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세계일주/브라질

브라질 소스템플: 화장실, 식량, 페니, 숲의 요정 (여행 218-220일째)

2017년 2월 21일 화

브라질 몬졸로 소스템플. 오후 7시 35분.

배경음악: Cheap Day Return

어제 저녁에 망고 볶음밥부터 망고 쥬스, 라임 쥬스, 민트 쥬스까지 신나게 먹고 마신 덕분에, 잠자리에 들기 전 네댓번은 소변을 보러 밖으로 나가야 했다. 처음에는 화장실로 갔지만 나중에는 화장실까지 가기 귀찮아서 숙소 건물 옆의 으슥한 풀밭에다가 오줌을 쌌다. 까만 하늘에는 별빛이 반짝이고 창문으로는 백열전구의 주황색 불빛이 새어나오지만, 풀숲으로 몇 발자국만 들어가면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다. 오줌물이 풀밭에 떨어지는 소리만 시원하게 들린다.

에밀리에게 들은 것과는 다르게, 소스템플에서는 봉사자들에게 먹을 것도 마실 것도 풍족하게 제공했다. 기본적인 야채, 과일, 빵, 잼, 버터, 계란, 커피 등은 무료로 제공이 되었고, 음식이 더 필요하면 1주일에 한번 오는 음식트럭에서 과일이나 야채를 살 수 있었다. 나는 음식을 한번도 구매하지 않았지만, 에밀리와 케이시는 망고, 파파야, 타피오카 등을 잔뜩 구매했다.

에밀리와 케이시는 덩치가 큰 만큼 식사량도 많고 식사 횟수도 많았다. 빵과 야채 등 공유해야 하는 식량이 많았기 때문에, 처음에는 '얘네들이 다 먹어버리면 내가 먹을 빵이 없을텐데'하고 걱정을 했다. 하지만 두 사람은 자신들이 개인적으로 구매한 망고, 토마토 등을 나에게 아낌없이 나눠주었고, 식량이 모자랄 때는 소스템플에 적극적으로 어필을 했기 때문에, 먹을 것이 부족할 일은 없었다.

오늘부터는 모든 일과가 30분씩 당겨졌다. 새벽 4시 30분에는 파블로, 앨리스와 요가를 했다. 어제 같이 요가에 참여했던 리노케이시 등 다른 학생들은 새벽에 일어나기가 힘들었는지 오지 않았다. 요가가 끝난 후에는 주방에서 갓 구워온 빵에 구아바 잼을 발라 커피와 함께 먹었다. 

어제와 마찬가지로 파블로가 봉사자 숙소로 와서 근무지 배정을 했다. 오늘은 숲과 주방 근무를 각각 2시간씩 부여 받았다. 그런데 페니가 농장 일이 많다며 나를 농장으로 차출했다. 오전 11시까지 고무호스 정리, 식물 물주기, 채소 수확(파, 가지, 컬리플라워)을 도와줬다. 쉬는 시간에는 페니가 준 사과를 먹으며 대화도 나누었다. 여기서는 먹을 것을 손에 쥔 자가 엄청난 권력자로 느껴진다. 농장을 담당하는 페니는 상당히 높은 지위에 있는것 같다. 

페니는 남자친구(혹은 남편)로 보이는 남자와 같이 살고 있다. 그런데 가끔 다른 남자와도 마치 연인처럼 포옹하고 쪼옥쪼옥 키스를 하는 모습이 보인다. 아버지가 누구인지 모르던 고대 '모성애적 사회'의 난혼처럼 이곳도 서로가 원하는대로 자유롭게 사랑하는 곳일까? 서로 질투하지 않을 수만 있다면 난혼도 폴리아모리도 좋을테지만, 마음 속에 질투의 씨앗이 있는 사람에게는 일부일처제나 독신이 더 나을 것이다.

일과가 당겨져서 일이 일찍 끝나고, 점심도 일찍 먹었다. 테이블 반대편에는 프랑스어로 옆 사람과 대화하는 아주 예쁜 여인이 있었다. 인간 세계에 나타난 숲의 요정, 개울가의 암사슴, 새벽 이슬을 맞은 백합. 밥 먹는 내내 힐끔힐끔 그쪽을 쳐다봤다. 숲의 요정은 오후 2시로 바뀐 기도 모임에도 나타났다. 정신을 홀딱 빼앗겨서 깊은 명상을 할 수 없었다.


2017년 2월 23일 목 

브라질 소스템플. 게스트하우스 거실. 오전 6시 30분.

일하는 것이 싫은 것은 아니면서 주말이 기다려지는 이유는 뭘까? 본질적 게으름?

같이 일하는 게 편한 사람이 있고 불편한 사람이 있다. 영국 옥스포드에서 데이브 영감님이 불편했던 것처럼, 페니도 약간 불편하다. 성격이 급한 사람들. 반면 안드레이나 로니처럼 말을 걸거나 무엇을 물어보는 것이 전혀 부담스럽지 않은 사람들도 있다.

어제는 아침부터 설사를 시작해 화장실에 여러번 갔다. 다행히 일하는데 지장은 없었다. 점심은 조금만 먹었고, 오후 5시쯤 간식으로 파이와 빵을 먹었다. 저녁은 먹지 않았다. 수세식 변기가 아닌 건조 화장실이라서 좋았다. 뿌지직 설사를 해도 소리가 나지 않고, 똥물이 튀어오르지 않기 때문이다.

이렇게 몸이 안 좋을수록 더 활동해야 되는 것을 알면서도 그렇게 되지 않았다. 점심 식사 후 누워서 쉬다가 기도 모임에 다녀왔다. 다녀온 후에는 다시 뻗어서 쉬었다.

케이시는 어제와 오늘 2시간씩 추가 노동을 하고, 그 대가로 유료 강의에 참석한다고 했다. 페니도 나에게 강의를 들어보라고 하는데 별로 듣기 싫다. 지혜와 진실과 사랑을 돈 내고 사라니, 면죄부를 돈 받고 파는 것과 무슨 차이인가? 나는 감사하는 마음으로 (무료 강의인) 요가와 기도 모임이나 가련다.


14:30 Prayer & Brightness 16:00 Consideration w/ Sacha R$25 18:00 ACIM Reading R$10 19:00 Silent Blessing R$15

게스트하우스 창문과 누군가 만들어 놓은 모빌

마른 풀줄기와 노란 실로 만든 드림캐쳐가 걸려있다.

각 침실에는 이름이 있다. 내가 묵은 침실의 이름은 인내(PATIENCE)였다.

게스트하우스 주방. 오렌지, 바나나 등의 과일을 잔뜩 보급 받았다. 체크무늬 헝겊 아래에는 빵이 보관되어 있다. 오른쪽에는 정수기가 있다. 뚜껑을 열고 수돗물을 채워 넣으면 아래에서 식수가 나온다.

밤의 게스트하우스

누군가가 틀어 놓은 음악의 앨범 커버. Aqualung Studio album by Jethro Tull.