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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일주/브라질

브라질 소스템플: 고체용 변기통, 농장, 기도 모임 (여행 217일째)

2017년 2월 20일 월요일

브라질 몬졸로 소스템플(Source Temple). 맑음.

소스템플에서의 공식적인 첫날. 아주 좋은 날이었다. 

아침 4시 30분쯤 일어나 다른 봉사자들을 따라서 어둠을 뚫고 공동 홀로 갔다. 어두운 빛이 나오는 전구를 켜고, 길쭉한 의자 겸 수납장에서 요가매트를 꺼내 자리를 잡고 앉았다. 곧 요가 선생님이 왔고, 5시부터 한시간 정도 요가를 했다. 

여섯시 쯤 숙소로 돌아와, 식당에서 갓 나온 따뜻한 넓적빵을 썰어 잼과 버터를 발라 먹었다. 설거지가 끝난 후, 똥을 싸고 샤워를 하러 갔다. 태어나서 처음으로 써 보는 대변 전용 변기통. 배설물을 물로 씻어내는 것이 아니고 톱밥과 흙으로 덮어 두었다가 땅에 묻는 방식인데 액체(소변)가 들어가면 악취가 나기 때문에 오줌은 싸면 안된다. 요도를 꼭꼭 잠그고 항문에만 힘을 줘야 하는데, 이게 진짜 힘들다. 항문에 힘을 줄 때마다 오줌이 찔끔찔끔 나오려고 했다. 그래도 어찌어찌 똥만 싸고 난 후(몇 방울은 흘린것 같다), 변기통 속 똥 위에 톱밥을 뿌리고 변기 좌석을 솔로 쓱쓱 쓸어냈다. 그 다음 바로 맞은편에 있는 샤워실로 가서 샤워를 했다. 샤워실에는 배수구가 있기 때문에 소변을 보는 변기통도 샤워실에 있었다. 여자는 앉아서 소변을 보기 때문에, 잘못하면 소변 전용 변기에 똥을 쌀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하루 일과가 끝난 후에야, 샤워는 오전 일과 후 몸이 더러워진 후에 하면 되고, 똥은 오줌을 먼저 싸고 나서 싸면 된다는 것을 배웠다.)

소스템플에서의 노동시간은 4시간으로 아침 8시부터 정오까지였다. 파블로앨리스라는 커플이 아침에 숙소로 와서 인사를 했다. 파블로는 덩치도 작고 표정도 부드럽지만 터프함이 느껴졌고(새벽의 요가 선생님이 파블로였다), 통통한 앨리스는 웃는 모습이 착해 보였다. 두 사람은 봉사자들을 관리하는 역할을 맡고 있었다. 파블로가 봉사자들을 주방, 숲, 공방, 농장 등에 할당했다. 봉사자 커플인 케이시에밀리 중 케이시는 공방에, 에밀리는 식당에 할당되었다. 케이시는 석공으로 일한 적이 있어서 지금까지도 계속 공방에서 할당을 받았던 것 같다. 뚱뚱한 미녀 에밀리는 요리를 좋아해서 식당에서 일하는 것을 제일 좋아한다고 했다. 나는 농장을 배정받았다. 나도 농장에 배정받은 것이 마음에 들었다. (하지만 나중에 농장은 사람들이 기피하는 곳이라는 걸 알게 되었다.) 

오늘 떠날 예정인 봉사자 브리아나가 나에게 작업복이 필요하지 않냐고 묻더니 도와주겠다고 했다. 브리아나와 함께 학생들 숙소로 가서 문을 두드리고 안으로 들어갔다. 이곳은 돈을 내고 수업을 들으며 지내는 학생들이 사는 곳이다. 아침을 먹고 있는 학생들 몇명에게 인사를 하고, 한쪽 구석의 옷더미에서 반바지, 나시, 카우보이 모자를 챙겨 나왔다.

옷을 갈아입고 시간에 맞춰 밭으로 갔다. 농장의 반장은 페넬로페(페니)라는 여자였다. 나이는 30대 중반으로 보였고, 아메리카 원주민같은 갈색피부와 건강한 몸매때문에 아름다운 여전사 포스가 풍겼다. 페넬로페가 시키는 대로 밭과 화분에 물을 주기 시작했다. 농장에는 안드레이라는 남자도 있었는데, 안드레이는 영어를 못해서 나와 의사소통이 힘들었다. 나는 페넬로페와는 달리 편안한 느낌을 주는 안드레이와 일하는게 좋았다. 나중에 알고 보니 안드레이는 소스템플 소속이 아니라 마을에서 고용되어 일하러 오는 사람이었다. 식물에게 물을 준 다음에는 안드레이와 함께 고장난 호스를 고쳤다. 그 다음에는 밭을 깨끗히 청소하기 시작했다. 밭에는 잡초와 흙과 돌과 멀칭으로 사용했던 박스 등이 잔뜩 있었는데, 그것들을 모아서 수레에 실었다가 뒷편의 갈대밭에 내다 버리는 일을 반복했다. 오랫동안 햇볕을 받고 있으니 살이 점점 따가워지고 약간 힘이 빠졌지만 물을 마시며 에너지를 충전했다. 산을 보며 일하는 게 좋았다. 거미도 있고 큰 개미도 있고 지렁이도 있고 노란색 새도 있었다.

일을 하다가 사샤라는 신비한 분위기를 풍기는 젊은 여자를 만났다. 사샤는 소스템플의 시작멤버여서 지위가 높은 듯 했다. 그리고 소스템플의 유일한 황인종(몽골로이드)으로 보이는 중년 여성 (T)도 만났다.

일을 마치고 식당으로 가니, 주방 근무자들이 맛있는 음식을 잔뜩 해 놓았다. 음식은 비건은 아니었지만 채식이었고, 먹고 싶은 만큼 먹을 수 있었다. 쌀밥, 잡곡밥, 콩죽, 당근, 양배추샐러드 등을 접시에 담아 식당 앞 야외 테이블에서 먹었다. 먹던 도중에 누군가 옥수수를 삶아 와서 사람들에게 나누어 주었다. 처음 만나는 사람들과 인사를 나누고 양껏 먹었다. 이렇게 풍족하게 식사를 주면 아침이랑 점심만 먹어도 충분할 듯 하다. 

식사가 끝난 후에는 설거지와 주방 청소를 했다. 학생과 봉사자들은 매일 이렇게 설거지와 주방 청소를 돕고, 나머지 영구 거주민들은 순번을 정해 도와주는 것 같았다. 일부는 세 군데의 싱크대에서 둘 씩 짝지어 설거지를 하고, 일부는 마른 수건으로 설거지가 끝난 접시와 냄비를 닦고, 일부는 테이블과 바닥을 쓸고 닦는다. 오십여 명이 밥을 먹어서 그런지 주방 정리가 끝난 후에는 짬통에 혼자 들기 버거울 만큼 음식 쓰레기가 쌓인다. 케이시와 함께 짬통을 들고 숲속의 구덩이에 버리고, 물로 짬통을 깨끗히 씻었다. 

주방 청소 끝나고 1시부터는 자유시간이다. 우와 좋다! 해먹에 누워서 시원한 바람을 즐기며 '눈물을 마시는 새'를 읽는다. 그러다가 케이시와 함께 '기도' 모임에 참여하기로 했다. 소스템플에서는 오후 내내 이런저런 프로그램이 있는데, 봉사자가 참여하기 위해서는 수업료를 내야 한다. 하지만 아침의 요가와 오후의 기도 모임은 무료다. 

기도 모임은 어제 호스를 고쳐줬던 스위티의 집에서 있었다. 2시 30분이 되자 사람들이 열댓명 모였고, 각각 방석을 깔고 바닥이나 침대 위에 앉았다. 먼저 "A Course in Miracles"이라는 책의 특정한 부분을 다함께 읽었다. 소스템플에서는 이 책이 성경책과 비슷하게 사용된다. 그 다음에는 "아시시의 성 프란체스코의 기도"와 또 어떤 영적인 구절을 읽었다. 나는 내용을 몰라서 가만히 명상자세로 들었다. 그 후 고요한 명상과 기도의 시간이 있었다. 나는 왠지 행복하기도 하고 슬프기도 하고 감사하기도 한 이상한 감정이 충만해지면서 눈물이 조금 흘렀다. 시간이 조금 흐르고 사람들이 자리에서 일어나거나 움직이는 소리가 들렸다. 나도 눈을 뜨고 주위를 둘러보다가 다른 사람과 눈이 마주치면 눈웃음을 주고 받았다. 케이시는 벽에 등을 기대고 명상을 하다가 잠이 들었다. 사람들은 웃으면서도 케이시를 깨우지 않도록 조용히 자리를 떠났다. 하하. (나중에 깨어난 케이시는, 망신을 당했다며 다시는 기도 모임에 참여하지 않았다.)

기도 모임에서 돌아와서는 시간이 어떻게 간지 모르겠다. 와이파이에 연결해 인터넷도 하고, 포어도 공부하고, 기타도 만지작 거렸다. 너무 좋다. 

숙소 건물의 모임 공간에는 바깥으로 통하는 옆문이 있고, 문 밖으로는 바나나 나무와 배나무가 있다. 이웃 마을에서 온 여자아이 하나 남자아이 둘이 갈퀴손으로 배를 따고 있었다. 막대기 끝에는 손가락을 오무린 듯한 모양의 철사가 달려 있는데, 남자아이가 그걸 배에다 걸어 당기면 과일이 떨어지고, 여자아이는 떨어져 굴러가는 배를 쫓아다니며 주워 담았다. 간혹 가지에서 떨어진 배가 여자아이 몸에 맞으면 남자아이들은 킬킬 웃었다. 아이들이 떠난 후 나도 배를 하나 따와서 먹었다.

그리고 저녁식사를 준비한다.

농장 풍경. 오른쪽에는 농기구 창고가 있고, 정면에는 페넬로페의 집, 좌측에는 온실이 있다.

숙소 건물의 모임공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