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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일주/브라질

브라질 소스템플: 라져와 농장일, 유료 강의, 케이시와 폭포 명상 (여행 224-225일째)

2017년 2월 28일 화요일.

브라질 소스템플. 맑음. 오전 6시 40분.

2월도 끝이군.

어제는 식당에서 한시간 청소하고, 농장에서 세시간 동안 낙엽, 잡초, 박스 잔해 제거하는 일을 했다. 농장에서는 라져와 함께 일을 했다.

라져는 힘도 좋고 성실해서 아주 듬직한 일꾼이었다. 그런데 라져는 강렬한 태양과 수레의 무게 때문에 땀을 무척 흘리며 힘겨워했다. 덩치가 커서 힘은 좋았지만 그만큼 체력이 빨리 고갈되는 것 같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라져는 뺀질거리지 않고 열심히 일했다.

쉬는 시간에 라져가 나에게 오더니, "너는 체력이 정말 좋구나. 나는 농장일이 너무 힘들어. 농장일을 배정받지 않았으면 좋겠어"라고 말했다. 나는 오히려 라져의 체력과 힘에 감탄하고 있던 터라 라져의 말을 듣고 조금 놀랐다. 나는 겸손의 표시로, "네가 더 일을 잘 하는 것 같아. 페니도 일을 열심히 하고"라고 대답했다. 때마침 페니가 일하는 모습이 보였기 때문이다. 그러자 라져는 코웃음을 치며, "페니? 페니는 저렇게 10분 동안 일하면 50분 동안은 쉬잖아"라고 대답했다. 맞는 말이어서 웃음을 터뜨리며 수긍했다. 페니는 전형적인, '오래달리기를 하면 첫 바퀴는 제일 앞에서 달리다가 두번째 바퀴부터는 헥헥거리며 걷기 시작하는 타입'이었다.

일하는 내내 어깨와 팔뚝에는 따가운 태양빛이 사정없이 내리쬐었다. 하지만 이미 한 차례 뻘겋게 탔다가 허옇게 벗겨지고 다시 꺼멓게 돋아나고 있는 살갗에는 별 통증이 느껴지지 않았다. 뒷목과 오른쪽 어깨에는 아직 지저분한 살껍질이 붙어 있지만, 점점 시원하게 벗겨지고 있다.

점심은 주방 사람들이 준비한 바나나 요리와 멕시코 요리를 먹었다. 맛있었다.

오후에는 줄리와 함께 기도 모임에 갔다가, 이어서 3시 30분에 "숙고(Consideration)"라는 유료 교육에 참석했다. 소스템플에 와서 최초로 참석하는 유료 교육이었고, 가격은 25레알(거의 만원)이었다. 처음에는 진행자인 사샤가 준비한 신비한 음악을 한참 동안 들으며 앉아있었다. 그 다음에는 사샤가 어떤 철학적/영적 개념에 대한 글을 읽었고, Weaver's Exit 인가 뭔가 하는 12개의 원칙에 대해서 얘기했다. 좋은 말 같았지만 이해는 되지 않았다. 그저 좋아하는 사람들과 함께 앉아 시간을 보냈다는 것과, 돈을 한푼도 내지 않겠다는 고집을 깨고 어느 정도나마 소스템플에 (교육비 명목으로) 기부를 하고 떠난다는 것에 의의를 두기로 했다.

하지만... 소스템플에 더 머물고 싶었던 생각은 좀 옅어졌다. 여전히 좋은 곳이고 좋은 사람들이기는 하지만, 위빠사나, 알란 와츠, 톨스토이 등 쉽고 좋은 강의들을 두고 이곳에서 혼란을 느끼고픈 맘은 없다. 소스템플의 철학과 강의가 아니라, 소스템플의 노동과 음식과 휴식과 사람들이 좋을 뿐이다.

어제 저녁에는 파블로, 파우더, 제이 등이 게스트하우스에 놀러 왔다.

오늘 아침도 요가와 함께 시작했다. 지난 2주 동안 개근한 사람은 소스템플에 나밖에 없었다. 심지어 요가 선생님들도 자기가 가르치는 요일만 오고 다른 날은 오지 않았다. 요가하러 가는 길의 새벽 하늘은 많은 별들로 빛난다. 요가가 끝나고 내려오는 길은 새벽 여명으로 푸른 빛이다. 게스트하우스에 내려와 있으면 곧 주방에서 갓 구운 따뜻한 빵을 배달해 준다. 빵을 맛있게 먹고 커피를 마신다. 화장실에서 똥과 오줌을 따로 싸는 것은 여전히 어렵다.

오후 7시 15분.

오늘도 농장일은 힘들었고, 빵은 맛있었다. 기도 모임에 참여하는 대신 케이시와 함께 다녀온 폭포는 정말 멋졌다. 케이시는 넓적한 바위에 자리를 잡고 귀에 이어폰을 꽂고 명상을 했다. 나는 햇볕과 벌레들 때문에 명상을 제대로 하지는 못했지만 좋았다.

케이시는 보디빌더처럼 온몸이 근육질인데, 본인 말로는 예전에는 지금보다 훨씬 몸이 컸다고 한다. 에밀리가 케이시에게 지적했고, 케이시가 조금 창피해하며 시인했듯이, 케이시는 정말 많이 먹는다. 어떻게 다 소화시키는지 신기할 정도이다. 하지만 많이 먹는다고 해서 그 사람을 판단할 수는 없다. 나도 '불안감'과 '식욕' 때문에 필요한 양보다 더 많이 먹고 있다. 그리고 케이시처럼 많이 먹고 행복하게 웃으며 지내는 것이, 나처럼 쪼잔하게 눈치보고 눈치주는 것 보다는 낫다- 하하하. 

이제 곧 소스템플을 떠나기 때문에 여기저기 돌아다니며 사진을 많이 찍어뒀다.

저녁으로는 줄리가 만든 카레와 점심 시간에 먹고 남은 콩죽을 먹었다. 평화의 시간이다.

줄리는 1주일간 봉사자 대신 학생(컨티뉴엄 스튜던트)으로 지내기로 했단다. 그래서 게스트하우스에서 학생 숙소로 이사를 갔다. 줄리는 이제 돈 좀 털리겠구나. 나는 다시 혼자가 되었다.

게스트하우스 풍경

새로 건물을 짓고 있는 구역의 언덕

고요한 공방

탐스럽게 열린 가지. 소스템플 사람들이 생태주의자들은 아니지만 작물은 유기농이다.

분홍색 꽃

쑥쑥 자라는 밭의 채소들. 비닐 멀칭이 없어서 밭이 예쁘다.

보라색 꽃

밭에서 나온 잡초와 쓰레기

밭에서 멀리 떨어진 풀밭에 이렇게 쌓아 둔다.

개간하지 않은 풀밭. 땅이 넓다!

빨래터 풍경

냇물 우측은 소스템플 부지, 좌측 울타리 안쪽은 이웃집 농부의 목장이다.

이웃집 말이 풀을 뜯고 있다.

냇물과 습지대를 건너는 다리.

게스트하우스

게스트하우스 앞 배나무에서 배를 잔뜩 따왔다. 한국 배와는 좀 다르다. 못생겼지만 껍질채 먹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