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채식

톨스토이 - 채식에 관한 명언 (5)

David Teniers II - Le dejeuner jambon

 

톨스토이 - 인생이란 무엇인가 (664-668쪽)

(채수동 고산 옮김)

 

[1] 살아 있는 것에 대한 연민은 우리의 마음에 육체적인 고통과 비슷한 감정을 불러일으킨다. 그리고 육체적 고통에 대해 무감각해질 수 있듯 연민의 고통에도 무감각해질 수 있다.

 

[2] 살아있는 모든 것에 대한 연민이야말로 그 사람의 도덕성에 대한 가장 확실하고 튼튼한 보증이다. 참으로 동정심이 깊은 사람은 결코 남을 모욕하지 않고 화나게 하지 않으며, 남에게 고통을 주지 않고 또 남을 비난하지 않으며 모두를 용서한다. 따라서 그 사람의 모든 행동에는 정의와 인간애의 각인이 새겨질 것이다. 만약 누군가가 "이 사람은 덕이 있는 인물이지만 연민이라는 것을 모른다"거나 "이 사람은 부정하고 사악한 사람이지만 동정심이 매우 많다"고 말한다면 우리는 거기서 커다란 모순을 느낄 것이다. (쇼펜하우어)

 

[3] 인간들이여, 이제 정당하지 않은 음식물로 몸을 더럽히지 말라!

너희에게는 곡식이 있다. 싱싱하게 반짝이는 붉은 열매가 주렁주렁 달려 저 나뭇가지가 저렇게 휘어져 있지 않은가!

반짝반짝 윤기가 흐르는 포도가 가지에 탐스럽게 달려 있고,

부드럽고 달콤한 뿌리와 풀은 들판에 무성하다.

그 밖에도 우리의 혀에 딱딱한 것은 불이 달콤하고 부드럽게 익혀준다.

신선한 우유도,

차조기의 향을 담고 있는 달콤한 꿀도,

너희에게 모두 허락돼 있다.

대지는 넘칠 듯한 풍요를

너희에게 제공하고 있다.

잔인한 살육도 피흘림도 없이

너희를 위해 맛있는 식탁을 준비한다.

다만 사나운 들짐승들만이

날짐승의 고기로 굶주린 배를 채운다.

그렇다고 모든 짐승이 다 그런 것은 아니다.

말도, 염소도, 소도, 모두가 조용히 풀을 뜯으며 평화롭게 살아가고 있지 않느냐!

오직 사나운 호랑이와 잔인한 사자, 또는 굶주린 이리와 곰 같은 포악한 육식동물만이 피를 즐긴다.

이 무슨 죄 많은 습성, 이 무슨 참혹한 모습인가!

위장이 위장을 삼키다니!

우리와 닮은 생물의 피와 살로 자신의 혀와 배를 만족시키고,

다른 생물을 죽여,

그 피를 마시고 살아가도 괜찮은 것일까?

우리를 키워주는 어머니인 대지의,

그 풍요로운 은혜에 둘러싸인 우리에게,

야수가 아니라 인간인 우리에게,

갈기갈기 찢긴 주검의 살점을,

흉포한 야수처럼,

날카로운 송곳니로 탐욕스럽게 물어뜯는 것이

정말 부끄러운 일이 아니란 말인가?

인간들이여! 다른 생명을 희생시키지 않으면,

너희의 처절한 굶주림을, 채워지지 않는 위장을,

달래줄 방법은 정말 없는 것일까?

전설에 의하면 그 옛날

황금시대라고 불리던 시절이 있었다.

사람들은 온화하게 소박하게, 또 행복하게 살며,

대지가 주는 열매만으로 만족할 줄 알고,

살아있는 생물의 피로 그 입을 더럽히지 않았다.

그때 새들은 평화롭게 하늘을 날았고,

겁 많은 토끼도 두려움 없이 들판을 뛰어다녔다.

물고기도 미끼에 속아 바늘에 걸리는 일이 없었고,

심술궃은 올가미와 함정도 없었으며,

어느 누구도 공포와 배신, 악의를 몰랐다.

지상의 모든 곳을 평화가 지배하고 있었다.

그 평화는 지금 어디에 있는가?

부드럽고 온순하며 나을 해칠 줄 모르는 양들이여,

인간들의 기쁨을 위해 태어난 양들이여,

너희들은 왜 죽지 않으면 안 되었느냐?

그 풍만한 젖가슴으로 아낌없이 우리를 먹이고,

부드러운 털로 따뜻하게 감싸주는 양들

그 행복한 삶이야말로 무참한 죽음보다

우리에게 더욱 더 유익한 존재인 것을!

우리의 협력자로서 하늘이 내려준 황소여!

묵묵히 거부할 줄을 모르는 농부의 벗이여,

너희에게 무슨 죄가 있겠는가?

무거운 멍에로 털마저 닳아버린 부드러운 그 목에

잔인한 손으로 날카로운 도끼를 내려칠 수 있을 정도로

인간들은 너희에 대한 고마움을 까맣게 잊었구나.

인간들을 키워주는 어머니인 대지를

곡식을 수확할 수 있게 논밭을 갈아준 것을

그 일꾼의 뜨거운 피로 물들이다니?

오, 인간들이여!

무서운 것은 너희의 혐오스러운 습관

그것은 참으로 쉽게 범죄의 길을 연다.

죽기 전의 가련한 울음소리를 들으면서

죄 없는 송아지를 도살하는 자

그 가냘픈 울음소리가

갓난아기의 울음소리와도 닮은 어린 양을 도살하는 자

재미 삼아 하늘의 새를 쏘고

특히 자기 손으로 키운 것을 잡아먹는 자여!

너희에게는 사람을 죽이는 것도 어렵지 않으리라.

너희의 잔인한 습관은 식인의 한 걸음 앞이다!

오, 형제들이여!

삼가라, 각성하라.

우리는 너희에게 호소한다!

살해함으로써 논밭의 경작자인 황소를,

그 경작에서 떼어놓지 말라.

오히려 너희에게 묵묵히 봉사한

소로 하여금 자연사할 수 있도록 내버려 두어라.

자신의 몸을 방어할 줄 모르는 가축을 죽이지 말고

너희를 그 부드러운 털로 따뜻하게 감싸고

제 젖을 아낌없이 너희에게 마시게 하면서

너희의 목장에서 평화롭게 살다

조용히 혼자 숨을 거두게 하라.

올가미를 치우고 함정을 제거하라!

하늘을 나는 새들을 해하지 말라.

오히려 그들로 하여금 걱정 없이 날아다니며

우리에게 행복과 자유의 노래를 부를 수 있게 하라.

교활한 그물을 거두고 죽음의 먹이를 매단 바늘을 버려라!

순진한 물고기를 비겁한 속임수로 낚지 말라.

산 짐승의 피로 인간의 입을 더럽히지 말라.

죽어야 할 자여, 똑같이 죽어야 하는 존재를 동정하라!

허락된 음식만으로 살아라.

사랑으로 가득한 깨끗한 사람의 마음에 어울리는 음식으로 살아라.

(오비디우스 작 아 페 바이코바야 역)

 

[4] 인생에서 종교를 실천하는 첫 번째 조건은 살아있는 모든 것에 대한 사랑과 동정심이다. (포펜 힝치킹)

 

[5] 생명에 대한 연민은 선량한 성격과 떼어놓을 수 없는 밀접한 관계이므로, 생명에 대해 잔인한 인간은 절대로 선량한 인간이 아님을 확신을 가지고 주장해도 된다. (쇼펜하우어)

 

[6] 살생은 모두 혐오스러운 것이지만, 그중에서도 먹기 위해 하는 살생이 가장 혐오스럽다. 그리고 어떤 방법으로 죽일 것인지 생각하거나 죽인 생물을 어떻게 먹으면 가장 맛이 있을지, 또는 어떤 양념을 하면 좋을지 등등 여러가지 취향을 시도하면 할수록 더욱 더 혐오스러운 것이 된다. (골드슈타인)

 

[7] 다른 생명이 고통스러워하는 모습을 보고 괴로움을 느낄 때, 그 괴로운 광경에서 눈을 돌려, 그 장면에서 달아나고자 하는 순간적인 감정에 빠져서는 안 된다. 반대로 괴로워하는 것에게 달려가 그것을 구할 방법을 찾는 것이 옳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