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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일주/브라질

브라질 소스템플: 새로 만난 친구들과 심술쟁이 염소 (여행 216일째)

2017년 2월 19일 일요일

브라질 소스템플(Source Temple)

소스템플의 대문을 열고 길을 따라 들어갔다. 넓은 부지의 왼쪽으로는 작은 숲이 있었고, 오른쪽으로는 개울과 언덕이 있었다. 정면으로는 완만한 언덕을 따라 길이 이어졌고, 길 옆으로는 물을 모아두는 호수가 보였다. 호빗골같이 평화롭고 한가한 분위기를 풍기는 연둣빛 언덕에는 낮은 목조건물들이 듬성듬성 들어서 있었다. 

입구 근처의 단층 목조건물에 설치된 해먹에 누워있던 남자가 나에게 인사를 했다. 리노라는 레바논 출신 친구였다. 2주 전에 나처럼 봉사자로 들어왔고, 이제 2주의 봉사기간이 끝났지만 이곳이 마음에 들어 학생으로 등록하고 더 지낼 예정이라고 했다. 리노는 내가 묵을 숙소를 알려주고, 다른 봉사자들과 학생들을 소개시켜 주었다. (봉사자는 2주동안 일을 하면서 무료로 지낸다. 2주가 지나면 돈을 내고 학생으로 등록할 수 있는데 소스템플의 모든 교육 프로그램에 참여할 수 있다.)

역시 2주 전에 봉사활동을 시작한 남아공 출신 알렉스와 호주 출신 브리안나를 소개받았다. 두 사람은 이제 곧 소스템플을 떠날 예정이라고 한다. 미국인 케이시와 프랑스인 에밀리 커플은 2주간의 봉사기간이 끝났지만, 학생으로 등록하는 대신 봉사기간을 늘리기로 소스템플과의 협의했다고 한다. 

현재 브라질은 카니발 기간이어서 많은 사람들이 리우로 떠났고, 소스템플에 새로 온 사람은 나밖에 없었다. 오리엔테이션도 없었다! 소스템플의 봉사자를 관리하는 사람들로부터 아무런 지시나 소개가 없었기 때문에, 다른 봉사자들과 학생들로부터 건물 소개와 화장실 및 샤워실 사용법에 대한 설명을 들었다. 

내가 묵을 방에 짐을 풀고 나서는 소스템플의 넓은 부지를 돌아다니며 구경을 하고 사진을 찍었다.

2층으로 된 식당 건물 앞에서는 안경을 낀 대머리 브라질 남자 파우더와 덩치가 큰 상파울루 출신 라져를 만났다. 두 사람은 여기서 학생으로 지내고 있다고 했다. 학생으로 지내는 데에는 돈이 꽤 많이 든다고 한다(하루에 약 50유로 정도였던 것 같음).

호숫가의 정자를 지나 작업장(workshop)을 구경했다. 작업장에는 각종 연장이 아름다울 만큼 가지런히 정리되어 있었고, 작업장 뒤로는 요가나 모임을 할 때 쓰는 공용 홀이 있었다. 그 뒷편으로는 밭과 온실이 보였다.

조금 더 언덕으로 올라가다가 스위티라는 중년 여성을 만났다. 스위티는 개인 집 앞에서 호스를 새로 설치하다가, 나에게 도움을 청했다. '나는 오늘 여기에 처음 왔지만 호의적인 사람이고 얼마든지 이 공동체를 도울 용의가 있다'는 자세를 보여주기 위해 한참 동안 낑낑거리며 호스 고치는 것을 도와줬다. 도와주다가 마마라는 또 다른 중년 여성을 만나 인사했다. 마마와 스위티는 둘 다 스페인 출신이라고 했다.

조그만 언덕을 넘어 길을 따라가니 '신(新) 예루살렘'이라는 구역이 나왔다. 이곳에도 개인 집이 몇 개 있었고, 그 중 한 곳에서는 음악과 웃음소리가 흘러 나왔다.

다시 내가 머무는 숙소 쪽으로 돌아왔다. 옷과 수건을 손세탁하고, 화장실 뒷편의 빨랫줄에 빨래를 널었다. 빨래 너는 곳 너머로는 이웃집에서 말을 풀어 놓은 초지가 있었다. 이곳을 서성거리다가 제이슨이라는 덩치가 작은 이스라엘 출신 친구를 만났다. 

제이슨(제이)은 자기가 머물고 있는 언덕 위의 건물인 '고요한 축복(Silent Blessing)'으로 나를 초대했다. 이 건물은 이제 막 공사가 끝나가고 있었다. 제이슨은 자기와 같이 살고 있는 플로비아매튜를 나에게 소개해 주었다. 제이슨은 소스템플 초기에 봉사자로 와서 지내다가 이스라엘로 돌아갔고, 그 후 다시 소스템플로 돌아와 영구 거주민이 되었다고 했다. 소스템플에는 현재 학생들과 영구 거주민을 포함해 50여명이 거주하고 있다고 했다.

'고요한 축복'에서 숙소로 다시 내려오는 길에는 심술쟁이 염소의 습격을 받았다. 염소는 우리를 쫓아오면서 제이슨을 계속 머리로 들이 받았다. 나는 그 상황이 너무 웃겼고 염소가 귀엽다고 생각했는데, 제이슨은 염소의 공격을 막거나 피하면서, 이를 꽉 깨물며 분노를 다스리는 표정을 짓고 있었다. 제이슨은 염소가 지나다니는 사람을 너무 괴롭혀서 곧 전기울타리를 설치할 예정이라고 했다.

숙소로 돌아와 보니, 학생들 몇명이 버거를 사 먹으러 마을 매점에 간다고 했다. 나도 따라갔다. 오늘 소스템플에 오면서 본, 저수지 맞은편에 있는 건물이었다. 학생들이 군것질을 마친 후에는 이미 어두워져서, 핸드폰 플래쉬를 켜고 길을 살피며 돌아와야 했다.

저녁에는 작업장 옆의 공동 홀에서 '미스터 노바디'라는 영화를 봤다. 약간 정신없었지만 재미있게 봤다. 선택의 무의미함과, 무의미함의 유의미함. 어떤 선택이든 삶은 놀이와 같다는 것. 반복되는 선택과 그 선택에 따른 결과를 계산하는 것은 결국 의미없다는 것. 흐름과 섭리에 자신을 맡길 것. 신기하게 몇몇 장면들은 내가 직접 경험을 해본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영화가 끝난 후에는 숙소로 돌아와 냉장고에 있던 차가운 파스타를 조금 꺼내 먹고 잤다. 

가지런히 정리된 청소도구

빨래 너는 곳

작업장

가지런히 정리된 공구들. 소스템플에서는 주변 환경이 깔끔해야 정신도 깔끔해 진다고 가르친다.

공용 홀 입구

아름다운 정원

신 예루살렘의 개인 집

신 예루살렘 입구

햇볕을 받아 잘 마르고 있는 알록달록 빨래들

썩은 나무 줄기와 들꽃

바나나 나무도 보인다.

마을 매점. 술과 음식과 군것질 거리를 팔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