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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피노자 - 지성개선론 [1-29]

Joust on the Hofvijver (Source: Wiki Commons)

 

On the Improvement of the Understanding by Benedictus de Spinoz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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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명: 지성개선론(지성교정론) - 지성의 교정에 관한, 그리고 지성을 사물에 대한 참된 인식으로 가장 잘 인도해 주는 길에 관한 논문.

저자: 스피노자(Baruch Spinoza)

역자: R. H. M. Elwes, 황태연, 강영계

 

대부분의 사람들이 바라는 선

[1]
(1) 일상 속 온갖 일들의 공허함과 무의미함을 경험으로 배우고, 두려움의 대상이 그 자체로는 선도 악도 아니었음을 깨달은 후, '홀로 정신을 감동시키는 참된 선', 한 번 획득하면 끊임없는 최고의 기쁨을 영원히 주는 것이 존재하는지 탐구하기로 마침내 결심함.

[2]
(1) "마침내 결심"했다고 말한 이유는, 불확실한 것(참된 선의 획득)을 위해 확실히 손에 쥔 것을 포기하는 것이 미련해 보였기 때문임.
(2) 이 새로운 것을 위해 진지하게 전념한다면, 부와 명예가 가져오는 이익들을 포기할 수밖에 없음.
(3) 만약 최고의 행복이 부와 명예에 있다면 나는 최고의 행복을 얻지 못함. 반대로 최고의 행복이 부와 명예에 없는데 이것들에 정력을 바친다면, 나는 최고의 행복을 얻지 못함.

[3]
(1) 기존의 행동 및 생활방식을 바꾸지 않고 새로운 목표에 도달하는 것이 가능한지 여러번 시도해 보았으나 실패함.
(2) 왜냐하면 사람들이 최고의 선으로 생각하는 것들인 부, 명예, 감각적 쾌락은 정신을 단단히 사로잡기 때문에 다른 선에 대해서는 생각할 수 없음.

[4]
(1) 감각적 쾌락: 정신은 이것에 마냥 안주해도 되는 것처럼 열중해 다른 것은 생각하지 못함. 하지만 향락이 끝난 다음에는 극심한 슬픔이 뒤따름. 감각적 쾌락은 정신을 혼란시키고 흐리게 함.
(2) 부와 명예: 마찬가지로 정신을 사로잡는데, 특히 자체를 위해서 추구될 때 정신이 혼란됨.
(주석1) 부가 그 자체를 위해 추구될 때, 명예를 위해서, 감각적 쾌락을 위해서, 건강을 위해서, 예술 및 학문의 진보를 위해서 추구될 때를 구별할 수 있음.

[5]
(1) 정신은 명예에 의해서 더욱더 혼란됨. 이것은 그 자체로 선이고 궁극의 목적으로 여겨지기 때문임.
(2) 명예와 부의 획득은 감각적 쾌락과는 달리 후회가 따르지 않고, 얻으면 얻을수록 기쁨이 증대되기 때문에 그것들을 얻도록 고무됨. 하지만 그 희망이 좌절되면 극심한 슬픔에 빠지게 됨.
(3) 명예의 또 다른 단점: 명예를 추구하기 위해 사람들이 피하는 것을 피하고 구하는 것을 구하면서 다른 사람들의 이해력에 맞추어 살게 됨.

[6]
(1) 이것들이 새로운 목표를 추구하는데 방해되고, 서로 반대되기 때문에 둘 중 하나는 포기되어야 함.
(2) 새로운 목표를 추구하는 것은, 본성상 확실하지만 획득여부가 불확실한 선(참된 선)을 위해 본성상 불확실한 선(부, 명예, 쾌락)을 포기하는 것임.

[7]
(1) 끝까지 숙고할 수만 있다면(I could really get to the root of the matter), 확실한 선을 위해 확실한 악을 단념할 것이라는 결론에 이름.
(2) 죽을 병에 걸린 환자가 아무리 불확실하더라도 모든 희망을 걸고 전력으로 치료약을 구하는 것처럼, 나도 전력을 다해 내가 처한 중대한 위기를 벗어날 치료약을 찾아야 함.
(3) 사람들이 보통 추구하는 것은 치료약이 아닌 장애가 되며, 그것을 소유한 사람이나 그것에 소유당한 사람에게 파멸의 원인이 됨.

[8]
(1) 부 때문에 박해를 받아 죽거나, 재물을 얻기 위해 위험과 맞서다가 결국 생명을 바친 사람들의 예는 수두룩함.
(2) 명예를 얻거나 지키기 위해 비참함을 맛본 사람들의 예도 그에 못지 않음.
(3) 과도한 감각적 쾌락으로 죽음을 재촉한 사람들의 예는 셀 수조차 없음.

[9]
(1) 이 모든 악은 행복이나 불행이 우리가 사랑하는 대상에 달려 있다는 사실로부터 생김.
(2) 사랑하지 않는 것 때문에 싸움이 일어나지는 않고, 그것이 사라져도 슬픔이 없고, 남이 소유하고 있다고 질투가 생기지도 않음. 두려움도 미움도 없고, 정신에 아무런 동요도 없게 됨.
(3) 이 모든 것들은 사라질 것들을 사랑하는 것에서 생김.

[10]
(1) 하지만 영원하고 무한한 것에 대한 사랑은 슬픔이 없고 기쁨으로 정신을 만족시킴. 이것이야말로 바람직한 것이고 모든 힘을 기울여 구해야 함.
(2) 하지만 '끝까지 숙고할 수만 있다면'이라는 말을 괜히 한 것은 아님. 왜냐하면 정신적으로 인지한 것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탐욕, 관능욕, 명예욕을 제거할 수는 없었기 때문임.

최선의 그리고 최고의 진리

[11]
(1) 적어도 정신이 이러한 사상을 지향하고 있는 동안은 욕망에서 벗어나 진지하게 사유할 수 있었음. 이처럼 악에 대한 치료약이 있다는 것이 큰 위안이 됨. 
(2) 이 간격이 처음에는 드물고 짧았지만, 참된 선에 대한 인식이 커질수록 이 간격은 잦아지고 길어짐. 특히 부, 쾌락, 명예가 수단이 아닌 그 자체를 위해 추구되면, 단지 장애물일 뿐이라는 걸 깨달은 후 그렇게 됨. 반면 그것들이 수단으로 추구된다면, 한계를 가질 것이고, 장애물이 되지 않을 것이고, 추구하는 목적을 이루는 데 유용할 것임.

[12]
(1) 여기서는 참된 선이 무엇이고 최고선의 본성이 뭔지 간단히 언급하겠음.
(2) 올바른 이해를 위해서는 선과 악이 상대적이라는 것을 기억해야 함. 같은 것이 관점에 따라 선이나 악도 될 수 있고, 완전하거나 불완전할 수 있음.
(3) 본성 그 자체에는 완전이나 불완전의 개념이 없음. 특히 모든 일은 영원한 자연의 법칙에 따라 발생한다는 것을 알면 그러함.

[13]
(1) 하지만 인간은 나약해서 이 법칙을 깨닫지 못함. 하지만 인간은 자기의 것보다 훨씬 강력하고 영구적인 인간의 본성을 생각하며, 그 특성을 얻지 못할 이유가 없다고 생각함.
(2) 따라서 그는 이 완전함을 얻기 위해 모든 수단을 강구하고, 그 모든 수단을 참된 선이라 칭함.
(3) 최고선은 그가, 가능하면 다른 이들도 함께, 이 본성을 소유하는 것임.
(4) 이 본성은 정신과 자연 전체의 합일에 대한 인식임.

[14]
(1) 내가 지향하는 것은 그런 본성을 얻고, 많은 사람들이 나와 함께 그것을 얻도록 노력하는 것임.
(2) 다시 말해서 다른 사람들이 내가 이해하는 것처럼 이해하고, 그들의 지성(understanding)과 욕망이 나와 일치하도록 돕는 것이 내 행복임.
(3) 이것을 위해서는 ① 그러한 본성을 획득하기에 충분할 만큼 자연에 대해 이해하는 것이 필요함. ② 가능한 많은 사람들이 그것을 쉽게 얻을 수 있도록 바람직한 사회를 조성하는 것이 필요함.

[15]
(1) ③ 도덕 철학과 교육 이론의 도움이 필요함. ④ 건강도 중요하기 때문에 의학이 필요함. ⑤ 발명품에 의해 어려운 일들이 쉬워지고 우리에게 많은 시간과 편리함을 줄 수 있으므로 기계공학도 중요함.

[16]
(1) 무엇보다도 사물을 오류없이 가능한 최선의 방법으로 이해할 수 있도록 지성을 개선하고 정화할 방법을 고안하는 것이 필요함.
(2) 모든 학문을 우리가 인간의 완전성을 얻는 방향으로 설정. 우리에 목표에 부합하지 않는 학문은 무용지물임.
(3) 우리 모든 행동과 생각이 이 목표를 향해야 함.

어떤 삶의 규칙들

[17]
(1) 우리가 목표를 위해 노력하는 동안 다음과 같은 삶의 규칙이 필요함.
(2) ① 대중이 이해할 수 있는 방식으로 말하고, 우리의 목표에 방해되지 않는 한 모든 관습을 따름.
(3) 왜냐하면 대중으로부터 적지 않은 이득을 얻을 수 있기 때문임. 또한 진리를 받아들일 청중을 얻게 됨.
(4) ② 건강을 지키는데 필요한 만큼만 쾌락을 즐길 것.
(5) ③ 사회의 관습을 지키고 건강을 지키는데 꼭 필요한 만큼의 돈이나 물건을 얻도록 노력할 것.

네 가지 지각 방식

[18]
(1) 이 규칙을 기반으로 가장 중요한 작업인 '지성(understanding)의 개선(지성이 우리 목적 달성에 적합한 방식으로 사물을 인식할 수 잇도록 하는 일)'에 착수하겠음.
(2) 그것을 위해 먼저, 내가 사물을 긍정하고 부정하는데 사용해 온 인식의 모든 종류를 정리해 보겠음. 이것을 통해 최고의 인식을 택할 수 있음. 또한 내 능력과 내가 완성코자 하는 본성을 알 수 있음.

[19]
(1) 지각양식에는 네 가지가 있음.
(2) ① 풍문(소문, 전문, hearsay)이나 제멋대로 불리는 기호(sign)로부터 생기는 지각.
(3) ② 지성에 의해 분류되지 않은 우연한 경험으로부터 생기는 지각. 그 경험에 대립되는 경험이 없으므로 확고한 것처럼 우리에게 남아 있음.
(4) ③ 사물의 본질이 다른 사물로부터 타당하지 않게 추론될 때 생기는 지각. 결과로부터 원인을 추론할 때, 혹은 보편개념(항상 어떤 특성을 지님)으로부터 추론할 때 생김.
(5) ④ 사물이 그것의 본질을 통해서, 또는 가장 가까운 원인을 통해서 감지될 때 생기는 지각.

[20]
(1) 예를 들어서 설명하겠음.
(2) 나는 내 생일이나 부모 등을 말로 들어서만 알며(풍문, 소문, 전문), 그 사실을 의심한 적이 없음.
(3) 경험에 의해(다른 사람들이 죽는 것을 봐왔기 때문에) 나는 내가 죽으리라는 것을 앎.
(4) 경험에 의해 기름이 불을 타오르게 하고 물이 불을 끈다는 것을 앎.
(5) 경험에 의해 개가 짖는 것과 사람이 이성적 동물인 것을 앎.

[21]
(1) 어떤 것을 다른 것으로부터 추론하는 방식은 다음과 같음. 우리가 신체를 느낄 때, 우리는 신체와 정신이 합일되어 있고, 그 합일이 감각의 원인임을 추론함. 하지만 이것을 통해 감각과 합일이 무엇인지에 대한 이해는 할 수 없음.
(2) 멀리 있는 것이 작아 보이는 시각의 본성을 알고, 태양이 보이는 것보다 더 크다는 것을 추론함.

[22]
(1) 사물이 오직 그 본질에 의해서만 지각되는 경우는 다음과 같음. 내가 어떤 것을 안다는 사실로부터 '어떤 것을 안다'는 것이 무엇인지 아는 것. 정신의 본질을 앎으로써 정신이 신체와 합일되어 있다는 것을 아는 것.
(2) 2 더하기 3은 5인것. 두 선이 또 다른 선과 평행이면 두 선은 평행인 것.
(3) 이런 종류의 인식에 의해 알 수 있었던 것은 매우 적었음.

[23]
(1) 더 나은 이해를 위해 또 다른 예를 들겠음.
(2) 숫자 3개가 주어지고, 네번째 숫자를 찾아야 할 때, 세번째와 네번째의 관계는 첫번째와 두번째의 관계와 같음.
(3) 상인들은 그 증명은 몰라도 규칙을 배워서 알기에 뭘 해야하는지 안다고 말함. 다른 사람들은 간단한 수를 이용한 경험을 통해 공식을 만듦. 2, 3, 4, 6이 있을 때 가운데 두 개를 곱하고 첫번째 수로 나누면 6이 나오는 것처럼. 그리고 이 절차가 적절한 방법이라고 추론함.

[24]
(1) 하지만 수학자들은 유클리드 제7권 정리19의 증명에 의해, 비례의 본성과 특성에 의해 첫번째와 네번째의 곱이 두번째와 세번째의 곱과 같다는 것을 앎. 그렇지만 주어진 수에서 적절한 비율을 보지는 못함. 만약 본다면 유클리드의 정리를 통해서가 아니라 직관을 통해서임.

최선의 지각 방식

[25]
(1) 이러한 지각양식들 중 최고를 선택하기 위해, 우리의 목적 달성에 필요한 수단을 열거하겠음.
(2) ① 우리가 완성코자 하는 우리의 본성을 정확히 알아야 하고, 필요하다면 자연의 본성도 알아야 함.
② 그리하여 사물들의 차이점(differences), 일치점(agreements), 반대점(oppositions)을 알아야 함.
③ 그리하여 사물들이 정확이 얼만큼 변화될 수 있는지 알아야 함.
④ 그 결과를 인간의 본성 및 능력과 비교해야 함. 그러면 인간이 도달할 수 있는 최고의 완전성을 알 수 있음.

[26]
(1) 이제 어떤 지각양식을 선택해야 하는지 알아보겠음.
(2) 첫 번째 지각양식, 즉 풍문의 경우, 이것을 통해 얻는 지식은 불확실하고, 사물의 본질에 대한 통찰을 줄 수 없음. 한편 개별 사물의 실체는 그것의 본질을 통해서만 알 수 있음.
(3) 그러므로 풍문으로 얻은 확실성은 학문에서 배제되어야 함.
(4) 왜냐하면 이해가 동반되지 않은 상태에서 들은 풍문은 감동을 줄 수 없기 때문임.

[27]
(1) 두 번째 지각양식은 우리가 찾는 (비례의?) 관념을 갖고 있지 않음.
(2) 이 지각양식은 매우 불확실하고 불명확함. 이런 방식으로는 우연한 것 이외에 아무것도 지각하지 못함. 우연한 것은 본질이 먼저 이해되지 않으면 명백하게 이해되지 못함.
(3) 그러므로 이 양식도 배제되어야 함.

[28]
(1) 세 번째 지각양식은 어느 정도 우리에게 사물의 관념을 줄 수 있고, 오류의 위험 없이 추론하게 함. 하지만 그 자체로는 우리가 완전성을 얻게 하는데 충분하지 못함.

[29]
(1) 오직 네 번째 지각양식만이 사물의 타당한 본질을 파악하며 오류의 위험이 없음.
(2) 이 양식이 우리가 주로 사용해야 하는 양식임.
(3) 그렇다면 어떻게 네 번째 양식을 이용해 조속히 미지의 것을 이해할 것인가?
(4) 이제부터 설명하겠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