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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스또예프스키 - 죽음의 집의 기록

The Apotheosis of War, Vasily Vereshchagin


김정아 역/지식을 만드는 지식


55 이 일이 있기 반년쯤 전에, 그는 자기의 전 부인이 재혼했다는 소식을 듣고 몹시 슬퍼했었다. 이제 그의 전 부인이 직접 감옥에 찾아와서 그를 불러내 필요한 물건을 넣어 준 것이다. 그들은 한 2분가량 서로 이야기를 나누었고, 둘 다 눈물을 흘리며 서로에게 영원한 이별을 고했다. 그가 옥사로 돌아왔을 때, 나는 그의 얼굴을 보았다... 그렇다. 이곳은 인내라는 것을 배울 수 있는 곳이다.


57 나의 수감 생활 10년을 통틀어 가장 끔찍한 고통이 바로 단 한번도, 단 1분도 혼자 있을 수 없다는 데 있을 줄 내가 어찌 상상이나 할 수 있었겠는가? 


62 감옥에서 해야 하는 노역은 일이 아니라 의무였다. 죄수들은 할당된 작업량을 마치거나 법률로 정해진 노동시간을 채우고 나면 옥사로 돌아왔다. 그들은 노역을 끔찍이도 싫어했다. 자기의 모든 지력과 능력을 쏟아부을 수 있는 자기만의 독특한 일이 없다면, 인간이 감옥 안에서 살아가는 것은 불가능할 것이다. 육체적으로 성숙하고, 강하게 살아왔고, 살기를 갈망하는 사람들이 사회와 정상적인 삶에서 강제로 격리되어 여기로 끌려와 이런 무리들 속에 던져졌는데, 만일 그런 일이라도 없었다면 어떻게 이런 곳에서 자기 의지와 욕구로 정상적이고 올바른 생활을 할 수 있었겠는가? 아무것도 하지 않고 무위도식만 하게 시킨다면, 그것만으로도 인간 내부에는 이전에는 꿈도 꾸지 못했던 무시무시한 범죄를 범할 만한 성격이 자라날는지도 모른다. 


63 대부분의 죄수들이 감옥에 들어올 때는 아무것도 아는 것이 없지만, 감옥에서 다른 죄수들에게 배워, 나중에 자유의 세계로 나갈 때는 어엿한 기술자가 되어 나갔다. ... 모든 죄수들은 일을 해 쥐꼬리만큼이긴 하지만 돈을 벌고 있었다. 주문은 도시에서 들어왔다. 돈은 주조된 자유였으므로, 완전히 자유를 빼앗긴 사람들에게 있어 그것은 몇십 배나 더 소중한 것이었다.


67 노동이 괴롭고 고통스러운 이유는 단순히 노동 그 자체가 괴롭고 양이 많아서가 아니라, 그것이 자발적인 의사 없이 강제적이고 의무적으로 행해야 한다는 점에 있다는 사실을 깨달은 것은 시간이 한참 지난 후의 일이었다. 일로 말한다면 농부가 훨씬 더 많이 할 것이다. 특히 여름에는 밤에 잠도 자지 않고 일을 하기도 한다. 그러나 농부는 뚜렷한 목적을 가지고 자신을 위한 일을 하는 것이기에, 자기에게는 아무런 이익도 없는 일을 강제로 하는 죄수보다는 훨씬 더 수월하게 일할 수 있는 것이다. 

... 그러나 만약 한 통에 있는 물을 다른 통으로 옮겼다가 다시 먼젓번 통으로 옮겨 붓는다거나, 모래를 빻아 가루로 만들라거나, 산더미 같은 흙을 한 장소에서 다른 장소로 옮겼다가 또 다시 먼젓번 자리로 옮겨 놓는 일을 죄수에게 시킨다면, 그들은 며칠도 못가 목을 매든가, 그런 굴욕과 모욕, 참을 수 없는 고통에서 벗어나기 위해 차라리 죽는 편이 낫다고 생각해 수천 가지 범죄를 저지를 것이다.


74 감옥에 죄수 하나가 있었다. 그는 우리 감옥에서 이미 여러 해를 보냈고, 행동이 지극히 온순했기에 다른 죄수들과는 달랐다. 또 그는 어느 누구와도 거의 말을 하지 않았다고 한다. 그래서 사람들은 그를 유로디비('예수를 위한 성 바보'라는 러시아 특유의 전통. 우매한 인간들을 위해 자신을 희생했다는 예수 그리스도의 덕성 중 하나를 체현하려는 러시아 정교의 고행자들을 성 바보라고 부른다. 이들은 종종 백치인 것처럼 행동했으나 실은 그 말 속에는 날카로운 진실을 포함하고 있었다.)라고 여겼다. 그는 글을 읽을 줄 알았고, 최근까지도 1년 내내 밤이고 낮이고 계속해서 성경만 읽고 있었다. 

... 어느 날 그는 하사관에게 가서 일하러 나가고 싶지 않다고 말했다. 그것은 곧장 소령에게 보고되었고, 이 소리를 들은 소령은 불같이 화를 내며 당장에 달려왔다. 그 죄수는 미리 준비하고 있던 벽돌을 소령에게 던졌으나 빗나가고 말았다. 그는 체포되어 재판에 회부되었고, 체형을 받았다. 이 모든 일들이 순식간에 벌어졌다. 사흘 뒤 그는 병원에서 죽었다. 죽어가며 그는 자신은 어느 누구도 해칠 마음이 없었고, 그저 고통을 받고 싶었을 뿐이었다고 말했다. 그러나 그는 어느 분리파에도 속해 있지 않았다. 감옥 내에서는 존경 어린 마음으로 그를 기억했다. 


79 이 구매자-죄수는 미리 정해 놓은 날에 단번에 다 마셔 버리기 위해, 국경 지대의 황소처럼 몇 달을 뼈 빠지게 일해, 겨우 몇 푼의 돈을 모은다. 이날의 광경은 이미 오래전부터, 괴로운 노동에 찌든 그의 꿈속이며 힘든 노동을 하는 동안의 그의 행복한 공상 속에서 더할 수 없이 매력적인 모습으로 나타나 감옥같이 쓸쓸하고 재미없는 장소에서 영혼을 받쳐 주는 든든한 기둥이 되어 준다. 마침내 그 찬란한 날의 아침노을이 동쪽 하늘에 퍼진다. 돈은 빼앗기지도 않고 도둑맞지도 않고 잘 보관되어 있다. 그는 그것을 가지고 술장수에게로 간다. 


80 술장수로 말할 것 같으면, 이렇게 장사를 해서 마침내 몇십 루블이라는 엄청난 돈을 벌게 되면 그는 마지막으로 술을 준비하는데, 여기에는 물 한 방울 섞지 않는다. 왜냐하면 자기가 마실 술이기 때문이다. 돈은 벌 만큼 벌었으니 이젠 자기가 축배를 들 때가 된 것이다! 주연, 술, 요리, 음악이 시작된다. 돈은 많았다. ... 이런 주연은 며칠씩이나 계속될 때도 있다. 말할 것도 없이 준비한 술은 곧 바닥이 난다. 그러면 술에 취한 이 술장수는 다른 술장수에게로 가고, 다른 술장수는 그리 될 것을 알고 미리부터 그를 기다리고 있다. 이렇게 해서 그는 한 푼도 남지 않을 때까지 다 마셔 버린다.


86 그런데도 술에 취하지 않은 보통 때는 그는 아주 분별 있게 행동했다. 언제나 조용했고, 누구와도 싸움을 하지 않았으며, 될수록 싸움도 피하려고 했다. 그러나 그것은 마치 다른 사람들을 경멸하고, 자기보다 수준이 한참이나 낮은 존재로 생각했기 때문인 것 같았다. 그는 말수가 극도로 적었고, 무슨 이유에선가 의도적으로 사람을 피하는 것 같았다.


90 아주 드물게 위병을 거느리지 않고 혼자서 옥사로 들어오는 상사들이 있었다. 그것이 죄수들을 얼마나 놀라게 했는지 간과해서는 안 된다. 그것은 좋은 의미에서의 놀라움이었다. 그토록 겁이 없는 대담한 방문자는 언제나 죄수들에게 존경심을 불러일으켰고, 설사 실제로 무슨 좋지 않은 일이 일어난다 하더라도 그가 있는 곳에서는 절대로 일어나지 않았다. 


94 어떻게 그토록 부드러운 마음을 다치지 않게 잘 보전하고, 자기 안에 그토록 엄격한 정직성을 길러 내고, 그토록 다정다감하고 동정심 깊은 마음을 배양할 수 있었는지, 그리고 그런 환경 속에서 어떻게 난폭해지거나 타락하지 않을 수 있었는지 참 상상하기 힘든 일이다.

... 미리 결론을 말한다면, 나는 알레이를 결코 평범한 사람은 아니라고 생각하며, 지금도 그와의 만남을 내 인생 전체를 통해 가장 좋은 만남 중의 하나로 기억하고 있다. 신의 은총을 흠뻑 받아 날 때부터 눈부시게 아름다운 그런 존재가 있는 것이다. 언젠가는 나쁘게 될 수도 있다는 가능성이 전혀 없어 보이는 그런 존재가 있는 것이다. 당신이 언제나 안심할 수 있는 그런 존재가 있는 것이다. 나는 지금도 알레이에 대해서는 조금도 걱정하지 않는다. 그는 지금 어디에 있을까?


99 그녀는 그다지 젊지도 늙지도 않았으며 그다지 예쁘지도, 그렇다고 그다지 못생기지도 않았다. 그녀가 머리가 좋은지 교육을 받았는지 그것조차도 알 수 없었다. 다만 그녀의 행동거지 하나하나에서 한없는 선량함과, 상대를 조금이라도 기쁘게 해 주고 위안해 주고 뭐라고 행복하게 해 줄 게 없나 하는 간절한 바람만을 알아챌 수 있었다. 이 모든 것이 그녀의 조용하고 선량한 눈길에 담겨 있었다.


101 즉 나는 가능한 한 단순하고 독립적으로 지내야만 하고, 그들과 가까워지려는 어떤 특별한 노력도 절대 하지 않을 것이다. 그러나 만약 그들 스스로가 가까워지기를 원한다면 그것을 거절하지는 않을 것이다. 그들의 위협이나 증오심을 절대로 두려워하지 않고, 가능한 한 그것을 모르는 체할 것이다. 어떤 식으로든 그들과 절대로 타협하지 않을 것이고 그들의 습관이나 풍습도 절대로 따르지 않을 것이다.


107 한마디로 모든 죄수들이 내일이면 뭔가 특별하고 어마어마한 일이 벌어질 것이라 기대하고 있는 듯했다.

... 많은 죄수들, 심지어 1년 내내 한 푼 두 푼을 모아 온 가장 절약하는 아주 검소한 죄수들조차도 이런 날만은 인색하게 굴지 않고 아주 훌륭한 정찬을 마련하는 것을 의므로 여기고 있었다. 내일은 어느 누구도 죄수들에게서 빼앗아 갈 수 없는, 법률로 지정된 공식적인 진짜 휴일인 것이다. 이날은 죄수들이 노역에도 보내지지 않았고, 이런 날은 1년에 고작 사흘밖에 없었다.

... 빈둥거리며 돌아다니는 사람은 거의 없었고, 대부분의 죄수들이 아무런 할 일이 없었음에도 불구하고, 마치 무슨 일인가로 바쁜듯이 진지한 표정들이었다.

... 죄수들의 이런 기분은 감동적일 정도로 아름다웠다. 위대한 축일에 대해 나면서부터 지니고 있는 존경심 외에도, 이렇게 축제일을 지킴으로써 마치 바깥세상 전체와 접하고 있는 것 같은, 그러므로 자기는 세상에서 버림받은, 파멸해 버린 인간이 아니며 세상에서 잘려 나간 조각이 아닌 세상의 일부로, 감옥에서도 바깥세상 사람들이 하는 것과 똑같은 일을 하고 있다는 것을 죄수들은 무의식적으로 느끼는 것이다.


110 후자의 선물은 찢어지게 가난한 사람이 불행한 사람에게 보내온 것이었다. 누가 보냈건 어떤 선물을 보냈건 선물 하나하나가 꼭 같이 감사한 마음으로 받아들여졌다.

... 조금의 불평도 없었고 다른 사람 것이 크다고 질투하는 사람도 전혀 없었다. 모두 만족했다. 선물을 몰래 감추지나 않았을까, 또는 붐배에 어떤 문제가 있지나 않을까 하는 의심 따위는 전혀 하지도 않았다.


112 그러는 사이 밖은 이미 어둑어둑해지고 있었다. 비애와 우수, 의식의 혼돈들이 취기와 난장판 속에서 무섭게 모습을 드러내었다. 한 시간 전에 웃고 있던 사람들이 술이 곤드레가 되어 여기저기서 흐느껴 울고 있었다.

... 오, 맙소사! 거의 모든 죄수들에게 이 얼마나 괴롭고 슬픈 날이 되어 버린 것인가! 모든 죄수들이 무언가 희망을 갖고 있었는데, 그것이 배반당한 것 같은 느낌이었다. 


115 이런 무능하기 그지없는 법률의 집행자들은, 법의 정신도 그 의미도 제대로 이해하지 못하고 고지식하게 문자 그대로 법을 집행하면 혼란을 야기할 뿐 결코 다른 결과를 초래하지 못한다는 사실을 알지도 못하고 이해할 힘도 없다.


122 이따금 짐승과 같은 끔찍한 불꽃이 타오르던 그들의 눈에 전혀 어울리지 않는 이상한 사랑스럽고 순수한 만족의 빛, 어린아이 같은 기쁨의 빛은 무슨 의미란 말인가! 


123 그들 모두가 아무런 가식 없이 자신을 그대로 내보였다. 그들은 자신들의 만족감을 있는 그대로 다 내보였다. ... 어떤 죄수는 자기가 얼마나 감동했는지 알리려 옆에 있는 사람이 누구인지 상관치 않고, 아니 보지도 않고, 그 사람을 팔꿈치로 꾹꾹 찔러 댔다.

... 나는 결코 과장하고 있는게 아니다. 감옥, 족쇄, 자유의 부재, 강요된 삶, 앞으로 오랫동안 계속될 서글픈 나날들, 음산한 가을날 똑똑 떨어지는 물방을 같은 단조로운 생활 같은 것을을 상상해 보라. 그런데 갑자기 이런 핍박받는 죄수들에게 사지를 활짝 펴고, ... 즐길 수 있는 시간이 허락된 것이다. 게다가 그 연극이란 것이 온 도시에 자랑할 만할 정도로 훌륭한 것이니 말이다.


137 그는 의식을 잃은 채 몇 시간이나 고통스러워하다가 숨졌다. 

... 그가 너무도 고통스러워하는 것을 보고 사람들은 어떻게든 그를 좀 편히 해 주고 싶어했다. 그는 숨 쉬는 것조차 어려웠으며, 깊게 숨을 들이마시려 했고, 목에서는 그렁그렁 하는 소리가 났으며, 마치 공기가 모자라는 듯이 그의 가슴은 높이 솟아올랐다.

... 그가 죽기 반 시간쯤 전부터 병실에 있는 모든 사람들이 숨을 죽이고, 속삭이는 소리로 조용조용 이야기를 했다. 걷는 데도 조심조심 발소리를 죽였다.

... 바로 그 순간, 역시나 머리가 희끗한 노인인 체쿠노프도 거기 서 있었던 것을 나는 기억한다.

"이 사람에게도 어머니는 있었어!" 체쿠노프는 이렇게 말하고 저쪽으로 가 버렸다.

이 말이 내 가심을 너무도 아프게 했다는 사실이 지금도 기억에 생생하다... 대체 무엇 때문에 그는 그런 말을 했을까? 왜 그런 말이 그때 그의 머리에 떠올랐을까? 

... 이미 복도로 나간 하사관이 대장장이를 부르러 누군가를 보내는 소리가 들렸다. 죽은 자에게서 족쇄를 벗겨 내야 했던 것이다...


142 그러나 강변에 서면 모든 것을 잊을 수가 있었다. 죄수가 자신의 감옥 창살로 자유로운 세계를 내다보듯 무한하고 광활하고 탁 트인 이 공간을 나는 바라보았다. 내게는 거기 있는 모든 것이 더없이 소중하고 사랑스러웠다. 끝없이 펼쳐진 푸르른 하늘에서 눈부시게 빛나는 따뜻한 태양도, 키르기스 강변 저쪽에서 아련히 들려오는 키르기스인들의 노랫소리도. 


157 그의 이런 말들에 어떤 아이러니나, 증오나 조롱이 있단 말인가? 하고 나는 생각했다. 아니, 그런 것은 눈곱만큼도 없었다. 그저 동료가 아니라는 것뿐이었다. 당신은 당신의 길을 가라, 우리는 우리의 길을 간다. 당신한테는 당신의 일이 있고, 우리한테는 우리의 일이 있다. 그저 그것뿐이었다.


160 족쇄가 떨어져 나갔다. 나는 그것을 집어 들었다... 그것을 손에 들고 마지막으로 한 번 더 찬찬히 바라보고 싶었다. 그것들이 방금 전까지도 내 발에 붙어 있었던가 하고 생각하니 새삼 놀라웠다.

"그럼, 안녕히! 안녕히 가시게들!" 죄수들이 띄엄띄엄, 거칠지만 그러나 뭔가 만족스런 듯한 목소리로 말했따.

그래, 안녕히! 자유여, 새로운 삶이여, 죽음으로부터의 부활이여... 이 얼마나 눈부시게 빛나는 영광의 순간인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