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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일주/영국

영국 옥스포드 헬프엑스: 2번집 화장실 청소와 늪지의 새들 (여행 196일째)

2017년 1월 30일 월요일

영국 옥스포드(Oxford) / 흐림, 약한 비

[1] 꿈과 여행: 꿈에서는 반 친구들이 졸업 기념으로 다들 밖으로 나가 사진을 찍고 있는데, 나만 혼자 딴짓을 하다가 늦게 돌아와서 창밖으로 사진 찍는걸 내려다보며 허둥지둥 내려갈 준비를 한다. 머리가 이상하게 삐직삐직 산발이라 어찌할 줄을 모르고 있는데 친구 한 명이 옆에서 도와준다. 아- 중고등학교 친구들은 어떻게 지내는지. 나는 무슨 대단한 우정과 모험을 찾아 여기에 와 있는지. 그래도 새 소리는 아름답다. 새장에 갇힌 새들이 아닌 야생의 새들이 내는 소리다.

[2] 청소와 쿠키: 아침을 먹고, 건물 주변 이곳 저곳의 물 고인 것을 바가지로 퍼낸 후, 혼자 자전거를 타고 2번집으로 이동했다. 2번집에서는 어제 영감님이 지시해 놓은 대로 청소를 했다. 청소기의 넓적한 흡입구 부분이 본체와 맞지 않아, 이리저리 대 보고 맞춰 보며 애를 쓰다가, 중간에 끼우는 부품을 찾아서 본체에 끼웠다. 위층 방과 복도부터 시작해 계단과 아래층의 식당, 주방, 거실까지 온 집안을 청소기로 밀다보니 시간이 금방 지나갔다. 다음은 화장실 차례. 샤워 욕조, 유리벽, 세면대, 변기, 수도관, 수도꼭지 등에 크림 클리너(cream cleaner)를 뿌리고 녹색 수세미(scrub)와 철수세미로 한참 닦았다. 오랫동안 청소를 안했는지 한참 닦았는데도 더러운 곳이 많이 보였다. 시간을 무한정 보낼 수는 없으니 조금 더러운 부분은 남겨 두고 변기통과 주방 싱크대 청소로 넘어갔다. 

청소가 다 끝날 때 쯤에는 영감님도 2번집으로 오셨다. 청소가 끝난 후에는 영감님이 준 사과와 쿠키를 먹었다. 영감님은 요즘 단 것을 너무 많이 먹었다며 자신은 먹지 않겠다고 했다. 그래도 조금 남은 쿠키를 주니 정말 좋아하면서 드셨다. 영감님과 함께 자전거를 타고 1번집으로 돌아오는 길에는 나란히 달리면서 이야기를 했다. 지난 20년 동안 매일같이 왔다갔다한 길이라며, 지나갈 때마다 과거의 여러 기억들이 떠오르며 많은 생각을 하게 된다고 한다.

[3] 신발과 손톱: 얼마 전 영감님이 온실과 창고를 왔다갔다 할 때 신으라며 실내용 신발을 한 켤레 빌려주셨다. 나는 신발을 신고 벗을 때마다 신발끈을 풀었다 묶었다 할 필요가 없도록, 넉넉한 공간이 남도록 신발끈을 묶어두고, 그 공간에 발을 쑤셔 넣는 방식으로 신발을 신는다. 그런데 오늘 내가 신발 신는 모습을 본 영감님이, "그렇게 신으면 신발 뒷창이 구겨지잖아. 끈을 풀어서 똑바로 신어"라고 지적했다. 순간 '남이야 신발을 어떻게 신건!'하는 마음이 들며 흥분해서, 뒷창을 구기지 않고 신발 신고 벗는 모습을 보여주며, 앞으로 이 신발은 신지 않겠다고 사납게 대답했다. 잠시 침묵이 흘렀고, "푸하하-"하고 영감님과 같이 웃으며 넘어갔지만, 나중에 엄지손가락의 감각이 이상해 장갑을 벗어 보니, 손톱이 충격을 받아 빨갛게 (심하게) 변해 있었다. 흥분한 상태에서 몸을 막 움직이다가 다친 모양인데 그 고통을 못 느낄 정도로 격렬한 감정이 나왔던 것이다. 

나중에 산책을 할 때, 영감님이 웃으면서, "네가 화내는 모습을 오늘 처음으로 봤구나"라고 말했다. 오, 그렇다. 나도 모르게 이럴 때가 있다. 별 것 아닌 일로. "죄송해요"라고 말하고 겸연쩍게 웃었다. 영감님은 "전혀 미안할 것 없어. 그저 너도 화를 낸다는 것이 신기했을 뿐이야"라며 미소지었다. 오늘 산책은 강의 하류로 평소보다 멀리까지 내려가 봤다. 늪지의 캐나다 기러기들이 어슬렁거리는 모습이 꼭 초식공룡들 같았다. 

1번집 마당의 한쪽 벽. 영감님은 아름다운 여름의 옥스포드를 묘사하며 꼭 다시 돌아오라고 말하곤 했다.

서서히 침몰하고 있는 주거용 배.

늪지의 새들(공룡의 후손들)

주방의 냉장고와 오븐

영감님이 추천해준 책이었는데 잘 집중이 되지 않아 앞부분만 읽고 말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