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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지코믹스: 버트런드 러셀의 삶을 통해 보는 수학의 원리

로지코믹스(Logicomix): 버트런드 러셀의 삶을 통해 보는 수학의 원리

글: 아포스톨로스 독시아디스, 크리스토스 H. 파파디미트리우 | 그림: 알레코스 파파다토스, 애니 디 도나 | 옮김: 전대호


뚜렷하게 구분되는 특색있는 캐릭터들과, 영화를 보는 듯한 전개도 좋았고, 세 개 이상의 시공간 축을 넘나들며 진행되는 이야기의 구성도 흥미진진하고 흡입력이 있어서 아주 재미있게 읽었다. 버트란드 러셀과 동시대의 학자들은 물론, 고대 그리스의 철학자들부터 네 명의 저자들까지 인간들이 어떻게 "토대를 찾아서" 모험을 해 왔는가에 관한 이야기이다. 

여기서 "토대"는 흔들리지 않는 확고하고 근본적인 기반을 말한다. 힌두 신화에서는 지구가 네 마리의 코끼리 등 위에 올려져 있고 그 코끼리는 거대 거북의 등 위에 있다고 말한다. 그렇다면 그 거대 거북은 무엇을 밟고 서 있는가, 그리고 그 무엇은 또 어떤 것을 밟고 서 있는가-하는 질문이 무한히 이어진다. 마찬가지로 어떤 원인 A에 의해서 어떤 결과 B가 일어났다고 할 때, AB의 원인인 동시에 어떤 다른 원인 X의 결과일 것이다. 그렇다면 그 원인 X는 무엇의 결과이고, 그 무엇은 또 어느 것의 결과인가-하는 질문이 무한히 이어진다. 이 무한한 원인들을 시발한 최초의 원인이자, 무한하게 많은 거대 거북 행렬의 맨 아래에 있는 그 무언가, 그것이 바로 러셀이 찾고자 한 "토대"였다.

얼마전 버트런드 러셀의 <나는 무엇을 위해 살아왔는가>라는 책을 읽으면서, 그가 1차 세계대전 때는 반전운동을 하다가 동료들로부터 배척당하고 수감까지 당했는데 2차 대전 때는 미국의 참전을 지지하게 된 것을 알고, 그 이유가 궁금했지만 그 책에는 구체적인 설명이 없었다. 그런데 재미있게도 이 책에서 러셀의 이야기는, 미국의 평화주의자들이 러셀에게 미국의 참전에 대한 입장을 표명하라는 요구를 하는 것으로부터 시작한다. 마치 저자들이 내 지난 독후감을 흘낏 보고는 그것에 대한 답장을 보내온 것 같았다. 그리고 이 책은 내가 가졌던 궁금증과 평화주의자들의 의문에 대한 대답을 미끼로 독자를 이야기의 마지막까지 살살 꾀어 간다. "당신은 평화를 지지하느냐 전쟁을 지지하느냐"라고 따져 묻는 청중에게 러셀은 직접적인 대답 대신 자신의 인생 이야기를 들려 준다.

부모님의 부재와 복잡한 가정사로 인해 러셀의 어린 시절은 불우했다. 안정적으로 마음을 기댈 존재의 부재는 러셀로 하여금 확고하고 흔들리지 않는 절대적 대상에 대한 갈망을 키워낸다. 바로 그 절대적 진리를 제시할 수 있을 것만 같은 한줄기 빛이 있었으니 그것은 바로 수학이었다. 하지만 수학에서 '명제'를 '증명'하려면 '공리'가 필요하다는 사실을 알게 된 러셀은 절망에 빠진다. '공리'라는 토대가 있어야만 '증명'이 가능한데 그렇다면 '공리'는 과연 어떤 토대 위에 올려져 있는가-하는 것이 러셀의 질문이자 평생에 걸친 탐구 주제였다.

본격적으로 마법의 세계(수학과 논리의 세계)에 들어간 러셀은 화이트헤드, 칸토어, 프레게, 비트겐슈타인 등 당대의 위대한 학자들과 영향을 주고 받으며 업적과 명성을 쌓는다. 이 책(로지코믹스)에서 버트런드 러셀의 논문과 저서에 대한 내용은 그리 깊게 다뤄지지 않는다. "고스트 바둑왕(히카루의 바둑)"이 '바둑을 두는 방법'을 가르치는 만화가 아닌 '바둑에 대한 열정을 불태우는 사람들'에 관한 만화인 것과 마찬가지로 이 책(로지코믹스)도 '논리와 수학'을 가르치는 만화가 아닌 '논리와 수학을 통해 진리를 찾고자 열정적으로 노력한 사람들'에 관한 만화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 책을 재미있게 읽은 사람은 자연스럽게 논리와 수학을 다루는 다른 책들을 찾아보게 될 것이다.

역설을 발견하는 러셀 (출처: amazon.com)

러셀의 인생 이야기가 끝나고 만화책 속 이야기는 다시 평화주의자들 앞에서 강연을 하고 있는 러셀에게로 돌아온다. 청중은 다시 러셀에게 묻는다. "당신 이야기가 전쟁과 무슨 상관이 있소?" 러셀은 자신의 업적과 명성에도 불구하고 결국 자기가 시도했던 것, 토대를 찾는 작업은 실패로 돌아갔음을 고백한다.

"나도 이 사람(라이프니츠)과 똑같은 꿈을 꾸었습니다. 논리학 문제에서 인간사에 이르기까지 모든 문제를 푸는 완벽히 논리적인 방법을 발견하겠다는 꿈. ... 확실성의 모범인 논리학과 수학에서도 완벽한 이성적 확실성에 도달할 수 없다면, 하물며 복잡하고 어지러운 인간사에서는 더 말할 것이 있겠습니까? 사적인 영역과 공적인 영역을 막론하고 인간사에서 완벽한 이성적 확실성에 도달하기는 정녕 불가능합니다."

청중은 이런 러셀의 대답을 납득하지 못하고 계속해서 그를 추궁한다. 그리고 러셀의 이야기는 여기서 끝나지만, 이 책(로지코믹스)의 작가들이 하는 이야기는 계속된다. 그리스인인 작가들은 그리스 비극 "오레스테이아"의 한 장면으로 전체의 이야기를 마무리한다. 이 비극의 주인공 오레스테스는 자신의 아버지를 살해한 자신의 어머니를 살해한다. 들개의 가면을 쓴 복수의 여신들은 법정에서 아테네 시민들에게 오레스테스의 죄를 심판할 것을 요구한다. 아테네 시민들의 투표 결과 동률로 판결이 이루어지지 않기 때문에 최종 선고는 아테나 여신에게 맡겨지고, 여신은 오레스테스에게 무죄를 선언한다. 그리고 복수의 여신들에게 분노를 가라앉히고 자비로워질 것을 권한다.

William-Adolphe Bouguereau (1825-1905) - The Remorse of Orestes (1862)

이 책 속의 얽히고 섥힌 이야기들을 통해 얻을 수 있는 교훈은 다음과 같다. 우리는 절대적인 해답을 말할 수 없다는 것. 각 사람에게는 그 사람의 해답이 있지만, 그것을 모든 사람에게 적용시킬 수는 없다는 것. 간혹 우리는 잔인한 양자택일을 강요받지만 아무도 그 해답을 말해주지 못할 때가 있다는 것. 러셀의 삶이 그랬고, 오레스테스의 삶이 그랬고, 아테네 시민들의 판결이 그랬다. 결국 우리에게는 다른 이들의 행동과 결정을 판단할 능력도 권리도 없다. 오직 자기 자신의 행동을 결정하고 판단할 수 있을 뿐이다.

나는 여전히 톨스토이나 간디와 같은 절대적 평화와 사랑의 정신, 왼뺨을 맞으면 오른뺨을 대는 정신에 해답이 있을 거라 생각한다. 하지만 그 해답을 상황에 따라 어떻게 적용할지 알기 어려울 때가 많은 것도 사실이다. 예를 들어 나는 동물들도 의식이 있는 존재라고 생각하기 때문에 채식을 옹호하고 육류 소비를 반대한다. 한편 동물에 대한 공감 능력과 동정심이 적고 육류를 즐기는 사람들도 있다. 이런 상황에서 병든 노모가 설렁탕을 먹고 싶어한다면, 나는 과연 어떻게 해야 하는가. 돈을 주고 설렁탕을 산다면 육류 생산과 동물들의 고통을 조장하는 것이 된다. 설렁탕 대신 된장국을 사 드리면 노모의 간절한 소원을 무시하는 불효자 청개구리가 된다. 과연 둘 중 어떤 행동이 진정한 사랑의 정신에 가까운 행동일까. 이렇게 사소한 결정부터 아테네인들의 판결처럼 무거운 결정까지 인생은 딜레마의 연속이다.

남의 삶을 들여다 보는 것은 언제나 흥미롭다. 이 책을 읽으면서 버트런드 러셀의 삶을 통해 내 자신의 삶을 돌아볼 수 있었다. 그리고 러셀에 대해 가졌던 의문도 어느 정도 해결되었다. 다른 누구나의 삶과 마찬가지로 러셀의 삶도 모순 투성이였지만, 적어도 그는 끝까지 기품을 잃지 않았다. 궁극적 목표 성취를 실패했음에도 불구하고 냉소적으로 세상을 바라보는 대신 잔잔한 평화와 기쁨으로 세상을 대했다. 결국 성공한 셈이다. 네 명의 작가는 훌륭한 예술 작품을 만들어 냈다. 이런 종류의 책이 더 많았으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