이라고 믿는다면, 우리는 우상숭배자가 된다. 우상숭배(idolatry)는 미신(superstition)을 다른 말로 했을 뿐이다. 우상숭배는 현실을 보지 못하는 것, 상징을 그것이 상징하는 본래의 것으로 착각하는 것이다.



당신은 상징(symbol)에게 충성을 맹세하거나 현실(Reality)에게 충성을 맹세할 수 있다. 양쪽 모두에게 할 수는 없다.


당신은 국기에, 성서에, 돈에 충성을 맹세할 수 있다. 혹은 실제의 것들, 실제 사람들을 돌아볼 수 있다. 하지만 양쪽 모두를 할 수는 없다.


당신은 현실(Reality)과 마몬(Mammon, 부와 물욕의 신)을 동시에 섬길 수 없다.


하지만 세상 대부분의 성인들은 돈이 실제로 존재하는 물질이라고 믿는다. 세상 대부분의 성인들은 현혹되었고, 미신에 빠져있는 우상숭배자들이다. 이것은 그들을 판단하려는 말이 아니라 단순한 사실을 말하는 것이다. 주위를 둘러보라. 바로 지금 이순간, 사람들은 오직 머릿속에만 존재하는 이 환상(delusion), 이 상상(imagination), 이 우상(idol)을 위해 살아있는 생명, 인간, 동물, 심지어 전 인류를 희생하고, 그들이 의존하고 있는 자연 환경을 파괴하고 있지 않은가?

 

사람들은 현실(Reality)이 아니라 상징(symbol)과, 신념(creed)을 두고 다투며 전쟁을 일으킨다.


아메리카 대륙의 원주민들은 유럽 정복자들의 황금이라 불리는 노란 물질에 대한 갈망에 놀랐다. 그 갈망이 어찌나 거대했는지 유럽인들은 그것을 얻기 위해서라면 거주민과 환경 전체를 학살할 정도였다. 블랙 엘크(Black Elk) 같은 원주민들은 보통 황금을 "백인들을 미치게 하는 금속"이자 그들이 숭배하는 것이라고 불렀다[블랙 엘크는 말한다(Black Elk Speaks)]. 왜 사람들이 쓸모없는 것을 그렇게 강렬히 갈망할까? 많은 기독교인, 무슬림, 유대인들은 다른 종교를 우상숭배라고 비난하기를 좋아한다. 그러면서도 그들은 돈이라고 불리는 우상을 위해 스스로와 다른 인간들을 희생하고, 온 몸과, 마음과, 영혼을 바쳐 그 우상을 섬긴다. 그들의 입은 신을 찬양하지만, 이 우상에게 바쳐진 음식을 먹는다.


전쟁, 동물 착취, 환경 파괴는 모두 절망적으로 도를 벗어나서 이 우상에게 바쳐진 제물이다. 

 

크리스토퍼 콜럼버스가 남긴 말, 유럽이 아메리카에 심은 첫번째 씨앗을 보라:


In Gold We Trust (황금 안에서 우리는 믿는다)

El oro es excelentíssimo;

del oro se hace tesoro,

y con él, quien lo tiene,

haçe cuanto quiere en el mundo,

y llega a que echa las ánimas al Paraíso


황금은 가장 훌륭한 것이다.

황금은 보물을 만들어 내고

이것을 소유한 사람은 누구든

세상에서 그가 원하는 것을 할 수 있다.

영혼을 극락으로 보내는 것마저도

-Christopher Columbus [Varela, 327]


실재하지 않는 것을 믿을 때 당신은 실재하지 않게 된다.

실재하는 것을 믿을 때 당신은 실재하게 된다.


열국의 우상은 은금이요 사람의 손으로 만든 것이라

입이 있어도 말하지 못하며 눈이 있어도 보지 못하며

귀가 있어도 듣지 못하며 그들의 입에는 아무 호흡도 없나니

그것을 만든 자와 그것을 의지하는 자가 다 그것과 같으리로다

(시편 135편 15-18절, 개역개정)


바라타의 아들아, 각 사람의 신앙은 그 성질에 따라 이루어진다. 사람은 신앙으로 된다. 무엇을 신앙하든 간 그 신앙하는 대로가 그 사람이니라.

(바가바드 기타 17장 3절, 함석헌 역)


천신들을 섬기는 자는 천신들께로 가고, 조상을 섬기는 자는 조상께로 가고, 귀신을 섬기는 자는 귀신에게로 가고, 나를 예배하는 자는 내게로 오느니라.

(바가바드 기타 9장 25절, 함석헌 역)


돈은 학교 선생님이다.


오해하지 말라. 

상상이란 아름다운 것이다.

하지만 상상을 현실로 믿기 시작하면 그것은 더이상 아름답지 않다.

그때는 상상이 우리를 돕는 것이 아니라 우리가 상상을 섬기는 것이다.


돈은 상상이다.


국가의 지배자들은 상상을 섬기기 때문에 그들 역시 상상의 존재가 된다.


상상에게는 상상에게 속한 것을 주라.

실재에게는 실재에게 속한 것을 주라.

(이르시되 그런즉 가이사의 것은 가이사에게, 하나님의 것은 하나님에게 바치라 하시니 [누가복음 20장 25절, 개역개정])



 

당신이 유치원에 다녔을 때, 선생님은 학습에 대한 유인으로 별표 스티커를 줬을 것이다. 학교에 입학하면, A, B, C, D, F 학점을 동기부여로 받게 된다. 이것이 당신의 학점(상점, credit)이다. 어떤 학생들은 단순히 배우는 것이 재밌고 흥미롭기 때문에 배우는 반면 어떤 학생들은 학점을 따기 위해 배운다. 일부 학생들은 학점을 받기 위해 배우는 것으로 시작했다가 배우는 것이 재밌다는 것을 깨닫고는, 배움 자체를 위해 배우게 된다. 이런 학생들은 성숙한 학생들이다. 그들은 그들 밖에 있는 법칙을 따르는 것이 아니라 그들 마음 속에 쓰인 법칙을 따른다. 미숙한 학생들에게는 계속해서 나아가기 위해 상점과 벌점 제도가 필요하다. 성숙한 학생들은 상점과 벌점 제도를 벗어나 있다. 그들은 모든 것을 거저(gratis), 감사히(grace) 한다. 미숙한 사람들에게는 그들을 지도할 외부적 법이 필요하다. 성숙한 사람들은 무슨 일을 하는 것 자체가 그 보상이라는 것을 깨닫는다. 성숙한 사람들은 감사하는 마음으로 일하고, 관대하며, 아무것도 기대하지 않고 주며, 미안한 마음이나 빚진 감정 없이 받는다. 돈은 법칙이고, 미성숙한 사람들을 위한 선생님이다. 거저로(gratis) 하는 것은 은총(grace)이고, 성숙한 자들을 위한 자유이다. 돈 때문에 하는 것은 억지로 하는 행동, 무료로 하는 것은 우아한 자발적 행동이다.


돈에는 그 목적이 있다. 그리고 돈이 필요없게 되는 것도 돈의 목적이다. 학교의 목적이 학교가 필요없게 되는 것이고, 아이의 목적이 성장인 것과 마찬가지로. 


문제는 우리 사회가 타락해 버렸고, 아이들은 성장하기를 멈춘 채 계속해서 외적인 보상을 위해 일을 하고 있다는 것이다.


보상과 처벌[신용과 빚]은 가장 낮은 수준의 교육이다.

(장자)


질그릇을 내기로 걸고 활을 쏘면 잘 쏠 수 있지만, 

띠고리를 내기로 걸고 쏘면 마음이 걸리게 되고, 

황금을 내기로 걸고 쏘면 눈이 가물가물하게 된다. 

그의 기술은 언제나 같지만 

아껴야 할 물건이 있게 되면 

밖의 물건이 소중하게 여겨지게 되기 때문이다. 

누구나 밖의 물건을 소중히 여기게 되면 

자기 속마음은 졸렬해지는 것이다.

(장자[외편] 제19편 달생 4)


공훈(credit)을 사랑하는 것이 모든 악의 근원이다.

보상(reward)을 사랑하는 것이 모든 악의 근원이다.

칭송(praise)을 사랑하는 것이 모든 악의 근원이다.

에고(ego)는 공훈/보상/칭송을 사랑하는 것이다.


정신이 통일된 사람은 

행동의 결과를 버리고 

궁극의 평화를 얻으나, 

정신이 통일되지 못한 사람은 

애욕에 몰리어 

행동의 결과에 집착함으로써 

항상 얽매어 있느니라.

(바가바드 기타 5장 12절, 함석헌 역)


교만(ego)은 패망의 선봉이요

거만한 마음은 넘어짐의 앞잡이니라

(잠언 16장 18절, 개역개정)


무너졌도다 무너졌도다 큰 성 바벨론이여

모든 나라에게 그의 음행(prostitution)으로 말미암아

진노의 포도주를 먹이던 자로다

(요한계시록 14장 8절, 개역개정)

 



할렐루야 הֽלְלוּיָהּ Hallelu-Jah


할렐루야는

야[Jah, 야훼, 여호와]에게 모든 영광(Credit)을

실재(Reality)에게 모든 영광(Credit)을

이라는 뜻이다.

할렐루야는 자화자찬(self-credit)을 멈추는 것을 뜻한다. 돈은 자화자찬이다.

할렐루야는 야[Jah, 야훼, 여호와]가 다시 모든 상과 벌을 관장하는 것을 뜻한다.

할렐루야는 상과 벌(Credit & Debt)에 대한 생각을 천국으로 돌려보내는 것을 뜻한다.

신들에게서 훔친 불을 돌려보내는 것을 뜻한다.

할렐루야는 에덴의 동산으로 다시 들어가는 것을 뜻한다.

우리가 상과 벌의 나무에 달린 과일을 탐하다가,

노력의 결과와 행동에 대한 보상을 탐하다가 쫓겨난 그곳으로.


무신론자를 위해 해석한 할렐루야


만약 당신이 "신"이라는 단어의 남용 때문에 그것에 대해 무관심하다면, 상과 벌을 주관하는 무언가, 자연을 순환시키는 무언가, 우리의 지배를 벗어나 무한한 우주의 음과 양의 균형을 가져오는 무언가에 대해 생각하라. 모든 영광(credit)이 그것에 속한다는 것을 알 수 있을 것이다. 무한한 우주 앞에서 우리의 하찮음에 대해 생각하라. 겸손함은 곧 현실(reality)의 깨달음(realization)이다. 실재(Reality)는 당신이 그것을 "신"이라고 부르든, 그것에 인격을 부여하든, 그렇지 않든 신경쓰지 않는다. 그것을 진리(Truth)라고, 현실(Reality)이라고, 내키는대로 부르라. 그저 그것을 인지하고, 온 마음으로 사랑하라. 그것이 자연스럽게 할 수 있는 유일한 일, 행복하게 할 수 있는 유일한 일이다. 모든 생명체와 우주의 모든 분자는, 자발적이든 비자발적이든 결국 실재에 복종하고 머리를 숙여야만 한다. 당신이 행복한 삶을 살고 싶다면, 자발적으로 실재에 머리를 숙이라. 자발적으로 한다는 것은 대가 없이, 보상에 대한 기대 없이, 강요 없이, 통제(control) 없이 한다는 것을 뜻한다. 통제(cont-rol)는 "흐름에 거스름(against the roll)"을 뜻한다.


종교를 믿는 사람들에게 적용되는 것이 무신론자들에게도 똑같이 적용된다. 말에 집착하느라고 현실을 못 본 체하고, 실제 사람들을 못 본 체하는 것을 우상숭배라고 한다. 상징을 그것이 상징하는 본래의 것으로 착각하는 것이다. 다시 한번 말하지만 사람들은 실재하는 것이 아닌 상징을 위해 서로를 억압하고 죽인다. 올바른 신을 믿지 않는다는 이유로 사람들을 탄압하는 종교 국가이든, 어떤 신이든 신을 믿는다는 이유로 사람들을 박해하는 무신론 정권이든 (예: 중국, 북한, 구소련) 마찬가지이다. 아무런 차이가 없다. 모든 탄압은 같은 정신에서 생긴다. 우상숭배, 즉 상징을 실제의 것으로 착각하는 것이다.

 

 

[세계의 신화, 특히 성경에서의 인류의 타락(Fall from Grace)에 대해 좀 더 알고 싶으면 다음의 두 글을 살펴보라:

우리의 타락(Fall from Grace): 공짜로부터의 이탈: 돈의 시작

일곱 머리를 가진 용: 세계 무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