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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일주/영국

영국 런던 카우치서핑: 트럼프 반대 시위, 비누방울, 박물관 (여행 201일째)

배경음악: Scotland the Brave (Bagpipes)

2017년 2월 4일 토요일

영국 옥스포드(Oxford) - 런던(London)

[1] 트럼프 반대 시위: 옥스포드에서 런던행 버스에 탔다. 버스가 런던에 도착할 때 교통체증이 엄청났다. 도심에서 트럼프 반대 시위가 있었기 때문이다. (뉴스 기사) 각종 재미있는 옷을 입은 사람들이 피켓을 들고 길을 가득 채우고 있었다. 친구들끼리 옷을 맞춰 입은 사람들도 있었고, 손에 맥주를 하나씩 들고 있는 사람들도 있어서 시위라기보다는 축제를 하는 것 같았다. 경찰도 많이 나와 있었지만 긴장감은 없었고 시위대에게 친근하게 굴었다. 무리 중의 어떤 남자가 흥분을 했는지 거리에 있던 표지판을 쓰러뜨리면서 다녔는데, 경찰이 바로 호루라기를 불며 제지했다. 경찰의 지시로, 남자는 자기가 쓰러뜨린 표지판을 하나하나 다시 세워야 했다. 쪽팔려하는 표정이었고, 일행과 주변 사람들은 놀려대며 웃었다. 사방이 몹시 들떠있는 풍경이라, 사진도 찍고 무리에 섞여서 분위기를 느끼고 싶었지만 버스 안에 있었기 때문에 그럴 수 없었다. 

[2] 동 아저씨: 버스에서 데이브 영감님네서 하숙하다가 이사간 한국 박사 아저씨(이름: '동')를 만났다. 영감님네 집에 같이 있을 때에는 대화할 기회가 없었는데 우연히 이렇게 버스에서 만나게 되었다. 런던에서 내려서 같이 걸으며 생활에 관한 이런저런 얘기를 나눴다. 동 아저씨는 옥스포드가 답답해서 가끔씩 런던으로 나들이를 간다고 했다. 옥스포드에서 포닥(postdoc)을 하고 있는 분이니 대단히 똑똑한 분일텐데도, 동 아저씨는 여러 모로 외롭고 지쳐 보였다. 아저씨와 잠시 동안 함께 걷다가, 방향이 달라서 곧 헤어졌다.

[3] 런던 구경1버킹엄 궁(Buckingham Palace)을 구경하고, 동쪽으로 계속 걸었다. 웨스터민스터 사원(Westminster Abbey) 앞에는 스코틀랜드 전통의상을 입고 백 파이프를 연주하는 남자가 있었다. 차가운 공기 속 콧물을 훌쩍이며, 잠시 구슬픈 선율을 감상했다. 다리(Westminster Bridge)를 건너고, 전쟁 박물관(Imperial War Museum)을 지나, 카우치서핑 숙소가 있는 엘리펀트앤캐슬(Elephant & Castle)에 도착했다. 이름이 재미있는 동네인데, 범죄가 많은 지역이라고 한다. 누군가의 말에 따르면, 그 동네가 위험한 지역인지 아닌지는 가게 출입문의 셔터 유무로 알 수 있다고 한다. 이 지역은 확실히 위험한 분위기가 풍겼다.

[4] 카우치서핑: 오늘의 숙소에 도착했다. 초인종은 없고, 문을 두드려도 반응이 없어서, 그냥 현관문을 열고 들어갔다. 주방에서 요리를 하던 흑인 아주머니 리디아가 무슨 일이냐고 묻더니, 리처드(Richard)를 불렀다. 곧 리처드가 위층에서 내려와 안내를 해줬다. 이 집은 선대 여주인이 기독교 정신에 적합한 청년들에게 숙소로 제공하던 곳인데, 리처드가 이 집을 구매해 뜻을 이어받고 있다고 한다. 리처드는 마른 체구에 건강해 보이고, 입가에 부드러운 미소가 가시지 않으면서도 내면의 강인함이 느껴지는, 좋은 사람이었다. 하지만 너무 많은 카우치서퍼들이 있어서, 뒤늦게 도착한 나는 그다지 관심을 얻지 못했고, 대화를 나눌 기회도 별로 없었다. 칠판에는 현재 이곳에 묵고 있는 사람들의 이름이 수두룩하게 적혀 있었다. 상주하는 사람들 십여 명과 카우치서퍼 십 여명 등 거의 20명이 넘게 있는 것 같았다. 이곳에 머무는 청년들은 다들 밝고 웃음을 띄고 있어서, 어렸을 때 다니던 교회의 형들이 생각났다.

[5] 런던 구경2: 저녁 식사에 초대를 받았다가, 다시 "오늘은 사람이 많으니 꼭 오지 않아도 될 것 같다"는 애매한 말을 들어서, 어색함을 피하기 위해 집 밖으로 나왔다. 근처에 있는 시장에서, 점심 겸 저녁으로 먹을 커다란 오렌지와 바나나를 각각 1파운드(약 1500원) 어치씩 샀다. 봉지 두 개에 담긴 오렌지와 바나나의 양이 엄청나서, 하루 종일 들고 다니며 팔운동을 꽤나 해야 했다.

사람들이 복작이는 런던 아이(London Eye, 코카콜라 상표가 크게 새겨져 있는 관람차) 주변을 지나, 템즈 강변을 따라 걷다가, 강 건너편으로 넘어가 세인트 폴 대성당(St. Paul's Cathedral)과 씨티(City of London)를 구경했다. 해가 떨어질 무렵에는 꽤 추워졌다. 테스코에 들어가 오랫동안 고민하다가, 0.87파운드를 내고 식빵과 다이제를 샀다. 거스름돈 0.13파운드는 구걸하는 할머니에게 바나나, 귤과 함께 드렸다. 추위를 피하며 시간을 떼우기 위해, 런던 박물관(Museum of London)과 테이트 모던(Tate Modern) 현대 미술관에 잠시 들렀다. 

저녁 식사가 끝났을 무렵인 여덟시 쯤, 카우치서핑 숙소로 돌아갔다. 돌아가 보니 다들 보드게임을 하려고 준비중이었다. 열댓 명이 한 방에 모여 '셜록 홈즈'라는 추리 보드게임을 했다. 나도 끼어서 이따금 주사위를 던지며, 사람들이 단서를 얻고 추리를 하는 과정을 지켜봤다. 게임이 끝난 후에는, 서너 명이 함께 쓰는 침실로 돌아와, 침구를 정리하고 열두 시가 넘어 잠자리에 들었다. 정말 긴 하루였다.

Westminster Abbey

Palace of Westminster

비건 광고

런던 아이

빅 벤과 갈매기

비누방울 놀이

준비하시고

쏘세요!

템즈 강

강변에 모래로 성을 쌓아두고 앉아서 동전을 받는 아저씨

세인트 폴 대성당(St. Paul's Cathedral)

세인트 폴 대성당(St. Paul's Cathedral)

Joseph Beuys: Coyote / Photographs by Caroline Tisdall

Pierre Bonnard, Coffee, 1915

숙소로 돌아가는 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