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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일주/브라질

브라질 타우바테: 소, 정글, 암벽등반 (여행 208일째)

2017년 2월 11일 토요일

브라질 타우바테(Taubaté) 에듀왈도(Edu)네 집

정말 멋진 하루다. 강아지들 때문에 6시쯤 깨서, 똥을 잔뜩 싸고(어제 먹은 것도 없는데 왜? 그동안 먹은 바나나들 때문에 질은 좋다), 샤워를 한 후, 마당에서 빨래를 널고 있는데 에듀가 나왔다. 같이 화단에 물을 주고, 40분간 셋이서(카밀라, 에듀, 나) 둥글게 앉아 명상을 했다. 명상 후에는 과일, 견과류, 쥬스, 빵, 버터와 치즈로 아침식사를 했다. 그 다음에는 에듀의 부탁으로 개를 샤워시켰다. 개는 씻기는 동안 구슬프게 낑낑거렸다.

이런 일들을 한 후에, '미니미(40년이 되어가지만 잘 수리된 후 새로 예쁘게 칠해진 폭스바겐 비틀)'를 타고 30km 정도 떨어진 정글(Ponto de Escalada - Falésia Paraíso)로 향했다. 미니미가 포장도로와 비포장도로를 번갈아 달리는 동안 좁은 뒷좌석에서 몸을 웅크리고 졸다가, 슬슬 지루해지기 시작할 즈음 목적지에 도착했다. 이곳의 산은 어느 나라와도 분위기가 다르다. 정글 숲과 이어진 초록빛 목장에는 소떼가 가득하고, 간간히 아기 병아기들과 닭들이 돌아다니는 모습이 보인다. 후덥지근한 동남아 분위기가 나지만, 그보다 더 화사하고 칼라풀하다. 소 숫자만 보면 인도에 와 있는 기분이지만, 쓰레기 더미를 뒤지는 인도의 소들과는 달리 여기 소들은 풀이 무성한 언덕을 자유로이 거닌다. 도축될 운명이기는 하지만, 축사에 갇혀 지내는 한국의 소들보다는 처지가 훨씬 나아보인다.

무더운 날씨. 꽤 무거운 로프 더미를 어깨에 메고 산 속으로 향한다. 에듀는 개울물에 풍덩 뛰어들어 몸을 식히고는, 물에서 나오며 환하게 웃는다. 곧 땀이 흐르기 시작하고, 정글의 각종 벌레들이 웽웽대며 달라붙기 시작한다. 이건 뭐, 아무리 손을 휘저어도 소용이 없다. 언젠가 필리핀에서 봤던 원주민 아저씨가 몸에 기어다니는 개미를 대하듯이, 사바나의 사자가 얼굴에 붙는 파리를 대하듯이, 그저 신경끄고 냅두는 수밖에 없다. 몇 시간 동안 힘들고 귀찮기는 했지만 죽을 정도는 아니었다.

지금까지 해 본 적도 없으면서 만만하게 생각했던 암벽등반. 카밀라가 가이드 역할을 맡아 먼저 암벽을 타고 올라가며 안전 로프를 설치한다. 에듀가 싱글싱글 웃으면서 "이제 네 차례야"라고 말한다. 아니, 나는 한번도 해 본적이 없다니까? 장비 착용하는 방법을 알려주더니, 이제 그냥 올라가라고 한다. 경사가 70도 정도로 완만해 보였는데, 일단 암벽에 몸을 붙이자 그게 그렇게 느껴지지 않는다. 그냥 수직이다. 밑에서 에듀는 싱글싱글 웃으면서 자꾸 올라가라고 한다. 카밀라가 설치한 가이드라인을 따라, 밑에서 에듀가 시키는 대로 후크를 풀거나 걸거나 하면서, 꾸물꾸물 올라간다. 그러다 보니 떨어지면 넉넉히 사망할 만큼 높이 올라왔다. 왼손, 오른손, 왼발, 오른발 모두 조그만 틈새를 필사적으로 붙들고 있지만, 더 이상 갈 수 있는 곳이 보이지 않는다. 위로 갈 수도 없고, 좌우로 뻗어 볼 만한 곳도 없고, 내려가는 건 더욱 불가능하다. 지금 붙들고 있는 귀퉁이에서 한 손을 떼고, 균형을 깨뜨려 저 닿을락 말락한 곳의 틈새로 몸을 뻗는 것이 너무 두렵다. 그렇게 수 분 동안 한 자리에 매달려 있는 기분이란... 저 밑에서는 에듀가 뭐라고 외치지만 잘 들리지도 않고 보이지도 않는다. 저 위에도 움켜쥘 곳, 발 디딜 곳이 있을 거라는 막연한 믿음으로 올라간다는 것이, 히치하이킹, 혹은 우리 인생과 비슷하다.

그렇게 총 3번 암벽을 탔다. 두 번째 올라간 곳은 경사가 훨씬 심하고, 물도 조금씩 흐르고 있어서 안 시킬줄 알았는데, 봐주는거 없다. 이곳에서 먼저 등반하던 다른 팀이 있었는데, 남자 한 명은 위에서 갇혀서 쩔쩔매다가 결국 다 오르고 나서는 신나게 함성을 질렀다. 에듀가 싱글싱글 웃으면서 "자, 너도 올라가 봐"라고 말한다. 무서운 에듀... 올라갔다 내려오니 손톱 끝부분은 모두 깨져서 울퉁불퉁해졌고, 팔다리 여기저기 상처와 멍이 생겼다. 그래도 이제 끝났다는 생각에 기분이 좋았는데 끝난게 아니었다. 마지막으로 간 곳은 아예 경사가 뒤로 꺾인, 90도가 넘는 절벽이었다.

카밀라도 여기서는 버거워했다. 다음은 에듀 차례다. 에듀는 팔다리가 길쭉길쭉하고 자유자재로 꺾여서, 몇 번의 시도 끝에 성공했다. 나는 카밀라가 어려워하는 모습을 보고 미리 포기한 상태였기 때문에, 시늉만 좀 하다가 편법을 써서 올라갔다. 다른 팀에 있던 브라질 미녀도 이쪽으로 왔다. 덩치가 작은데도 등반실력이 훌륭했다. 호리호리하고 탄탄한 몸매에 탱크탑을 입고 있었고, 겨드랑이 제모를 안해서 곱슬곱슬한 털이 보였다. 너무 아름다운 외모에 강한 포스가 풍겨서 말을 못 걸었는데, 그쪽에서 먼저 영어로 말을 걸어 와서 얘기를 조금 했다. 벌레에 뜯기면서 에듀가 싸온 간식을 나눠먹고, 너덜너덜해진 몸을 이끌고 산을 내려왔다. 매우 피곤했다.

집으로 돌아와서 초록색 크림 파스타(스파게티 호박 면과 얌을 갈아 만든 우유)를 만들어 먹고, 에듀의 기타 연주를 들었다. 정말 사랑스러운 호스트들이다. 무척 피곤하지만 이 사람들과 함께 시간을 보내는 것이 너무 좋다. 두 사람은 채팅앱으로 만났다는데, 그 덕분인지 채식, 암벽등반, 명상 등 취향이 정말 잘 맞는다. 그리고 얼마전 두 사람에게 아이가 생겼다고 한다. 훌륭한 채팅앱이다.

초콜릿과 바나나로 만든 디저트. 정말 맛있다.

에듀네 친척. 미인이 많다.

예쁜 아이들

카우치서핑을 하면 집집마다 냉장고 구경하는 재미가 쏠쏠하다

브라질에서 자주 볼 수 있는 정수기(왼쪽)

빨래가 잘 마르는 날씨

에듀네 집에는 차가 두 대 있었는데, 이 차의 이름은 '빅 몬스터'다. 카밀라가 예쁜 그림을 그려 놓았다. 만다라, 나무, 산, 명상가, 등반가, 해, 달, 자전거.

각종 약초가 심겨진 에듀네 정원. 옆집은 담장에 전기 펜스를 설치해 두었다.

바닥과 벽면이 타일로 마감된 브라질 가정집

명상, 휴식, 대화, 노래 공간

주방과 거실

마당에서 본 현관

암벽장 근처의 목장

'미니미'에서 짐을 내리는 에듀와 카밀라

소가 많다

등반가들이 예뻐해주던 개

장비들

가이드라인 설치를 마친 카밀라

첫번째 암벽

올라가라 치노!

에듀와 치노

세번째 암벽

스파이더맨 에듀

다른 팀에 있던 미녀

이렇게 하면 되나요?

두 사람은 더 못해서 약간 아쉬운 눈치

같이 기념촬영

시원한 풍경

Paradise Cliff

돌아오는 길에 멋진 꽃나무가 있어서 미니미와 함게 기념촬영

돌아와서 맛있는 크림파스타를 먹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