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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일주/영국

영국 옥스포드 헬프엑스: 미스터 손과 영감님 (여행 199일째)

2017년 2월 2일 목요일

영국 옥스포드(Oxford)

[1] 오늘 한 일: 우유 사가기, 설거지, 온실 입구 닦기, 나뭇잎 쓸기, 침구류 빨래 널기.

[2] 미스터 손: 영감님은 헬프엑스(helpx) 외에 카우치서핑(couchsurfing) 손님도 받고 있다. 보통 헬프엑스는 일을 도와주는 대신 좀 더 오래 머물고, 카우치서핑은 대가 없이 손님으로 머무는 대신 기간이 좀 짧다. 몇 개월 전에 영감님 집에서 카우치서핑을 했던 '손'이라는 남자가 어젯밤 다시 방문해서, 1번집에서 영감님과 함께 잤다. 덕분에 나는 2번집에서 혼자 편하게 잘 수 있었다. 조금씩 내리는 비를 맞으며 1번집으로 가서 영감님과 아침식사를 준비했다. '손'은 늦게 일어났다. '손'이 일어난 후에 처음으로 만나 인사를 나누고, 다같이 아침을 먹었다.

'손'은 한국에 있을 때 빕스 매니져와 격투기를 하던 24살 친구다. 외식업계에서 일을 해서 그런지, 여행을 하며 세계 각국의 요리를 배우는 것에 관심이 있단다. 애초에 무전 세계여행을 계획했고, 그동안 모았던 돈을 부모님에게 드린 후, 80만원 정도만 가지고 여행을 시작했다고 한다(600만원으로 시작한 나보다 훨씬 용감하다). 영국에 와서 히치하이킹으로 여행을 조금 하다가 데이브 영감님을 만났고, 다시 런던으로 돌아가 4개월 동안 한인 민박에서 한달에 40만원씩 받으며 일을 했다고 한다. 그리고 이제 영국을 떠나 프랑스에 가려고 하는데 그전에 영감님에게 인사하러 옥스포드에 온 것이다.

미스터 손은 영감님에 대해 상당히 좋은 인상을 갖고 있었다. "히치하이킹하는 동안 사람들이 손가락질 하고 비웃고 해서 진짜 힘들 때도 있었어요. 그래도 그렇게 여행한 덕에 데이브처럼 좋은 분들도 만났네요." 그래서 '손'은 돈도 얼마 없으면서, 런던의 한인마트에서 영감님에게 선물로 드릴 술과 고기를 사왔다. 여러 모로 존경스러운 친구다.

[3] 속마음: 하지만 속이야기는 그리 아름답지 않다. 영감님은 나와 단둘이 있을 때, 미스터 손에 대한 여러 불평을 털어 놓았다. 먼저 어젯밤에 '손'이 옆에서 잘 때, 핸드폰을 자꾸 꺼내 보는 것 때문에 불편해서 잠을 못 잤다고 했다. 그리고 왜 런던에서 여기까지 온 건지도 모르겠다고 하고, 4개월 동안 런던에서 일했으면서 영어가 하나도 늘지 않았다며, 왜 이런 시간낭비를 하고 있는지 의아하다고 했다. 또 '손'의 긴 머리도 맘에 들지 않는다고 했다. "머리를 길러서 기부한다고 하더라구요." 내가 '손'의 편을 들어줬지만, 이미 영감님 눈 밖에 나버렸기에 소용이 없었다. 이렇게 사람 속은 모르는 것이다. 그래서 미스터 손은 영감님이 자신을 탐탁지 않게 생각하는 것은 꿈에도 모르고, 영감님을 젊은이들을 좋아하는 자상한 노인 정도로 여기고 있었다. 이렇게 서로의 마음 속을 모르고, 나의 진심을 감춰야 하는 것은 피곤하고 슬픈 일이다. 

그래도 함께 산책을 하다가 찍은 사진을 보면 다들 행복하게 웃고 있다. 적어도 이 웃음 속에는 진심이 담겨있는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