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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일주/불가리아

불가리아: 비오는 플레벤과 중고시장 (여행 85일째)

2016년 10월 11일 화요일

불가리아 플레벤(Pleven)


[등장인물]

제라(Zehra): 카우치서핑 호스트. 부스의 언니. 태국에서 인턴 중.

부스(Buse): 제라의 동생. 플레벤에서 공부 중. 


1. 아침에 일어나니 그저 막막하다. '버스를 타고 소피아(Sofia)로 가야 하나. 아니다 그저 걷자. 어떻게든 되겠지. 먼저 환전을 하고, 동굴 쪽을 향해 걸어가자.' 이렇게 마음을 먹고 아침 8시쯤 나갈 준비를 끝냈다. 옆 방의 부스(Buse)는 알람이 울리면 계속 끄면서 일어날 생각을 하지 않는다. 오전 10시가 거의 다 되어서, 어색한 침묵을 뚫고, 주방에서 아침 식사를 준비하는 부스에게 언제 학교에 가냐고 물어보니, 10시 반쯤 가서 4시 반쯤 돌아온다고 나갔다 오고 싶으면 그래도 좋다고 한다. 어라? 그러면 내가 오늘 떠나는 것으로 알고 있는게 아니네? 그래서 오늘 여기서 머물러도 되냐고 물어보니, 있고 싶은 만큼 있어도 좋다고 한다. 와우! 그럼 비구름이 완전히 지나갈 때까지 여기서 시간을 때우다가 가도 되겠다! 신나는 마음에 이따가 보자고 하고 집을 나선다. 나와서 넓적하고 기름진 빵, 달콤한 딸기잼 빵을 하나씩 사먹고(이 근처 가장 싼 호텔이 25000원 정도 하는데 빵은 하나에 200-300원이라 부자가 된 기분이다), 시티센터 쪽으로 갔다가 북쪽의 기차역 방향으로 올라간다. 그런데 옷을 단단히 입고 나오지 않아 꽤나 춥다. 어제 길거리의 쓰레기통에 누가 걸어두고 간 외투를 주웠는데, 아직 세탁은 못했지만 그걸 입고 다녀야겠다.


제라의 방. 카우치서핑의 재미 중 하나는 다른 사람의 방을 구경하는 것이다. 제라는 팔찌를 모으는 것 같은데, 이 당시에는 팔찌를 만들 줄도 모르고 재료도 없어서 선물을 해주지 못해 아쉬웠다.


하드락 카페 티셔츠도 모으는 것 같다.


아... 간밤에는 어찌나 냉기가 돌고, 추위가 두렵고, 떠나기 싫고, 막막하던지... 하지만 지금은 완전히 재충전 되고, 장비도 보강되어서 든든하다. 어제와 오늘 들렀던 중고 가게에서 두꺼운 침낭을 살 예정이다. (지금 갖고 다니는 건 가볍고 작은 대신 너무 얇아서 해먹에서 자는 동안 침낭 속에 들어가 있는데도 벌거벗은 것처럼 엉덩이가 시려웠다) 중고 옷이나 침낭 가격이 오늘은 14레프, 내일은 13, 모레는 11, 금요일은 9, 토요일에는 7레프로 떨어진다고 한다. 매주 새로운 중고품이 들어오고, 기한이 지나면 치워버리는 방식이다. 토요일까지 기다렸다가 가장 싸졌을 때(7레바 = 약 5천원) 사면 좋겠지만, 곧 이 도시를 떠나야 하니... 


기차역에서 기차시간을 보고, 소피아에 가는 표 가격도 물어봤다. 답변을 알아듣지는 못했다. 역 내부의 따뜻함을 즐기다가 버스 터미널로 가서 버스표 가격도 확인한다. 그리고 나서 20달러 지폐를 레프로 환전하려는데, 지폐 가운데가 조금 찢어져 있고 테이프가 붙어있다고 환전을 안해준다! (환전을 부탁하고 기다리면서 만지작 거리기만하고 안 바꿔주기에, 이게 만약 위폐라면 어떻게 해야하나, 어디서 받은 지폐인지도 모르는데 하는 불안한 마음이 들었다) 그래서 지폐를 돌려 받고, 테이프를 떼어서 좀 더 가다가 다른 환전소에 가니, 좀 더 좋은 환율로 친절하게 환전해준다. 오예~! 그 다음엔 철물 마트에 가보려고 했는데, 위치를 찾기 힘들어서 길거리의 신발 파는 것과 중고 가게를 대신 구경했다. 자전거 헬멧, 양말, 모자, 목도리 등을 거저 주듯이 싼 가격에 팔고 있다. 신발은 7, 8, 9레프정도 하는데, 발이 시렵긴 시렵지만 5레프 정도 하는 걸 찾고 싶다. 내일 한번 더 가봐도 좋겠지. 지금 신고 다니는 신발은 물이 새서 비오는 날, 땅이 젖은 날에는 양말을 신을 수가 없어 발이 시렵다. 누가 버린 신발을 덥썩 주울 것 같기도 한데... 역시 주머니에 돈이 있으면 마법의 불빛이 사그라든다. 


골목의 이름 모를 예쁜 교회 건물.



항저우에서 같이 놀아주던 료루를 베를린에서 다시 만나기로 했다. 각 도시별로 나뭇잎을 모아 달라고 해서 예쁜 나뭇잎을 주우려고 땅만 보며 돌아 다녔다.






중고 가게.


재래시장.


다시 방향을 돌려 남쪽의 보행자 거리로 향한다. 노점 상인들은 비가 오면 무슨 생각을 할까? 오늘 장사는 그만하고 쉬어도 되니 좋아할까 아님 물건을 못팔아 서러워할까. 보행자 거리를 걷다 보니 어제 돌아다니던 그 플레벤(Pleven)과는 다른 곳 같은 기분이다. 교회 옆에 음수대가 있길래 마셔도 될까 생각하고 있는데, 마치 나에게 알려주듯 지나가던 사람들이 물을 마시고 간다. 나도 물을 마시고 물통에 물을 담는다. 교회에는 벽을 따라 성화들이 그려져 있는데 그림의 느낌이 너무 좋다. 어찌보면 동남아 불교 사원의 수많은 부처들, 보살들처럼, 이곳의 종교도 유일신이 아닌 다신교의 느낌을 준다.


보행자 거리.


야채 피자 두 조각 = 1.4레프(약 950원)






교회 내부에 있던 방석.


음수대.


피자, 콜라, 커피, 크로아상이 무지 싸다. 하지만 이 당시에는 어찌나 마음이 가난했던지 모든 것이 그림의 떡이었다.


또 다른 중고가게.


요일마다 가격이 떨어지는 방식이다. 토요일에 오면 헐값이 원하는 물건을 살 수 있다.


2. 비가 내리기 시작한다. 그리 큰 비는 아니지만, 비를 맞으며 걷다가, 도시 외곽을 돌아 대형 철물 마트로 간다. 비도 피하고, 이것저것 구경도 하고, 부스(Buse)가 학교에서 돌아올 때까지 시간도 때우고, 일석삼조. 역시 돈이 생기니 괜히 물건들이 사고 싶어진다. 고무신, 로프, 텐트, 돗자리, 자전거 등이 눈에 들어온다. 로프가 두꺼우면서도 싼게 있어 2m씩 두개 사서 가게를 나온다. 다시 비를 맞으며, 집시촌을 지나(비가 오는데 빨래를 걷지도 않는다), 리들(Lidl)에서 한참 동안 먹거리를 쇼핑한다. 어제 리들에 왔을 때 출구를 잘못 알아서 비상구 문을 열었다가 경보음이 울리게 했었는데, 그걸 기억하는지 날 째려보는 것 같은 경비아저씨의 눈길을 피하며, 먹거리를 들고 부스의 집으로 돌아온다.


비가 오니까 그칠때까지 기다렸다가 목요일(내일 모레)에 가도 되냐고 물어보니, 친구들이 집에 놀러 오기로 전부터 약속이 되어 있어서 안된다고 한다. 오전에는 있고 싶은 만큼 있어도 된다고 들은 것 같은데 오해였나 보다. 아쉽네... 중고 침낭 가격도 덜 떨어지고, 날씨도 아직 덜 풀려서... 뭐 어쩔 수 없지. 이렇게 2박이나 하게 된 것도 하늘에서 받은 선물이고, 부스제라는 얼굴 한번 본 적 없는 낯선 남자를 여자 혼자 사는 집에 재워준 고마운 천사들이었다. 


카우치서핑 요청을 여기저기 보내다 보니 벌써 밤 12시가 넘었다. 내일 일은 내일 걱정하고 자자. 도덕경, 명상록, 엥케이리디온을 읽으며 불안한 마음을 위로한다.


대형 철물 마트와 리들에 갔다가 제라의 집으로 돌아가는 길에 있던 집시촌.


기테에게 받은 실로 팔찌를 만들어 보지만... 볼품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