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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일주/브라질

브라질 상파울루: 이비라 공원 지오캐싱, 트루코, 사하다 (여행 213일째)

2017년 2월 16일 목요일

브라질 상파울루(São Paulo)

[등장인물]
    미카엘: 카우치서핑 호스트. 마돈나를 좋아하는 아프로-브라질리안(Afro-Brazilian) 게이.
    라이너스: 고등학교를 막 졸업하고 남미 여행을 시작한 독일인. 브라질행 비행기에서 만난 친구. 마르쿠스네 집에 머물고 있다.
    마르쿠스: 라이너스가 유럽에서 만난 친구. 상파울루 근교에 살고 있다.
    안드레이: 마르쿠스의 동생. 

[1] 미카엘: 하루가 정말 길었다. 길지만 충만했고, 웃음도 원없이 웃었던 즐겁고 브라질스러운 하루였다. 

아침에 일어나서 미카엘과 침묵의 어색함을 나누다가, 라이너스로부터의 연락을 받았다. 미카엘과 함께 집을 나오며 마지막 대화의 기회를 가졌다. 잠시 함께 걷는 동안 게이 거리와 클럽들을 지나치며, 미카엘은 이 동네가 게이들에게 인기가 많은 동네라고 말했다. 우리는 핑크색으로 칠해진 교회를 지나쳤다. 미카엘은 동네와 잘 어울리는 교회라고 말했다. 나는 미카엘에게 상파울루에서 동성애자로 사는 것에 대해 궁금했던 것들을 물어봤다. 큰 길에서 헤어지며 한국에서 다시 만나기를 기약했다. 

[2] 파울리스타: 전철역에서 30분 정도 라이너스를 기다렸다. 연락이 되지 않아 불안했지만, 결국 만났다. 라이너스는 유럽에서 만난 친구인 마르쿠스네 집에 머물고 있었는데, 마르쿠스네 집은 상파울루 도심에서 25km 정도 떨어진 근교(Praia Azul)에 있었다. 전날 음성 메시지를 주고 받을 때, 내가 주소를 알려주면 버스를 타고 찾아가겠다고 하자, 여러 사람이 낄낄 웃는 소리와 함께 이런 답변이 왔다: "이봐, 용감한 친구! 그렇게 한 번 해봐. 발가벗은 채로 여기에 도착할거야." 라이너스의 친구들은, 나 혼자서 그곳을 찾아 가는 것이 정신나간 짓이라고 생각했고, 결국 상파울루 시내까지 나를 데리러 오기로 했다. 라이너스와 함께 온 안드레이는 영어가 짧고 과묵했지만 재미있는 친구였다. 

파울리스타에서는, 라이너스가 노트와 휴대폰 케이스를 사고 싶어해서, 여러 가게를 돌아다녔다. 돌아다니는 동안, 천막을 치고 농성하는 사람들, 발이 중간부터 잘려 없는 사람, 삐에로 분장을 하고 모금을 하는 사람, 촬영중인 유명 연예인, 대학 입학식(혹은 졸업식)을 마친 학생들을 봤다. 

[3] 이비라 공원: 버스를 타고 커다란 공원으로 이동했다. 이전에 유빈이와 아름이가 말했던, 몸 좋은 남녀가 많다는 이비라푸에라 공원(Ibirapuera Park)이다. 라이너스는 여기서 지오캐싱(Geocaching)이라는 증강현실 보물찾기 게임을 했다. 라이너스는 캐시를 찾겠다고 공원을 빙빙 돌며 나무 구멍과 풀숲을 뒤지다가 개미, 거미줄, 똥의 공격을 받았다. 나와 안드레이는 낄낄 웃으며 그 모습을 구경했다. 간혹 라이너스에게서 나 자신의 모습이 보였다. 나의 나쁜 면이 아닌 호기심 많고 순수한 면. 열대식물의 사진을 찍거나, 브라질 가정집의 타일로 된 바닥과 벽을 눈여겨 보는 라이너스의 모습을 보며 마음 속으로 미소를 짓는다.

가방이 무겁고 더워서 돌아다니는 게 힘들었다. 따라다니며 물을 많이 마셨다. 공원에는 옷을 거의 벗고 조깅하는 몸매 좋은 남녀가 많았고, 검은색 백조와 콘도르도 있었다. 매점에서 간식을 먹는 동안, 라이너스는 옆 테이블에 앉은 일본계 여자로부터 눈을 떼지 못했다. 라이너스는 여자에게 말을 걸지 말지 한참 고민하다가, 결국 맘에 들지 않는 것으로 결정하고는 포기했다.

[4] 스튜디오: 보물찾기를 몇 번 더 하고, 분수를 찾아 헤매다가, 마침내 집으로 가는 버스를 탔다. 버스를 타고 한참 달려 종점에서 내린 후 간 곳은 안드레이의 할머니 댁이었다. 수많은 안드레이의 이모들, 삼촌들, 개들과 인사를 나누고, 안마당 창고에 비밀 아지트처럼 숨겨진 스튜디오에 들어갔다. 안드레이의 사촌 두 명이 (The League of Legends)을 하고 있었다. 각각 고목나무 인간과 바이킹 전사를 플레이하고 있었다. 구경하며 앉아 있는 동안 배가 불뚝 나온 삼촌이 스튜디오에 들어와 유쾌하게 한바탕 떠들다가 나갔다. 꼬마 사촌들은 힐끔힐끔 안을 들여다 보거나 인사를 했다. 

얼마 후, 일을 마치고 돌아온 듯한 정장 차림의 마르쿠스가 스튜디오에 들어왔다. 마르쿠스는 줄이 2개 남은 바이올린을 집어 들더니 연주하는 시늉을 냈다. 그 모습에서 강렬한 데자뷰를 느꼈다. 옷차림 때문인지 첫인상은 어려운 느낌이었는데, 트루코(Truco)라는 카드게임을 하면서 어색함이 싹 사라졌다. 트루코는 규칙을 이해하는게 조금 어려웠지만, 일단 감이 잡히자 혼이 빠지도록 재미있었다.

그러다가 다같이 유투브에서 SARRADNES AND SORROW 라는 미친 비디오를 봤다. 인류의 정신세계와 천지창조와 감각과 환각의 신비를 느끼며, 모두가 몇십 초간 미친듯이 웃었다. '사하다(Sarrada, 통아저씨처럼 까불대는 춤 동작)'를 슬픈 단조 음율에 믹스한 영상이었다. 인류는 언어가 통하지 않아도 서로 감정을 공유할 수 있다는 것을 확실히 배웠다. 계속해서 이런저런 유투브 음악을 들었다. 그러다가 라이너스가 신디사이저로 자작곡을 연주했다. 연주 실력에 놀랐고, 곡의 황홀함에 놀랐다.

[5] 마르쿠스네 집: 할머니 댁에서 커다란 냄비에 끓인 고깃국과 밥을 수십 명의 일가 친척과 나눠 먹고, 후식으로 수박을 먹은 후, 차를 타고 마르쿠스네 집으로 이동했다. 1층 차고에 차를 대고 2층으로 올라갔다. 3층으로 된 집의 1층에는 차고와 창고, 2층에는 거실과 주방과 발코니, 3층에는 침실이 있었다. 주방에는 각종 탐스러운 과일들이 놓여 있었고, 벽에는 엄마 지나가 그린 유화와 가족 사진이 걸려 있었다. 마르셀로(아빠), 지나(엄마), 줄루(커다란 검정 개)를 만나 인사하고, 편안한 분위기와 웃음 속에서 대화를 나눴다. 이게 바로 브라질의 (chill)함 인가? 웃을 일이 너무 많은 곳이다. 마르쿠스네 가족은 내일 우바투바(Ubatuba)의 별장으로 놀러갈 예정이라고 했다. 나도 초대를 받았다.

버스를 타고 공원으로. 버스를 탈 때는 카드를 찍지 않아도 되지만 내리는 곳과 좌석 쪽으로 가려면 카드를 찍어야 되는 낯선 시스템이다.

지오캐싱을 시작한 라이너스

보물찾기에 성공해 쪽지에 메모를 남기고 있다.

호숫가의 콘도르

블랙 스완

화장실 벽화

탐스럽게 열린 빨간 꽃

길 묻는 안드레이

화장실의 낙서

더러운 말이라고 한다

나뭇가지에 깃털같은 풀이 돋아있다.

두번째 지오캐싱에서 헤매고 있는 라이너스

강한 햇살이 나뭇잎을 뚫고 들어온다.

라이너스가 나뭇잎 접사를 찍는 모습을 보고 따라서 찍었다.

매점에서는 치즈빵 냄새가 흘러나오지만 여기서 쓸 돈은 없다.

시원해 보이는 코코넛 음료

마르쿠스 할머니네 집에 왔다.

방독면 사내들이 그려진 녹음실

녹음실의 처키와 맥주병

롤을 하고 있던 안드레이의 사촌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