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ermann Hesse
헤르만 헤세의 독서의 기술
헤르만 헤세 (지은이), 김지선 (옮긴이)
마음가짐: 마치 알프스를 오르는 산악인의 또는 전쟁터에 나가는 군인이 병기고 안으로 들어설 때의 마음가짐을 가져야 하리라. 살 의지를 상실한 도망자로서가 아니라, 굳은 의지를 품고 친구와 조력자들에게 나아가듯이 말이다. 만약에 정말 이럴 수만 있다면, 지금 읽는 것의 한 10분의 1가량만 읽는다고 해도 우리 모두는 열 배는 더 행복하고 풍족해지리라.
지성: 실제로 정신의 세계에서는 루터가 성경을 번역한 이후로 그리고 구텐베르크가 인쇄술을 발명한 이후로 하나도 달라진게 없다. 그 모든 마력은 지금도 온전히 존재하며, 지성은 여전히 엄격한 서열 속에서 소수의 특권층만이 누리는 비밀이다.
괴테의 <친화력>: 예컨대 나는 괴테의 친화력을 지금까지 한 네번쯤 읽었는데, 만약 지금 그 책을 또 한번 읽는다면 그것은 젊은 시절 처음으로 엄벙덤벙 읽었던 친화력과는 완전히 다른 책 아니겠는가!
바로 이 점이 독서체험의 놀랍고 불가사의한 측면이다. 우리가 좀 더 세심하고 예민한 감각으로 더 직접적인 연관 속에서 읽을 줄 알게 되면, 그만큼 더 모든 사상과 문학을 그 일회성과 개별성, 엄밀한 제한성 속에서 파악하게 된다. 나아가 모든 미와 매력이란 바로 이러한 개별성과 일회성에 바탕을 둔다는 점도 알게 된다. 이와 동시에 더욱 뚜렷하게 깨닫게 되는 것이 있다. 온 세상 수백수천의 목소리들이 결국은 모두 동일한 목표를 추구하며, 이름만 다를 뿐 같은 신들을 부르며, 동일한 소망을 꿈꾸며, 똑같은 고통을 토로한다는 점이다.
키메라: 눈이 밝은 독자라면 수천 년이 넘도록 무수히 많은 언어와 책들로 짜인 천 겹의 직물에서 놀랍도록 고귀하고 초월적인 모습의 키메라를 찾아볼 수 있으리니, 이는 상반되는 수천의 특성을 지닌 채 합일을 꿈꾸는 인간의 모습이다.
소재: 세계사의 가장 멋들어진 소재를 사용하고도 형편없는 문학이 나올 수도 있고, 잃어버린 바늘이나 눌어버린 수프처럼 정말 너무나 사소한 걸 다루고도 얼마든지 진정한 작품이 있을 수 있다.
사소한 일: 큰일은 심각하게 받아들이고 사소한 일은 진지하게 생각하지 않는 걸 당연시하는 태도는 쇠퇴의 시작이다. 인류를 존중한다면서 자기가 부리는 하인은 괴롭히는 것, 조국이나 교회나 당은 신성하게 받들면서 그날그날 자기 할 일은 엉터리로 대충 해치우는 데서 모든 타락이 시작된다. 이를 막는 교육적 방책은 오직 하나뿐이다. 즉 스스로에 대해서든 타인에 대해서든 신념이나 세계관이나 애국심 같은 이른바 거창하고 신성한 모든 것은 일단 제쳐두고, 대신 사소한 일, 당장에 맡은 일에 성심을 다하는 것이다. 자전거나 난로가 고장 나서 기술자에게 수리를 맡길 때 그에게 요구하는 것은 인류애도 애국심도 아닌 확실한 일처리일 것이요, 오로지 그에 따라 그 사람을 평가할 것이다. 그게 당연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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