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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일주/브라질

브라질 리우: 꼬동 부부, 셀라론 계단, 버스표, 기관단총 (여행 206일째)

2017년 2월 9일 목요일

브라질 리우(Rio de Janeiro) 이지고잉 호스텔 / 섭씨 24-31도 / 맑다가 구름

[1] 나보다 조금 빨리 리우에 도착한 꼬동형 부부를 만나기로 했다(모로코에서 보고 20일만이다). 부부가 묵고 있는 테라 브라질리스 호스텔(Terra Brasilis Hostel)로 초대를 받았는데, 내가 묵고 있는 숙소와 2km 거리로 가까웠지만, 길을 헤매서 찾는데 시간이 걸렸다. 브라질 사람들이 하도 겁을 줘서 핸드폰을 꺼내 지도를 확인하는게 무서웠기 때문이다. 꼬동형네 호스텔은 언덕 위에 있어서 전망도 좋았고, 조식 메뉴도 탐스러워 보였다. 커피를 얻어 마시고(내가 묵는 호스텔도 커피는 무제한 제공이었다), 빨간색 가방 커버도 하나 얻었다. 비올 때마다 일회용 우비로 가방을 둘둘 말아 너저분하게 다녔는데 이제 안심이다.

꼬동형 블로그: Café Azul: 브라질 남방기_1부_히우 데 자네이루

[2] 부부와 함께 언덕을 내려왔다. 내려오는 길에는 에스까다리아 셀라론(Escadaria Selaron)이라는 유명한 계단에 들렀다. 이런 곳이 존재한다는 것도 몰랐는데, 부부 덕분에 정말 대단한 구경을 했다. 맑은 날씨와 선명한 태양빛 때문에 빨강, 노랑, 파랑, 초록의 타일들이 눈부시게 빛을 반사했다. 종교적 상징, 철학적 상징, 아무 상징이 없는 단순한 무늬, 세계 각국의 도시, 그 도시들의 상징, 글귀 등이 그려진 다양한 타일들은 대성당의 스테인드 글라스를 보고 있을 때와 비슷한 황홀감을 일으켰다. 야외 미술관 같기도 하고, 가우디의 구엘 공원 같기도 했다. '복사-붙여넣기'한 그림이나 패턴을 적절히 뒤섞어 반복한 것이 아니라, 타일 하나하나가 유일무이하다는게 충격적이었다(이 장소가 정부나 지자체 사업으로 만들어진 관광지가 아니라, 셀라론이라는 칠레 출신 화가가 홀로 시작한 프로젝트라는 것을 알고 더 충격을 받음).

사진보기: 2019/01/20 - [Photo] - 브라질 리우 에스까다리아 셀라론(Escadaria Selaron)

[3] 같이 광장(Cinelândia) 쪽으로 가서 도서관(Fundação Biblioteca Nacional)을 구경하고, 서점(Livraria Cultura)에 갔다. 재미있어 보이는 책들이 많았다. 미화 누나(꼬동형 부인)가 유발 하라리의 사피엔스를 강력 추천했다. 다같이 레고 코너에 앉아 시원한 공기를 쐬며, 만들고 싶은 것을 만들었다. 나는 켄타우로스를 만들었고, 꼬동형은 '브라질 도시의 난개발'이라는 제목으로 사각형의 해골같은 구조물을 만들었다(나중에 상파울루에서 똑같은 건물을 봤음). 

부부는 예수상(Cristo Redentor)을 보러 갈지 말지로 논쟁을 벌였다. "가기 싫으면 가지 말고." "(정말 가기 싫은 목소리로) 가기 싫은건 아닌데, 오늘은 너무 졸려서 못 갈것 같애." "오늘 안가면 못 가는거지 내일 갈 시간이 안되는데." "근데 오늘은 일단 쉬어야 될 것 같애." 예수상 보러 가기 싫은 꼬동형과 가고 싶은 꼬동 부인. 내가 여행비를 아끼고 있는 것을 아는 미화 누나는, 돈을 빌려줄테니(내줄테니) 나에게도 같이 가자고 했다. 리우까지 와서 예수상을 못 보고 가는게 아쉽기는 했지만, 입장료가 너무 비싸 신세지기가 미안해서 가지 않겠다고 했다.

[4] 부부와 헤어진 후, 에스까다리아 셀라론에 홀로 들러 사진을 더 찍고, 숙소로 돌아왔다.

인터넷으로 버스표 구매 홈페이지(www.util.com.br)에 들어가 삼빠이오(SAMPAIO)라는 회사의 리우(Rio)발 타우바테(Taubate)행 버스표를 예약했다. 그런데 결제창에서 계속 오류가 났다. 이제 겨우 4자리 남은 좌석을 사수하기 위해, 어쩔수 없이 6km 떨어진 버스 터미널(Novo Rio Bus Terminal)로 향한다. 센트로(Centro) 지역을 지나니 건물이 다 쓰러져가는, 왠지 와서는 안 될 것 같은 지역이 나온다. 방콕의 무너지고 버려진 건물들과 어두운 굴다리 밑이 떠올랐다. 악어가 출몰하는 늪지대를 헤엄치는 사람처럼 긴장을 바짝한 상태에서 어찌어찌 터미널에 도착했다. 여권이 없고 말도 통하지 않아 버스표를 살 때에도 고생을 했다.

돌아오는 길은 좀 더 오래 걸리지만 안전해 보이는 큰 길을 택했다. 사람들이 많아서 안심이 되었다. 그런데 어떤 거리로 접어들자 폭동이 있었는지, 아직 환한데도 가게들은 모두 셔터를 내리고 있었고, 바리케이드와 산산조각난 강화유리가 보였고, (번화가임에도) 지나다니는 사람이 한 명도 없었다. 무서워서 다른 쪽으로 빠져 나왔는데, 곧 기관단총을 장비한 2인 1조 오토바이 특공대 수십 쌍이 나타나더니, 장갑차와 헬기까지 등장했다. 전쟁이라도 난 것 같았다. 행인들은 핸드폰을 꺼내 사진을 찍기 시작했고, 저 멀리서는 폭발음이 들리고 화염이 솟았다. 심장이 쿵쾅쿵쾅 뛰면서도 행인들의 태도 때문에 묘하게 안심이 되어 같이 사진을 찍었다.

숙소로 돌아와 은행 계좌를 확인해 보니, 아까 버스표 결제시 오류가 났을 때, 두 차례 출금이 된 것으로 나타났다. 다시 심장이 쿵쾅쿵쾅 뛴다. 이걸 어떻게 돌려받지? 전화를 할 수도 없고 이메일을 보낼 수도 없어서, 일단 내일 일찍 버스 회사에 물어보기로 마음 먹는다(앞으로 두세 달간 이걸 환불 받겠다고 갖은 노력을 하게 됨). 

[5] 도시 속 커다란 정글 나무들과 올록볼록 튀어나온 검은돌 언덕 때문에 리우는 세계 어느 도시에서도 느껴보지 못한 독특한 분위기를 풍겼다. 맑은 날씨 덕에 햇빛이 온갖 사물에 강하게 내리쬐어 사방에 사진에 담아두고 싶은 풍경이 가득했지만, 길거리에서 핸드폰을 꺼내면 안된다는 경고가 떠올라 주저하곤 했다. 기온이 높아 땀을 흘리다 보니, 겨울의 도시에서는 느끼지 못했던 강렬한 갈증을 하루종일 느꼈다. 그렇다고 잘났다는 듯이 플라스틱 병에 들어있는 생수를 사 마시기는 싫었다. 과일쥬스와 아사이 스무디, 펭귄 그림이 그려진 맥주는 시원하고 달아 보였지만 비싸서 먹기 싫었다. 이렇게 하루종일 계속된 갈증과 긴장 때문인지 하루가 끝나니 진이 쏙 빠졌다.

포스터

리우의 나무들

언덕길의 노숙자

벽화

담장의 방범 장치

경사면에 건물을 멋지게 세웠다

언덕에서 본 리우의 독특한 풍경

일본 해녀?

꼬동형 부부

날씨가 좋다

그림이 예쁘다

가방으로 줄을 서놓은 사람들. 더우니까 이해가 된다. 그래도 나뭇가지로 줄 서는건 좀 심하지 않냐?

Church of Our Lady of Lapa do Desterro

Church of Our Lady of Lapa do Desterro

오토바이 특공대

사진찍는 사람들

굉장한 벽화를 만났다

코브라(Eduardo Kobra)라는 유명한 화가의 작품이라고 한다

멋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