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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일주/우루과이

우루과이 몬테비데오 - 아르헨티나 부에노스아이레스 이동 (여행 287일째)

201751. 몬테비데오 부에노스아이레스

 

[1] 어제 마테를 많이 마셔서인지 새로운 곳으로의 급작스러운 출발 때문인지 밤새 뇌가 흥분되어 잠들지 못했다. 자야 된다는 압박감은 있지만, 밤을 새워도 끄떡없을 것 같은 느낌도 들었다. 아르헨티나로 건너가기 전 콜로니아(Colonia del Sacramento)에서 며칠 쉬면서 구경을 하고 싶었는데, 카우치서핑에서 아무도 수락해 주지 않아서 결국 부에노스아이레스로 직행하게 되었다. 그 후에는 파라과이를 거쳐서 볼리비아로 들어갈 계획이다.

 

[2] 일찍 일어나 집주인(에미Emi)이 일어나기를 기다렸는데, 집주인은 알람만 맞춰놓고 일어나지 않았다. 한참을 기다리다가 결국 깨워서 문을 열어달라고 하고 나왔다.

 

텅 빈 거리. 사람도 별로 안 보이고, 다니는 차도 거의 없었다. 크리스마스 시즌의 유럽이나 추석 연휴의 한국과 비슷했지만, 그것보다 좀 더 심해서, 가게는 싹 다 닫혀 있었다.

 

딸기 크림이 들어가 있는 샌드 과자를 먹으면서 가다가, 노숙인 한 명이 온리 원이라면서 하나만 달라기에, 들고 있던 걸 다 줬다. 배가 많이 고팠나보다.

 

[3] 버스터미널에 도착하니, 버스회사 창구들이 거의 다 닫혀 있었다. 다행히 시캣(SeaCat)이나 부케버스(Buquebus) 같은 페리 회사들은 열려 있었다. 가서 부에노스아이레스 가는 표를 하나 달랬더니 1400페소(56000)라고 했다.

 

이거보다 싼 표는 없어요?” 라고 물어보니,

이게 제일 싼 표에요. 다른 건 없어요,” 라는 거다.

오늘 아침에 인터넷에서 봤는데 더 싼 표가 있었어요,” 라고 해도,

잘못 본 걸 거예요. 이게 제일 싼 표에요,” 라고 한다.

 

확인해보고 다시 올게요!” 라고 큰소리치고 창구를 나왔으나, 무료 와이파이가 잡히는 곳이 없어, 걷다 보니 에미네 집 앞까지 돌아왔다.

 

집 앞에서 희미한 와이파이를 잡아, 시캣에서 800페소짜리 표를 확인했다. 우리 카드로 한참을 씨름했지만 실패했다. 이미 작별한 에미를 다시 불러 결제를 부탁할까 고민했지만, 결국 다른 카드로 결제에 성공했다. 그렇지! 무거운 背囊을 메고 한 시간 반을 뺑이 친 보람이 있구나. 아까의 그 직원에게 당당히 표를 보여줄 생각에 의기양양해졌다.

 

시간이 많이 남아, 시내에서 환전소 열린 곳을 찾아볼까, 하고 가다가 티켓이 잘 결제된 건지 다시 한 번 확인을 하는데, 아니 이게 뭐야, 가격이 아르헨티나 페소라고 나와 있다. 800 아르헨티나 페소는 약 64000원으로 오히려 아까 그 창구에서 파는 표보다 비싸게 산 것이다. 순간 憤痛이 터지며 辱說을 뱉어냈다. 몇 푼 아끼자고 그 난리를 떨고, 사람을 못 믿더니, 결국 제 꾀에 제가 넘어간 것이다. (나중에 생각해보니, 에미에게 부탁하지 않은 것이 천만 다행이었다. 만약 에미의 카드로 결제를 하고 800 우루과이 페소를 주고 왔으면, 나는 에미에게 평생 사기꾼으로 남았을 것이다.)

 

이제 돈에 여유가 생겨, 돈을 의지하기 시작하자, 이런 바보짓도 하게 되고, 카우치서핑도 안 잡히는 것 같다.

 

[4] 빵집 하나가 구세주처럼 열려 있어, 남은 동전을 털어 빵과 과자를 샀다. 빵을 뜯어 먹으며, 약간 더워진 파란 하늘 아래의 텅 빈 도시를 터덜터덜 걷는데, 남루한 차림의 할머니가 지나가며 시선을 보내는 게 느껴졌다. 이럴 때 보통 눈을 피하고 걷는데 (눈을 마주치면 구걸하는 손길을 뿌리치기가 어려워지니까), 이번에는 그냥 눈을 마주치며, 고개를 끄덕이고 웃었다. 그 할머니는 전혀 구걸하지 않았고, 그저 내게 따뜻하고 다정한 인사와 미소만 주었다. 지나친 다음 돌아보니 할머니는 쓰레기통을 뒤지고 계셨다.

 

이미 멀어진 후에, 들고 있던 빵이라도 드릴까 하는 생각이 들었지만, 조금 망설이다가 다시 걸었다. 할머니에게 빵을 드렸다면, 나는 분명 하루종일 행복했을 거다.

 

[5] 부에노스아이레스의 첫인상은 너무 현대식이어서 실망스러웠다. 만나기로 했던 세비도 나오지 않았고, 베로니카도 연락이 없어, 빨리 이 도시를 떠나고픈 마음만 들었다. 근데 현대식 건물들이 들어선 구역을 지나 보행자 거리를 걷다보니, 오래된 유럽풍 건물들이 끝없이 늘어서 있는 멋진 거리가 이어졌다. 그래서 부에노스아이레스가 좋아졌다.

 

가게들은 우루과이와 마찬가지로 다 닫혀있었고, 거리는 조명이 없어 어두웠다. 어둡고 한산한 거리를 지나, 오늘 묵을 그라나도스 호스텔에 도착했다.

 

오늘은 정말 지치고 자괴감이 드는 하루였지만, 서글픈 호스텔의 음악과 어두운 조명, 소란스럽지 않은 분위기와 친절한 직원들, 깨끗한 침실과 화장실이 위로가 되어 주었다.

 

에미의 어렸을 적 사진
그래피티
현관에서 자는 노숙자. 문에는 쇠사슬이 걸려 있는데 아무도 살지 않는 것일까?
무슨 포스터인지 모르겠다.
거리의 예쁜 건물
셔터에 그려진 예쁜 그림
노숙자인지 취객인지 잘 모르겠다
서점에서 팔고 있는 재미있어 보이는 책들
몬테비데오의 예쁜 건물
천국에 가는 방법
부에노스아이레스에 도착했다. 어둑한 광장에 모여 집회를 하는 사람들. 오늘이 노동절이라서 그런것 같다.
호스텔은 깔끔하고 아늑해서 좋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