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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일주/아이슬란드

아이슬란드 동부: 설원, 폭포, 고원, 계곡, 얼음호수, 오로라 (여행 171일째)

동부 고원


... 세네카는 또 화내는 버릇을 없애려면
다른 사람들이 화를 낼 때의 모습을 잘 살펴보는 것도 좋다고 말했다. 
그 사람이 화를 내고 있을 때의 모습, 즉 마치 술 취한 사람이나 짐승처럼 붉어진 얼굴,
증오에 찬 추한 표정으로 불쾌한 목소리를 꽥꽥 지르며 더러운 말을 뱉어 내는 모습을 보고,
나는 저런 추태를 부리지 않아야겠다고 생각하라고 했다.
 
(톨스토이, "인생이란 무엇인가" 123쪽)


2017년 1월 5일 목요일

아이슬란드 동부 어딘가


[1] 대자연: 차가운 공기 속에서 맑아지는 정신과 흐르는 콧물. 차를 타고 고원지대로 올라갔다. 밤새 눈이 온 듯 했지만 아침 일찍 제설 작업이 있었던 모양인지 길에는 눈이 없었다. 어디를 목표로 가고 있었는지는 기억나지 않지만 중간에 길이 막혀 있었다. 지금 시즌에는 길이 막히는지 주변에 다른 차들은 없었다. 더 들어갈 수는 없었지만 이곳에서 5분 동안 구경한 설원 풍경이 오랫동안 강렬한 인상을 남겼다. 남쪽 하늘에 걸쳐 있던 정오의 낮은 태양이 하늘에 오묘한 빛을 뿌리고 있었다. 설원을 빠져나와 요쿨사(Jökulsá) 부근의 얼어붙은 폭포와 까마득한 높이의 다리 밑 계곡에 들렀다. 바람이 거세게 불었지만 좋았다. 사람의 흔적이 없는 바닷가, 투명하게 얼어붙은 호수, 계곡, 이끼낀 바위들, 고원. 이상형의 여인처럼 상상 속에만 존재할 것 같았던 이상적 대자연을 오늘 만났다.

[2] 폭력성: 이날 숙소는 동부의 작은 마을(Breiðdalsvík)로 추정(정확한 정보가 남아있지 않음). 해가 떨어진지 한참 지난 어두운 저녁. 차를 타고 어떤 작은 마을을 헤매고 있는데 밖에서 누가 차에 돌을 던졌다. 무시하고 지나갔는데 잠시 후 어떤 차가 쫓아와서 우리 차를 세웠다. 덩치 큰 아이슬란드인이 운전석 창가로 오더니 창문을 두드린다. 운전을 하던 친척형이 창문을 내리자, 아이슬란드인이 엄청 흥분된 상태로 욕을 시작했다. 운전면허는 있냐, 너네 나라에선 너같은 놈한테도 면허를 주냐, 운전하지 마라 개새끼야, 너네 나라로 꺼져버려, 이런 내용이었다. 우리는 전혀 뭐가 어찌 돌아가는지 이해를 못하고 있었고, 워낙 흉흉한 기세로 달려들었기에 가만히 있었다. 아마 우리 차가 지나가다가 이 남자에게 오물을 튀겼거나 칠 뻔했거나 한 것 같다. 남자는 차를 부숴버릴 듯이 소리지르며 위협을 했고, 친척형은 "쏘리"라고 말하고 가만히 있었다. 나중에 우리 일행들은 친척형을 가만히 위로했다.

[3] 변화: 번잡하고 이기적인 도시에서 떠나 아름답고 넓은 대자연 속에서 살면, 마음도 자연처럼 넓어질 거라고 생각했다. 분노한 아이슬란드인의 추하게 일그러진 얼굴을 보고 그게 아니라는 것을 확인했다. 한편 이 분노한 남자와 똑같은 폭력적인 성향을, 내 안에서도 발견할 수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 이것들로부터 배우는 것이 무엇인가. 변화란 참 힘들구나. 2년반 전 여행보다 나아졌는가. 지난 한달간의 불평과 불만. 감사보다는 교만했던 나 자신. 자아를 잘근잘근 부수는 연습. 자, 이제 다시 들판에 홀로 서게 된다. 모로코에서 영국으로, 그리고 포르투갈에서 브라질로. 할머니의 어지러움. 오늘 아침 차안에서 느낀 어지러움. 연락을 기다리며. 책, 명상, 자연, 고독, 죽음, 허무, 사랑. 사랑, 미소, 행복, 자유.

[4] 오로라: 춤추는 빛덩어리들과 빛줄기들. 사진찍기. 처음엔 긴가민가 싶고, 사진기에만 보임. 다들 너무 보고 싶어 하니까 두뇌가 시각적 환상을 만들어 내는구나!-라고 생각하다가, 밤이 깊어지고 빛의 날뜀도 심해진 후에는, 환상이 아닌 현실의 또렷한 우주급 레이저 쇼를 볼 수 있었다. (주변 사람들과 같이 흥분해서 좋아하긴 했지만, 아름다움으로 따지면 강변의 노을, 바다의 일출, 어두운 밤의 은하수와 다를바 없다. 아름다움 자체보다는 보기 힘들다는 희귀성이 오로라에 거품을 끼게 한 듯하다.)


아이슬란드까지 와서 서풍의 광시곡을 플레이하고 있는 친척형과 나.


아래는 주희 카메라에 담긴 오로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