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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일주/브라질

브라질 소스템플: 루드비아, 줄리, 매리, 찬양 모임 (여행 220-223일째)

배경음악: Hare Krishna Hare Rama

2017년 2월 25일 토

브라질 소스템플. 흐림. 오전 11시 20분.

일기를 쓰는 것도, 사진을 찍는 것도 잊어버리고 있다. 이 좋은 곳, 좋은 분위기 속에서 한없이 정체되고 싶은 기분도 든다.

목요일에는 루드비아(루디)신(新)예루살렘에서 잡초를 제거하고 화초에 물을 주는 일을 했다. 일이 쉬웠고, 루드비아와 일하는게 좋아서 시간이 금방 갔다. 루드비아는 나에게 어떤 일을 시킬 때마다 공손하게 부탁했고, 일이 끝날 때마다 기쁜 표정으로 감사의 말을 했다. 루드비아가 틀어놓은 잔잔하면서도 경쾌한 음악이 루드비아와 잘 어울렸다. 루드비아는 신이나면 깡총깡총 뛰었다. 

오후에는 줄리가 게스트하우스에 새로 들어왔다. 줄리는 조그만 독일 여자애였다. 원래는 나와 같은 날 소스템플에 들어올 예정이었지만 며칠 늦어져서 이제야 도착했다. 줄리는 소스템플에서 지내는 동안 가장 가까운 친구가 된다.

금요일에는 두 군데에서 작업을 했다. 먼저 요가 수업을 하는 공동 홀에서 2시간 동안 창문을 닦았다. 루드비아도 오늘은 여기서 창문을 닦았다. 그 다음에는 숲 속의 나무집에서 페인트칠과 청소를 했다. 숲의 작업반장은 매리(Mary)라는 정말 예쁜 여자였다. 매리는 프랑스에서 온 것 같았다. 레바논 출신 리노와 미국 출신 흑인 피터도 여기서 일을 하고 있었다. 소스템플의 창립멤버 중 한 명인 사샤도 이곳에 종종 나타났다. 사샤는 살쾡이의 거친 눈빛과 성모 마리아의 자비로운 미소를 갖고 있었다. 왠지 모르게 매력적이고 신비로우면서도 겁이 나는 여자였다. 사샤에게 2주의 봉사기간이 끝난 후에도 소스템플에서 더 머무르고 싶다고 말할지 말지 여러번 망설였다.

금요일 오후, 일이 모두 끝난 후에도 시간이 잔뜩 남아서 행복했다. 에밀리는 케이크와 파이를 구워 놓고, 케이시와 함께 파블로네 집에 놀러 갔다. 줄리와 단 둘이 게스트하우스에 남아서 비오는 것을 구경했다. 천둥번개와 무섭게 내리는 비. 어렸을 적 교회 수련회에 갔다가 태풍을 만나, 건물에 갇혀 빗소리를 듣던 기억이 떠올랐다.

오늘 오전 소스템플 사람들과 한 자리에 모여 노래했을 때에도 어렸을 적 생각이 났다. 교회 형들, 누나들, 친구들과 둥글게 모여 앉아 기타 반주에 맞춰 찬양을 하던 기억이었다. 그때 그곳에서는 하나님예수님을 불렀고, 오늘 여기서는 라마크리슈나를 불렀다. 하지만 노래 가사는 크게 상관이 없다. 모든 것이 신을 찬양한다. 나는 주위 사람들과 하나가 되었고, 내 자신의 의식은 희미해졌고, 전체의 일부로서 목소리를 낸다는 것이 행복했다. 매리의 남자친구가 기타를 쳤고, 루드비아가 리코더를 불었다. 환상적인 리코더 연주였다.

아, 어찌나 어린시절의 기억들이 떠오르던지. 왜 지금 갖고 있는 보석들이 값진 것이라는 것은 깨닫지 못하고, 다른 꽃들을 찾아 세상을 한참 헤맨 후에야 이미 두 팔 가득 꽃다발을 품고 있었다는 걸 알 수 있는 건지. 그래, 거기에 행복과 신이 있었다. 이미 있었다. 그저 알지 못했을 뿐이다. 물 속의 물고기가 물을 알지 못하듯이. 오늘 아침 나는 노래를 부르며 17년 전으로 되돌아가 있었다. 파랑새, 연금술사, 플레인스케이프, 포켓몬스터, 잉칼... 그리고 나를 기다리고 있는, 모든 것이 시작되고 끝날 그곳.

어젯밤에는 모기장 속 침대에 누워서, 이 모든 상황과 환경에 만족하고 감사하면서도, 알 수 없는 피곤함을 느꼈다. 어젯밤이 아니라 오늘 아침이었는지도 모르겠다. 끝없이 계속되는 삶과 무수한 기억들. 한 사람 한 사람 속에는 대체 몇천 개의 삶이 쌓여 있는 건지. 언제까지 방랑을 계속해야 하는지. 이 방랑이 끝난 후에는 정말로 "방랑"이 끝나는지.

2017년 2월 26일 일

브라질 소스템플. 흐리고 비. 오후 9시.

옥스포드에서는 그렇게 안가던 시간이 이곳에서는 빨리도 가는구나. 앞으로의 계획도 불확실하고 더 머무르고 싶은 마음이 커져간다. 주변 사람들(에밀리, 케이시, 줄리, 파우더, 라져, 로니)에 대한 애정도 점점 더 깊어진다.

아침에는 빵을 먹고, 케이시가 해준 스크램블 에그도 먹었다. 소스템플의 공식 일정이 하나도 없는 날이어서 케이시와 함께 폭포에 갈 계획이었지만, 날씨가 안 좋아서 취소되었다.

오전에는 줄리가 돌멩이 목걸이 만드는 법을 가르쳐 줬다.

점심으로 콩죽과 쌀죽을 먹었는데, 에밀리가 스파게티를 해줘서 또 먹었다. 배가 땡땡해졌다.

케이시와 에밀리에게 "매직 더 개더링"을 배웠다. 너무 재미있었다. 더 배우고 싶은 마음에 몇 시간에 걸쳐 스마트폰에 "매직 더 개더링"과 "하스스톤"을 다운 받았다. 하지만 사양이 너무 높아서 실행되지 않았다.

저녁에는 공동 홀에서 다같이 "Rise of the Guardians"를 봤다. 다들 재미있게 보는 것 같은데 나는 별로 재미가 없었다. 나만 등장인물들에 대한 배경 지식이 없는 것 같았다. 영화를 보고 게스트하우스로 돌아와서 카레밥을 먹었다. (오늘 총 다섯 끼를 먹었다.)

좋다. 모든 것이 좋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마음 속의 공허함은 무언가를 찾아 헤맨다.


게스트하우스 주방과 거실 풍경. 차를 마시기 위해 주전자에 물을 끓이고 있다. 커피는 모카포트에 끓여 마신다.

게스트 하우스 정문과 바 테이블. 창밖으로는 숲이 보인다.

촛농 속에 곤충 시체가 떠 있다.

줄리는 실 공예와 금속 공예를 하는데, 금속 공예를 더 좋아한다. 줄리의 작업 주머니에는 줄리가 만든 장신구들이 잔뜩 들어있다.

게스트하우스 거실 카페트의 패턴

게스트하우스 옆문의 신발장

옆문 밖 수풀 앞에는 기분 좋은 글귀(accomplished)가 걸려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