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명: 고요한 폭풍, 스피노자 - 자유를 향한 철학적 여정
저자: 손기태
[1]
- 스피노자의 "에티카(황태연 역)"를 대출했는데 이해할 수 없는 용어가 많아 앞부분의 "지성교정론"도 다 읽지 못하고 반납기한이 지나 버렸다. 에티카를 반납한 후 도서관에서 스피노자의 철학을 해설한 책을 몇 권 대출했고, 그 중 이 책이 가장 쉬워서 끝까지 읽었다.
[2] 내용
- 스피노자의 친구들: 스피노자는 반교권적이고 비정통적인 입장에 서 있는 기독교도들과도 친분을 맺음. 그들은 주로 재세례파 가운데 콜레기안파Collegiants와 메노파Mennonites 사람들로, 예수의 가르침에 따라 이웃에 대한 사랑을 실천하고 서로의 재산을 공유하면서 제도와 권위에 속박되지 않는 자유로운 신앙을 추구. 스피노자는 특정 종교에 속하지 않았지만 어느 종교에 대해서도 적대시하지 않음.
- 스피노자의 삶: 아버지가 남긴 유산이 분란의 빌미가 되어 누이가 재산을 모두 가로채려 함. 스피노자는 재판에서 승소하여 상속권을 확인받았지만, 낡은 침대 하나만 남기고 누이에게 유산을 모두 넘김. 그는 부가 제공해줄 수 있는 자유가 그리 크지 않다고 여겼기 때문임. 500플로린씩 지급되기로 예정된 연금을 사양해 300플로린만 지급. 시몬 드 브리스는 스피노자를 상속자로 두려 했지만 거절. 자신에게 책을 헌정하면 평생 연금을 지급하겠다던 루이 14세의 제안도 거절. 죽은 뒤에 그에게 남은 재산은 160여권의 책뿐이었음. 대중에게서 인기를 얻으려 하지 않고 남의 이목에 관심을 두지도 않음. 아무런 부나 재산도 갖지 않는 간소한 삶. 인간의 자유와 행복에 대한 변함없는 확신과 열정.
- 영원한 기쁨: 진정한 행복과 기쁨이 어디로부터 주어지는지. 부, 명예, 쾌락(관능)은 아님. 그러나 금욕주의와는 다름. 빈궁이 아닌 검소함을, 화려함보다는 풍요로움을, 은둔이 아니니 평온함을. 영원하고 무한한 존재에 대한 사랑. 일시적으로 얻는 기쁨과 달리 우리에게 영원한 기쁨을 부여하며 어떠한 슬픔으로부터도 떨어져 있을 것임. 영원하고 무한한 존재가 실제로 존재하는지, 존재한다면 어떻게 찾을 수 있는지 알아보는 일이 급선무.
- 공동체: 자신의 철학을 나누기를 원함. 우정을 강조. "인간에게는 교제하며, 그들 모두를 하나로 만들기에 가장 알맞은 유대를 결속하는 것, 절대적으로 말해서, 우정의 강화에 도움이 되는 행위가 무엇보다도 유익하다." (에티카 5부 부록7)
- 신: 스피노자가 말하는 영원하고 무한한 존재. 다른 무엇으로부터 창조되지도 않았고, 자신이 아닌 다른 어떤 것에 의존하지도 않음. 모든 자연 만물을 생성하고 변화시키는 원인이며, 그 자신은 결코 소멸될 수 없는 영원하고 무한한 존재임. 인간에게 참된 행복을 주는 것은 영원하고 무한한 존재에 대한 사랑, 즉 '신'에 대한 사랑에 있을 것임.
- 실체substance: 스스로 존재하는 것. 자립적으로 존재. 불변하고 영원히 존재. 원인. 자립적으로 존재하는 개별적 실재. 주술관계에서의 주어subject. 주어에 대해 이러저러한 다양한 특성이 서술될 수 있지만 주어에 해당하는 실재는 오직 하나. 신은 실체에 해당.
- 양태mode: 스스로 존재할 수 없음. 의존적으로 존재. 끊임없이 변화하며 언젠가는 소멸됨. 결과. 주어에 대해 다양한 방식mode으로 서술되는 실재. 무한히 복잡한 외적 인과관계의 한가운데 놓여 있는 양태들은 극도의 우연성에 의해 지배됨. 그 이면에는 오로지 수학적이고 물리적인 인과 법칙만이 작용. "우리는 바람에 일렁이는 파도처럼 수많은 방식으로 외적 원인에 의해 휘몰리며, 우리의 운명과 결과를 알지 못한 채 동요한다." (에티카 3부 정리 59 주석)
- 단일한 물체singular thing: 본성이 서로 다른 개체들의 합성에 의해 만들어진 개체.
- 개체의 합성: "개체의 각 부분이 여러 물체로 합성되어 있으므로, 각 부분은 개체의 본성을 전혀 변화시키지 않고, 어떤 때는 느리게, 어떤 때는 빠르게 움직이며, 그리하여 자신의 운동을 다른 부분에 더 빠르게 또는 느리게 전달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만일 우리가 이러한 제2의 종류의 개체로 조직된 제3의 종류의 개체를 생각한다면, 우리는 그러한 개체가 자신의 형상에 아무런 변화도 없이 다른 많은 방식으로 움직일 수 있음을 발견할 것이다. 그리고 이렇게 계속해서 무한히 나아간다면, 우리는 자연 전체가 하나의 개체라는 것을, 그리고 그 부분들 즉 모든 물체가 전체로서의 개체에는 아무런 변화도 미치지 않고 무한한 방식으로 변화한다는 것을 쉽게 알게 된다." (에티카 2부 정리 13 보조정리 7 주석) 예를 들어 물은 수소와 산소라는 개체의 합성으로 이루어짐. 물은 다른 개체들과 합성하여 또 다른 개체를 이루고, 그것은 더 큰 개체를 이루는 것이 무한히 이어지며 자연 전체를 구성.
- 신체와 정신: "즉 어떤 신체가 동시에 많은 작용을 하거나 많은 작용을 받는 데 다른 신체보다 유능하면 할수록, 그것의 정신 역시 동시에 지각하는 데 다른 정신보다 더 유능하다. 그리고 어떤 신체의 활동이 그 신체에만 의존하는 것이 많고 다른 신체들(또는 사물들)과 함께 활동하는 것이 적으면 적을수록, 그것의 정신은 뚜렷하게 인식하는 데 그만큼 더 유능하다." (에티카 2부 정리 13 주석) 신체가 부상을 입으면 마음도 무거워짐. 마음이 슬프고 괴로우면 신체도 무기력해짐. 운동선수가 철학자만큼 정신적인 능력을 지니지는 못하고 철학자가 운동선수만큼의 신체 능력을 지니지는 못함. 하지만 각각 자신의 신체적 변용에 따른 정신적 변용 능력을 지님.
- 죽음: 신체가 새로운 관계 아래 놓임으로써 또 다른 개체로 '변용'되는 것을 의미.
- 개체와 전체: 인간이라는 개체는 이미 하나의 공동체(단순한 물체 혹은 다른 개체들의 합성으로 이루어짐). 공동체는 그 자체로 하나의 개체(자신 안에 속하는 여러 개체에 대해 하나의 '전체'로 존재하며 하나의 통일성 부여). 각각의 개체는 전체의 일부분이면서도 제각기 자율적으로 작동한다는 점에서 전체에 종속되지 않음.
- 부적합한 관념과 적합한 관념: 적합한 관념은 외적 원인에 의해 자극되어 우연하게 파악된 것이 아님. 여러 사물이 공통적으로 결정되는 내적 원인을 통해서 파악. "정신이 자연의 일상적 언어로 사물을 인식할 때, 말하자면 *외부로부터* 결정되어 사물과의 우연한 접촉으로 인하여 이것저것을 관찰할 때, 정신은 자기 자신에 대해서도, 자신의 신체에 대해서도, 외부 물체에 대해서도 적합한 인식이 아니라 단지 혼동된 인식만을 갖는다. 그러나 *내부로부터* 결정되어, 곧 많은 사물을 동시에 관찰함으로써 사물의 일치, 차이와 반대를 인식할 때는 그렇지 않다. 왜냐하면 정신이 이러저러한 방식으로 내부로부터 결정될 때에는 ... 사물을 명료하고 뚜렷하게 관찰하기 때문이다." (에티카 2부 정리 29 주석)
- 공통 개념: 무한한 인과 계열 속에서 양태들 간의 연결관계를 내적으로 파악할 수 있는 이유는 양태들 간에 '공통적'인 것이 존재하기 때문. 넓은 의미에서 보자면, 자연 안의 모든 사물은 연장 속성의 양태라는 점에서 공통적임. "모든 것에 공통적이며 부분에도 그리고 전체에도 똑같이 있는 것은 적합하게 파악될 수밖에 없다." (에티카 2부 정리 38) 이러한 공통적인 것에 대한 인식을 '공통 개념'이라고 함. 신체들 간의 운동과 정지, 결합관계에 대한 인식으로서의 공통 개념은 우리가 최초로 형성하게 되는 적합한 관념임. 예를 들어 자전거를 타는 것은 신체와 자전거 사이의 공통된 것을 형성함으로써 가능. 인간의 신체가 자전거와 하나가 되면서 자신의 신체처럼 느끼고 사용하게 됨. 처음부터 모든 양태에 공통적인 것(가장 일반적인 공통 개념)을 인식하지는 못하지만 최초의 공통 개념으로부터 좀더 공통적인 것에 대한 인식으로 나아갈 수 있음. 좀더 많은 사물들에 공통적인 것을 인시갛ㄹ수록 우리는 좀더 적합한 관념을 갖게 됨. 특히 그것은 신체적인 관념이라는 것을 강조. "신체가 다른 물체와 공통으로 갖는 것이 많으면 많을수록 정신은 더욱 더 많은 것을 지각할 수 있다." (에티카 2부 정리 39 주석)
- 자유의지free will: 정말 우리는 자기 의지에 따라 마음대로 신체를 통제할 수 있는가? 과연 젖먹이가 자유의지에 따라 젖을 먹고, 성난 소년이 자유의지에 따라 복수를 원하는가. 겁쟁이가 도망치는 것이 자유의지에 따른 것인가. (에티카 3부 정리 2 주석) '자유의지'란 무지에 기초한 착각. 사람들은 자신의 욕망을 충족시키는 것에만 관심이 있고 그 욕망이 어째서 생겼는지는 무관심함. 욕망하게 된 원인이 무엇인지에 대해서 생각하지 않는 한 우리는 '의지'가 아닌 '충동'에 따라 행동하는 것임. "인간이 자신을 자유롭다고 믿는 것은 그릇된 일이다. 그러한 의견은 단지 그들이 자신의 행동은 의식하지만 그들로 하여금 그렇게 행동하게 하도록 결정하는 원인을 모르는 데에서 성립한다. 그러므로 그들이 자기 행동의 원인을 모른다는 것이 그들의 자유 관념이다. 왜냐하면 그들이 인간 행위는 의지에 의존한다고 말하더라도 그것은 그들이 그것에 대해 아무런 관념도 갖지 않은 채 하는 말에 불과하기 때문이다. 왜냐하면 의지가 무엇인지, 그리고 의지가 어떻게 신체를 움직이는지 그들은 아무것도 모르기 때문이다." (에티카 2부 정리 35 주석) 정신 역시 신체와 마찬가지로 외적 원인에 의해 결정됨. 우리 자신에 대해 자유롭다고 여기는 믿음이 도리어 우리를 자유롭지 못하게 만듦. 우리는 필연적으로 다른 외적 원인, 즉 타자에 의해 끊임없이 영향을 주고 받으며 존재할 수밖에 없는 점을 고려해야 함.
- 자유원인: 신에게는 자신의 본성과 어긋나는 어떠한 의지도 있을 수 없으며, 신은 오직 자기본성의 필연성에만 따름. 신만이 어떤 외적 원인에도 영향을 받지 않는 '자유원인'이라 할 수 있음.
- 인간이 갖는 자유: '하고 싶은 것'과 '할 수 있는 것'을 구별해야 함. 새처럼 날거나, 벼룩처럼 뛰거나, 말처럼 달리는 것은 불가능. "인간의 능력은 인간의 실재적 본질을 통해 펼쳐지는 한에서, 신 또는 자연의 무한한 능력, 즉 그것의 본질의 일부다." (에티카 4부 정리 4 증명) 신은 자신의 무한한 능력을 표현하며, 양태들은 신의 능력을 특정한 방식으로 표현하는 존재들임. 인간은 자신의 고유한 능력을 확장시키는 방식으로 자유를 획득. 즉 자기 본성에 고유한 방식으로 신의 능력을 표현. 우리에게 고유한 능력은 어떤 것이며, 그러한 능력은 어떻게 변용되는가? 자신의 능력을 확장시키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가?
- 선과 악: "사람들은 ... 모든 것에 대하여 자기에게 가장 유용한 것을 핵심이라고 판단하고, 자기를 유쾌하게 해주는 것을 가장 탁월하다고 평가. ... 사물의 본성을 설명하기 위해, 선, 악, 질서, 혼란, 따뜻함, 추움, 아름다움, 추함 등과 같은 개념을 형성. ... 건강과 신의 경배에 도움이 되는 모든 것을 선이라 하고 그 반대를 악이라고 했다." (에티카 1부 부록) 선과 악은 결코 사물의 본성에 속한 것이 아님. 인간이 사물로부터 자극받은 대로 판단한 것임. "공포의 원인이나 대상이던 모든 것은, 그것에 의해 마음이 동요되는 한에서가 아니라면, 그 자체로는 선도 악도 아니며..." (지성교정론) 살인 자체만을 가지고는 선악 판단이 어려움. 우리가 사물의 참된 원인을 알지 못할 경우에만 선악은 '당위'가 되고 '명령'이 된다. "신이 아담에게 선악과를 먹지 않기를 원했다면, 아당이 선악과를 먹는 것은 불가능. 왜냐하면 신의 뜻은 영원한 필연성과 진리를 포함하기 때문" (신학정치론 4장) 신이 선악과를 먹지 말라고 한 것은 어머니가 아이에게 건물 옥상에 올라가지 말라고 하는 것과 같음. 아이를 걱정해서 그러는 것이지만 아이는 그 이유를 이해하지 못하므로 단순한 금지 명령으로 받아들임. 신의 처벌과 보상이라는 아담의 생각은 무지와 공포에서 온 잘못된 가정. 신은 선한 자나 악한 자에게 동일하게 해를 비추며, 불의한 자나 의로운 자에게 동일하게 비를 내려줌. 악한 자에게는 악하고 어리석은 삶이 그 처벌이고, 선한 자에게는 선하고 지혜로운 삶이 보상이 될 것임. 개체의 본성에는 '악'이 속해 있지 않음. 다만 개체들 간의 관계에서 선과 악이 생김. 양태들의 결합은 '선'하다 할 수 있고 서로를 파괴한다면 '악'하다고 할 수 있음. 안중근과 연쇄살인범, 네로와 오레스테스, 사랑의 매와 폭력.
- 윤리학: 도덕이 선악을 잣대로 무조건적 명령에 의해 강제되는 법률이라면, 윤리학은 특정한 조건 아래서 좋음과 나쁨을 파악하는 관계의 규칙들. 모든 양태는 자신에게 유익한 것을 추구하며 이를 통해 자기 존재를 유지하려 함. 큰 물고기나 작은 물고기, 사자와 물소, 현자와 바보, 자유로운 인간과 예속적 인간 모두 마찬가지. 하지만 누구나 자신에게 좋은 것과 나쁜 것을 판단할 능력을 가진 것은 아님. 양태들의 노력은 자신에게 좋은 마주침을 판단하는 것에 집중되어야 함.
- 능력: "존재할 수 없는 것은 무능력이고, 반대로 존재할 수 있는 것은 능력"이다. (에티카 1부 정리 11 증명 3) 이런 능력은 왕의 권한처럼 우리가 소유하거나 임의로 양도하는 것 자체가 불가능. 다른 사람 대신 존재하거나 암기하거나 식사할 수 없음. 양태의 능력은 신에게서 부여받은 것. 왜냐하면 신만이 필연적으로 영원히 존재하며, 그에게 무한한 실존 능력이 속하기 때문. 모든 양태는 실체의 무한한 변용으로서, 제각기 고유한 변용 능력을 지님. 양태가 무한히 다양하게 존재한다는 것은, 그들이 신의 변용 능력을 제각기 무한한 방식으로 표현했다는 것을 의미.
- 욕망: 각 사물의 본성과 신체 상태에 따라 그들에게 유익한 것이 다름. 부정적이거나 사악한 것이 아니라 자기 능력의 표현이자 그 능력을 증대시키기 위한 노력. 욕망을 없애버리거나 억압하는 것은 오히려 인간을 무기력하고 굴종적인 존재로 만듦. 스피노자가 말하는 욕망은 인간의 능력, 자유와 예속의 문제와 관련됨. 쾌락은 오히려 인간을 무능력하고 부자유한 존재(예속적인 존재)로 만듦. 욕망과 관련하여 무엇이 자기 능력을 증대시키고 자유롭게 만드는지를 아는 것이 중요. 유능하면 유능할수록 자유로워지며, 무능할수록 예속적인 존재가 됨.
- 정서: 능력이 증가하면 기쁨. 능력이 감소하면 슬픔. 기쁨을 추구하며 슬픔은 멀리함. 우리에게 기쁨을 주는 대상과는 결합하고자 하며, 슬픔을 주는 대상은 피하고자 함. 다른 양태들에게 영향받지 않고 홀로 유유자적하는 것은 양태의 본성상 불가능함. "우리는 바람에 일렁이는 파도처럼 수많은 방식으로 외적 원인에 의해 휘몰리며, 우리 운명과 결과를 알지 못한 채 동요한다." (에티카 3부 정리 59 주석) 자신의 능력으로부터 나온 정서(능동)가 아니라 외적인 마주침에 의해 생겨난 정서(수동)는 '정념passion'으로 분류됨. 우리와 마주치는 대상이 기쁨을 줄 지 슬픔을 줄 지는 미리 결정되지 않음. 심지어 기쁨을 주던 사물이 슬픔의 원인이 될 수도 있음. "모든 사물은 기쁨, 슬픔, 또는 욕망의 우발적인 원인이 될 수 있다." (에티카 3부 정리 15) 정념은 외적 자극에만 의존한 부적합한 인식에서 나오는 정서로 끝없는 혼란과 방황에서 벗어날 수 없게 함. 적합한 인식은 외적 자극이 아닌 우리 자신의 능력으로부터 나와야만 함. 부적합한 인식은 몸 전체의 이익을 고려하지 않으며, 자신이 자극받은 신체 일부에 국한되는 이익만 고려함(에티카 4부 정리 59)
- 예속: 아무리 기쁨의 정서를 축적하더라도 그 자체로는 능동의 정서가 되지 못함. 스피노자는 특히 쾌락이나 연민, 증오 등의 정서를 경계. 우리로 하여금 끊임없이 수동적 상태에 고착되도록 만들기 때문. '예속'이란 바로 이런 상태를 가리킴. "정서의 조절과 억제에 대한 인간의 무능력을 나는 예속이라고 말한다. 왜냐하면 정서에 복종하는 인간은 자신의 권리 아래 있는 것이 아니라 운명의 권리 아래 있으며, 흔히 더 좋은 것을 보기는 하지만 더 나쁜 것을 따르도록 강제당하는 것과 마찬가지로 그는 운명의 힘 안에 있기 때문이다." (에티카 4부 서문) "예속적인 인간은 자신의 능력으로 활동하지 못하고 그저 운에 따라 이리저리 휩쓸리거나, 자신보다 강한 능력을 지닌 개체에 압도되어 그저 수동적으로 존재할 수밖에 없다. 우리는 예속적이 될수록 무엇이 자기에게 유리한 것인지를 판단할 능력을 잃으며, 이로 인해 자신의 능력을 증대시킬 적합한 관계를 형성할 수 없게 된다. 여기서 욕망은 그저 맹목적인 채로 남아 있고, 자신의 능력이나 활동을 확대시키지 못한 채로 무수한 단절과 실패만을 경험하게 되는 것이다. (에티카 4부 정리 60 증명)
- 예속의 극복: 욕망에 대한 긍정, 기쁨을 통해 우리 자신의 능력을 확장. 적합한 관념을 갖는 것(우리에게 무엇이 유익하고 해로운지 아는 것)을 통해 예속에서 벗어남. "정신이 적합한 관념을 갖는 경우에는 필연적으로 작용하고, 적합하지 못한 관념을 갖는 경우에는 필연적으로 작용을 받는다." (에티카 3부 정리 1) 다른 신체와의 공통적인 것을 더 많이 인식할수록 더 적합한 관념을 갖게 됨. "신체가 다른 사물과 공통으로 갖는 것이 많으면 많을수록 정신은 더욱더 많은 것을 지각할 수 있다." (에티카 2부 정리 39 주석) 매순간의 구체적인 마주침 속에서 공통 개념을 형성할 기회를 갖지 못한다면, 적합한 관념을 형성하는 데 실패하게 됨. 어떻게 공통 개념을 갖는가? 우리 자신의 능력에서 나오는 '능동의 정서'를 통해. 슬픔의 정념을 이해하면 그로부터 능동적인 정서를 이끌어내고, 그것은 더 이상 슬픔을 주지 않게 됨. 이러한 공통 개념은 수동의 정서에 의존하는 대신 능동적으로 기쁨을 만들 수 있도록 해줌. 이성의 힘으로 정념을 전적으로 통제하는 것은 불가능하지만, 정념에 대해 올바르게 이해한다면 정념이 더 이상 우리를 지배하지 못하도록 할 수 있음. 모든 만물이 신의 변용이라는 점에서 공통적이기 때문에 우리가 공통 개념을 형성할 수 없는 대상은 없음. "모든 충동이나 욕망은 부적합한 관념들에서 싹트는 한에서 정념이며, 적합한 관념들에 의해 불러일으켜지거나 발생될 때는 덕이 된다." (에티카 5부 정리 4 주석) "우리가 슬픔의 원인을 이해함에 따라서 슬픔은 정념이기를 멈춘다. 다시 말해 슬픔이기를 멈춘다." (에티카 5부 정리 18 주석) 이를 위해서는 많은 경험과 노력이 요구됨.
- 기쁨의 정념: 자신의 능력을 일깨워주는 역할을 하므로 기쁨이 제공하는 무수한 기회를 적극 활용할 필요가 있음. 즉 자신의 능력과 욕망을 긍정하라는 것. 능력이 크고 작은 것은 문제가 아니라 능력이 확장되고 있는가 축소되고 있는가가 관건. "자유로운 인간은 자신에게 중요하다고 판단되는 것, 자신이 욕망하는 것을 행하지만, 예속된 인간은 자신이 알지 못하는 것을 행하며 원치 않는 일을 행하게 된다." (에티카 4부 정리 66 보충) 예를 들어 서양철학 - 철학사 흐름, 각종 개념, 고전 언어, 외국어 등 공부를 위해 필요한 것이 많을 때 지쳐 포기하게 됨(부정의 방식). 스피노자는 자신의 능력과 욕망에서 출발하는 '긍정의 방식' 제안. 평소 자신이 공부해보고 싶었던 철학자로부터 출발해 관심사를 넓히고, 점점 수월하게 됨. 능력의 확장. 오로지 적합한 관념을 갖는 것은 불가능하지만 자신에게 기쁨을 주는 신체들과의 관계를 늘리고 슬픔을 주는 관계를 줄여갈 수는 있음.
- 성서: 성서와 예언자를 신뢰할 수 있는 근거는 바로 '신을 사랑하고 이웃을 사랑하라'는 성서의 가르침. 성서의 계시들은 과학적 지식과는 무관하며, 신의 말씀에 단순히 복종할 것을 요구. 성서의 권위는 자연적 지식이 아닌 도덕적 확실성에 근거.
- 참된 종교: 외적 형식이 아니라 신을 사랑하고 이웃을 사랑하라는 가르침과 그것의 실천 여부에 달림. 대조적으로 '처벌과 보상의 종교'는 사람들이 신의 본성을 제대로 알지 못하는 데서 기인. 신의 말씀이 명령이 되는 것은 그것이 영원한 진리임을 알지 못하는 한에서일 뿐임. "(영원한 진리에 대한) 즉각적인 복종은 사랑으로 변하는데, 이러한 사랑은 태양으로부터 나오는 빛과 마찬가지로 동일한 필연성에 의해 참된 지식으로부터 일어나는 것이다. 따라서 이성의 지도에 의해서는 신을 사랑할 수 있지만 그에게 복종할 수는 없다." (신학정치론 16장) "신법의 최고 보상은 법 그 자체, 즉 신을 알고 참된 자유 속에서 진심으로 신을 사랑하는 것이다. 그것이 내리는 형벌은 이러한 것들의 결핍과 육체에 속박되는 것, 즉 변덕스럽고 우유부단한 정신이다." (신학정치론 4장) 보상을 받기 위해 노력하는 자는 자유인이 아니라 노예다. 자유인은 보상을 위해 선을 행하는 것이 아니라, 신에 대한 사랑 그 자체에서 행할 뿐이다. 따라서 스피노자는 지복이 덕에 대한 보상이 아니라 덕 그 자체라고 선언한다. (에티카 5부 정리 42)
- 코나투스: 인간을 비롯한 모든 생명체가 자신의 존재를 보존하기 위해 하는 모든 노력. 정서를 결정.
- 자연권: 각자 본성과 능력에 따라 자신이 할 수 있는 모든 것을 할 최고의 권리. 큰 물고기가 작은 물고기를 잡아먹는 것. 고양이가 사자의 본성대로 살 의무가 없는 것처럼, 바보도 현자도 이성에 따라 살아야 할 의무는 없음. 각자가 자신의 자연권에 따라 살아갈 최고의 권리를 가짐. 그러므로 자연은 우리가 "욕망할 수 없는 것만을, 할 수 없는 것만을 금지한다." (신학정치론)
- 평화: 우리 자신의 덕과 능력에서 나오는 적극적이고 긍정적인 것이어야 함. 전쟁이 없는 상태가 사람들의 무능력에 기반하거나 그들을 더욱 예속되도록 만든다면, 그것은 진정한 평화가 아니라 오히려 노예 상태.
- 대립과 일치: 베드로와 바울이 동일한 것을 사랑할 때, 표면적으로는 대립하는 것으로 보임. 하지만 둘이 동일한 것을 사랑하는 한에서 본성상 서로 일치하며, 각자의 기쁨 또한 강화될 수밖에 없음. 혼자서 기뻐하던 것보다 동일한 것을 사랑하는 다른 사람과 함께할 때 기쁨은 배가됨. 베드로와 바울이 대립한다면 서로 불일치하는 것 때문에 대립하게 됨. 사랑하는 것을 소유한다는 관념으로 인한 기쁨과 소유하지 못한다는 슬픔. 하지만 슬픔은 수동적 정서에 의한 판단으로 부적합한 관념임. 수동적 정념에 따를 때는 서로 대립하지만 이성에 따를 때는 일치함.
- 다양성: 정서가 아닌 이성(본성)에서 일치된 것을 추구하는 사회일수록 각자의 다양성도 확대. 다양성은 능력의 크기와 비례함. 절대적으로 무한한 능력을 지닌 실체가 자신을 무한히 다양한 속성으로 표현하는 것처럼, 유능한 존재일수록 자신을 다양하게 표현함.
- 감사: 무엇보다도 자유로운 사람들은 서로에 대해 감사한다. (에티카 4부 정리 71) 이는 다른 개체가 자신에게 끼친 영향에 대해 공통적인 것을 형성함으로써, 즉 서로가 내적으로 일치함으로써 서로에 대해 감사할 수 있게 되는 것이다. 인간만이 아니라 자연의 다른 개체들, 나아가 자연 전체에 대해서까지 감사하도록 이끔.
- 현재의 삶: 자유로운 인간들은 희망이나 공포의 정서에 지배를 덜 받는다. 그들은 이성을 통해 생겨나는 만족을 통해서 자신들의 삶을 긍정할 줄 알기 때문이다. (에티카 4부 정리 52) 현재의 삶을 긍정하는 것과 마찬가지로 그들은 더 나은 미래의 선을 긍정한다. "정신은 더 적은 현재의 선을 더 큰 미래의 선을 위하여 필연적으로 포기하고, 현재에서는 선이지만 미래의 어떤 악의 원인이 되는 것은 결코 욕구하지 않을 것이다." (에티카 4부 정리 62 주석)
- 능력의 분리: 자신의 능력으로부터 분리되지 않은 자는 능동적으로 판단하고 행동. 실패하더라도 귀중한 교훈으로 삼기 때문에 잃을 것이 없음. 자신의 원하는 삶을 살고 자신이 추구하는 바를 행하므로 작은 성취라도 행복을 누림. 자신의 능력으로부터 분리된 자는 외적인 것에 의해 판단하고 행동(수동적). 다른 사람이 원하는 삶, 다른 사람이 요구하는 것을 행하기 때문에 실패할 경우 외적 환경이나 다른 사람의 탓으로 책임을 돌림.
- 3종 인식: 능동적으로 될 수록 더 완전한 인식을 갖게 되며, 그만큼 신의 본성에 참여하게 된다. (에티카 4부 부록 31) 우리 신체가 능동적이 될수록 우리는 자신이 신의 일부임을 느낀다. 우리는 신 안에 있는 그대로 신이 사유하는 것처럼 사유하며, 신이 느끼는 기쁨 그대로의 기쁨을 느끼게 된다. 스피노자가 말하는 <3종 인식>은 바로 이것이다. "우리는 우리가 영원하다는 것을 느끼며 경험한다. 왜냐하면 정신은 지성에 의한 파악과 기억을 똑같이 느끼기 때문이다. 왜냐하면 사물을 보고 관찰하는 정신의 눈은 증명 자체이기 때문이다." (에티카 5부 정리 24 주석) 여기서 완전히 새로운 종류의 욕망, 무엇보다도 신에 대한 지적 사랑이 생겨난다. 우리는 구원이나 지복, 자유가 신에 대한 변함없고 영원한 사랑, 또는 인간에 대한 신의 사랑에 있다는 것을 알게 된다. (에티카 5부 정리 36 주석)
- 능동적 변용: 누구라도 실존하는 동안에는 각자의 변용 능력을 실현. 수동적으로 변용될수록 외적 변용에 좌우되며 우연적인 것이 삶을 차지함. 죽을 때 거의 모든 것을 잃게 되고, 죽음에 대해 두려워할 것이 많아서 슬픔과 공포, 미신이 삶을 점하게 됨. 능동적으로 변용될수록 외적인 변용에 덜 좌우되며 자신이 할 수 있는 모든 것을 실현하게 됨. 자신의 삶을 구성하는 것은 신의 영원한 부분들이며, 그런 만큼 죽을 때 잃어버리는 것이 거의 없음. 그래서 죽음에 대해 거의 두려워하지 않게 되며, 능동적 기쁨이 삶을 지배하게 됨.
- 지옥: 미래에 닥칠 심판이 아닌 현재 삶의 일부로 존재. 정서에 예속되어 운의 지배 아래 살아가는 삶. (신, 인간, 그리고 인간의 행복에 관한 소론 2부 18장) "환자는 죽음에 대한 두려움으로 인하여 자신이 싫어하는 것을 먹는다. 그러나 건강한 사람은 음식을 즐기고 죽음을 두려워하여 그것을 직접 피하려는 사람보다 삶을 즐긴다." (에티카 4부 정리 63 보충)
- 실천적인 방안들: 기쁨을 지속적으로 증대시킬 방안. 좋은 음식과 맑은 공기, 적절한 운동 경기와 이런저런 예술활동을 즐기는 것은 매우 유익. 무엇보다도 다른 사람들과 유대를 맺고 우정을 강화시키는 것이 유익.
- 노력: "이제 여기에 이르는 것으로 내가 제시한 길은 매우 어려워 보일지라도 그것은 발견될 수 있다. 물론 이처럼 드물게 발견되는 것은 분명 어려운 일임에 틀림없다. 왜냐하면 구원이 가까운 곳에 있고 큰 노력 없이도 발견될 수 있다면, 어떻게 거의 모든 사람이 그것을 등한시할 수 있었겠는가? 하지만 모든 고귀한 것들은 힘들 뿐만 아니라 드물다." (에티카 5부 정리 42 주석)
- 더 읽을거리:
스티븐 내들러, "스피노자: 철학을 도발한 철학자"
매슈 스튜어트, "스피노자는 왜 라이프니츠를 몰래 만났나"
스티븐 내들러, "에티카를 읽는다"
스티븐 내들러, "스피노자와 근대의 탄생"
질 들뢰즈, "스피노자의 철학"
질 들뢰즈, "스피노자와 표현의 문제"
알렉상드르 마트롱, "스피노자 철학에서 개인과 공동체"
[3]
- 실체, 양태, 속성 등 아직 명확하지 않은 개념이 많다. 우리가 제대로 이해할 수 없는 것(무한, 실체)을 정의하고 설명하는 과정에서 일종의 공백이 생기는 것 같다. 실체가 갖고 있는 무한한 속성은, 어떤 물체가 색상과 형태를 동시에 가질 수 있다는 것과 마찬가지로 대립하지 않고 존재한다고 한다. 그런데 색상과 형태는 모두 '연장 속성'에 속하는 것들이기 때문에 앞의 예는 적절하지 않다. 또 우리가 알고 있는 모든 만물은 '연장 속성'과 '사유 속성'에 속한다고 하는데, 이 두 가지 속성이 확연히 구분되는지 아닌지도 의문이다. 예를 들어 자기장, 전파, 뇌파, 컴퓨터에 저장된 사진 등은 연장인가 사유인가. 담벼락에 그려진 그림은 '연장'의 양태인가 '사유'의 양태인가. 그리고 이런 속성들이 무한대로 존재한다는 것은, 나로서는 상상을 통해 구체적인 이미지를 그려볼 수가 없기 때문에, 대체 스피노자가 '어떤 것'을 생각하면서 글을 쓴 것인지 알 수 없고, 아직 이해할 수도 없다. 연장에도 사유에도 속하지 않는 속성은 우리가 상상할 수 있는 범위를 넘어선 것일 텐데, 단지 신의 무한성을 통해 상상할 수도 없는 무엇의 존재를 확신할 수 있는지는 잘 이해되지 않는다.
- 자유의지는 우리의 상상 속에만 존재하고 우리의 모든 행동과 생각은 외부 원인에 의해 결정된다고 하는데(신만이 자유로움), 어떻게 우리가 능동적으로 변용할 수 있는건지 이해되지 않는다. 어떠한 사건 A에 대해 우리가 선택권 없이 슬픔(1종 인식)으로 반응한다면, 그 슬픔에 대한 반응(2종 혹은 3종 인식)은 어떻게 능동적으로 선택할 수 있는 것일까. 이 '능동적 변용'이라는 것은 인과관계의 사슬에서 벗어나 있다는 걸까? 그렇다면 자유의지가 존재하지 않는다는 앞의 말과 모순된다. 이 부분에 대한 더 확실한 이해가 부족하다.
- 스피노자는 우정과 공동체를 중시했고 뜻이 맞는 사람들과 활발하게 교류했지만, 그의 가족이나 유대인 공동체로부터는 분리된 삶을 살았다. 얀 데 비 트Jan de Witt 형제가 살해당했을 때는 야만의 극치라는 대자보를 걸어 대중의 무지를 비난하려 했다. 이런 면에서 스피노자에게는 자신과 뜻이 통하는 (자유로운) 자들만이 우정의 대상이었다. 그렇다면 우리가 그런 우정의 대상을 찾지 못 할 때에는 어떻게 해야 할까. 혼자서 고립되는 것이 나을까, 아니면 주변에서 만날 수 있는 예속된 사람들과 교류하는 것이 나을까.
[4]
- 스피노자의 욕심이나 두려움이 없는 청빈한 삶과 평온한 마음을 본받자.
- 사람들과의 관계에서 비공통 개념을 찾는 습관은 분리, 미움, 오해를 낳는 경향이 있다. 만물에서 공통 개념을 찾는 연습을 하자.
- 예속의 극복(능동적 변용)은 명상과 비슷하다(빅터 프랭클의 <죽음의 수용소에서Man's Search for Meaning>도 떠오른다). 매순간 마음에 떠오르는 애착과 혐오의 감정을 의식하자.
- 자유로운 사람이 되기 위해 노력하자.
- 책을 더 읽자.
- 공동체에 관해서 더 생각해 보기.
[5]
- 좋은 책이다. 에티카 뿐만 아니라 지성개선론(지성교정론), 신학정치론, 스피노자의 편지 등의 다양한 저술을 통해 스피노자의 철학을 설명한다. 추상적인 부분에서는 많은 예시를 통해 이해하기 어려운 개념들을 잘 설명해 주기 때문에 큰 도움이 되었다. 그러면서도 스피노자의 철학에 대한 설명이라는 본분을 다한다. 독특한 책의 삽화도 책과 잘 어울린다. 아직 완전히 이해한 것은 아니기 때문의 스피노자의 다른 책들, 스피노자에 관한 다른 책들을 읽어본 후 다시 읽으면 더 명쾌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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