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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나 카레니나, 그리스인 조르바, 일리아스

Portrait of an Unknown Woman by Ivan Kramskoi

안나 카레니나

영어 중고책 서점(포린북스토어)에 책을 찾으러 갔다가 못찾고, 오랫동안 구경한게 미안해서 Signet Classics의 Anna Karenina를 샀다. 책 정가는 7.95달러인데 8000원에 샀으니 중고책이 아니라 새책을 산 셈이다. 1899년생인 David Magarshack의 번역인데, 처음에는 어려웠으나 읽다보니 익숙해져서 나중에는 단어를 검색하지 않고도 읽을 수 있었다. 2019년 9월 9일에 사서 2020년 6월 2일에 다 읽었으니 꽤 오래 걸렸다. 읽다가 인상적인 장면이 나오면 책 모퉁이를 접어 놓았는데, 다 읽고 보니 100페이지 정도는 접혀 있는 것 같다. 읽기 시작할 때는 거의 새책이었는데 지금은 확실히 헌 책이다. 안나도, 카레닌도, 브론스키도 그 누구도 미워할 수가 없다. 모두 좋은 사람들이다. 앞부분에 Priscilla Meyer가 쓴 책 소개가 있는데, 소설을 읽기 전에 한번, 다 읽고 나서 한번 읽었다. 처음에는 뭔소린지 몰랐는데, 책을 다 읽고 읽으니 아 그게 그거였구나 하는 생각이 드는 부분이 많았다. 나도 나름 큰 감동을 느끼고 톨스토이와 교감을 한다고 생각하며 읽었는데, 이렇게 전문적으로 연구하는 사람들은 정말 세세한 부분까지 놓치지 않고 작품을 분석하는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지난 몇 년 동안 톨스토이의 인생이란 무엇인가를 읽으며 톨스토이의 사상에 대해 이미 익숙한 상태이기 때문에 혼란 없이 작가가 말하고자 하는 바를 알 수 있었다는 생각이 든다. 전쟁과 평화보다는 덜 재미있었다. 부활보다는 훨씬 더 재미있었다. 안나 카레니나를 읽었다는 사람: 헌국샘, 슬로바키아의 나타샤.

 

그리스인 조르바

중고책을 하나 사 두고 시작을 못하고 있다가 도서관에서 DVD를 빌려 영화를 먼저 봤다. 영화를 보기 전에, 마지막 댄스 장면을 유투브로 먼저 봤었는데 전후맥락없이 그 장면만 봐도 충분히 뭔가를 느낄 수 있었다. 영화는 정말 충격적이고 감동적이었다. 책은 영화보다 더 재미있고 더 감동적이었다. 어렸을 때, 한 17-18년전?, 프루나인가 소리바다인가를 하다가 아무 키워드나 집어넣어서 새로운 노래를 다운받곤 했는데 그 때 찾은 노래 중 하나가 Dragostea Din Tei, 또 하나가 Zorba the Greek였다. 그리고 나서 시간이 흐른 후 2004년 TV에서 아테네 올림픽을 보는데, 이 Zorba the Greek의 띠딩- 띠디디딩- 하는 음악이 경기장에서 흘러나오던 기억이 난다. 16년이 흐르고 나서야 그 Zorba the Greek이 뭐였는지 알게 된 것이다. 이윤기 번역인데, 난 모르겠다. 이것보다 좋은 번역이 있을 수 있는지 정말 모르겠다. 웃기는 부분이 정말 많아서 혼자 낄낄거리며 읽기도 했는데 마지막 조르바의 편지를 읽을 때에는 울지 않을 수 없었다. 출근길 전철이었기 때문에 마음껏 울지는 못했다. 소설 속에서 끊임없이 대립되는 두 極, 즉 조르바의 인간적인 충동과 갈망과 욕정과 자유분방함, 그리고 부처의 절제, 초연함, 해탈, 이 대립되는 두 극이 융화되는 지점, 그곳에 답이 있는 것 같지만 이건 정말 어떻게도 표현될 수 없고 머리와 논리로는 설명할 수 없는 부분인 것 같다. 그리고 조르바가 되겠냐 부처가 되겠냐 하는 문제보다는, 카잔차키스와 조르바의 우정과 사랑, 그게 하염없이 안타깝고 좋았던 것이다.

 

Achilles Slays Hector, by Peter Paul Rubens (1630–35)

 

일리아스

예전에 에머슨인가 누구의 책을 훑어보다가, 성경과 일리아드 이 두 권이면 충분하다는 식의 글을 본 적이 있다. 이 구절을 다시 찾아보고 싶어서 가끔씩 에머슨 책을 뒤져보는데 못찾고 있는 걸 보면 다른 책에서 본 것일수도 있다. 아무튼 그 말을 듣고 일리아드에 대한 막연한 동경심을 품어오던 중 중고서점에서 영문판을 우연히 만나 샀는데, 당연히 시작도 못하고 있다. 그러다가 도서관에서 '명화로 보는 일리아스'라는 책을 빌려다 읽었다. 일단 그림이 많아서 좋다. 일리아드와 관련된 그림과 유물들이 이렇게나 많다는 것 자체가 이 일리아드의 위상을 그대로 보여주는 것이다. 이 책의 내용은 요약본일 줄 알았는데, 별로 요약한 것 같지도 않다. 그리고 일리아드 원본에는 없는 앞뒤 이야기까지 나와있다. 재미있는게, 예전에 '로지코믹스'에서 잠깐 읽었던 오레스테스에 관한 이야기가 일리아드 다음에 이어진다는 것이다. 그때는 몰랐는데 이게 전부 다 이어져 있는 것이었다. 아무튼 이 책으로 일리아드의 전체적인 내용 파악은 확실히 할 수 있었다. 읽다보면 내용이 꽤나 흥미진진해서 한 챕터만 더 읽을까 하는 생각을 몇 번 했다. 그런데 별로 중요하지 않은 등장인물들이 하도 많아서 좀 귀찮기도 했다. 다른 말로 하면 '네임드' 캐릭터가 너무 많아서 진짜 중요한 인물과 그렇지 않은 인물을 파악하는데 시간이 좀 걸린다. 디오메데스나 아이아스 같은 인물은 전에는 몰랐는데 비중이 아주 큰 인물이다. 아이아스의 영어식 이름은 Ajax인데, 그룹중에 에이잭스라는 그룹도 있고, 롤의 Jax도 여기서 따온 것 같다. 아, 정말 웃기는게 여기에 쓰고 있는 글들은 내가 이 책들을 읽으며 느꼈던 감정들과, 그리고 이 책들의 핵심과는 꽤나 동떨어져 있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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