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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일주/브라질

브라질 소스템플: 언덕 등산, 담배와 헤로인, 바위와 독수리 (여행 226일째)

2017년 3월 1일 수요일

브라질 소스템플. 오후 7시 50분.

소스템플. 컨티뉴엄 학생들의 "기부"가 없으면 얼마나 지속 가능할까?

이제 이곳을 떠나 포르토 알레그레(Porto Alegre) 근처의 다른 공동체로 이동할 계획이다. 일요일까지는 여기에 머무르는 것이 좋을 것 같다.

오전에는 낙엽쓸기(raking)와 숲 속 건물 화장실의 페인트칠 위에 약품을 덧칠하는 일을 했다.

점심을 먹고 낮잠을 자다가 케이시와 함께 산에 오르기로 했다. 이전부터 "산에 한번 가야지, 가야지-" 하다가 떠날때가 다 되어서야 가게 되는구나.

소스템플의 농지를 지나서 들판으로 난 길을 걷다가 덤불이 점점 무성해지는 숲속으로 들어갔다. 대나무 숲과 개울을 지나고 진흙탕을 건너니, 다시 태양이 내리쬐고 풀이 무성한 들판이 나왔다. 풀들이 노출된 다리를 사정없이 긁어대지만, 그 풀들을 짓밟고 지나가는 신발들은 풀들의 할큄에 아랑곳하지 않지. 햇살에 눈부시게 빛나는 풀들. 내가 사진을 찍느라고 뒤쳐지면, 앞서가던 케이시가 잠시 나를 기다렸다가 다시 같이 올라간다.

나무 한 그루를 기점으로 삼아, 그곳부터 경사가 가파른 언덕길이 시작된다. 이곳도 나무가 무성한 숲이었을 테지만, 목축을 위해 이렇게 풀밭으로 바뀐 것 같다. 누군가가 관리를 하는지 언덕을 향해 길이 나 있고, 풀과 어린 나무들이 잘린 흔적도 보인다. 케이시가 잘려나간 관목줄기 하나를 가리키며, "이건 여기 사람들이 소 혓바닥(cow's tongue)이라고 부르는데, 발을 잘못 디디면 종아리가 꿰뚫릴 수도 있어. 밟지 않도록 조심해-"라고 말했다. 무거운 몸으로 이 거친 언덕길을 올라가는 소들이 대단하다는 생각이 든다.

올라가면 올라갈수록 빛나는 풀들. 구릉 너머로 펼쳐진 구름낀 하늘. 가까이서 날고 있는 독수리들.

정상에는 커다란 바위가 있었다. 바위 위에 기어 올라가서 주위를 360도 돌아보고 내려왔다. 근처에는 나무가 딱 한 그루 있었고 우리는 그 아래에 자리를 잡았다. 케이시가 나무 아래에 깔아 놓은 담요가 나무 사이로 들어오는 햇살을 받아 빛나는 풍경이 너무 아름다웠다. 

케이시는 나보다 어린 친구여서 '별 경험도 걱정도 없는 순진한 여행자'라고 생각해 왔는데, 대화를 나눠보니 벌써부터 수많은 인생의 굴곡을 겪어온 친구였다. 소스템플에서는 금지되어 있는 담배를 꺼내서 피우던 케이시, "끊어야 하는데 잘 안된다"며 멋쩍은 표정을 짓는다. 그러다가 마약 얘기가 나왔는데, 케이시는 코카인, 헤로인, LSD, 머쉬룸 등 안해본 마약이 없다고 한다. 폐인 수준으로 약에 중독되었을 때는 반쯤 맛이 가서 권총 강도까지 할 정도였다. 케이시는 약물 중독으로 거의 죽을 뻔했던 일과 재활센터에서 생활하던 일을 과장도, 과시도, 부끄러움도 없이 담담하게 말했다. 케이시의 친구들 중에는 헤로인 때문에 죽은 사람이 많았다. 자기도 죽을 수 있었는데 살아나게 된 이유에 대해 생각하며, 점점 영적인 깨달음을 추구하게 되었다고 한다. 겉으로 보기에 케이시는 그저 잘 먹고 잘 웃는 친구였기에, 이런 심각한 과거가 있을거라고는 상상하지 못했다. (얘기를 듣고 나니, 케이시가 담배 피우는 것 쯤은 아무 문제도 아니란 생각이 들었다.)

케이시가 나무 아래에서 명상을 하게 두고, 나는 언덕을 돌아다니며 벌레, 풀, 새, 바위, 지평선을 구경했다. 정말 아름다운 곳이다. 내려오는 길에도 풍경을 눈에 더 담아두지 못하는 것이 아쉬워서 여기저기 사진을 찍다가 뒤쳐지곤 했다.

마을(소스템플)로 돌아와 케이크를 먹고, 차를 마시고, 밥을 잔뜩 먹었다. 그리고 다시 여행을 떠날 준비(카우치서핑으로 묵을 곳 찾기)를 했다.

언덕 풍경

노랑 빨강 주황색 꽃

신발끈을 정리하는 케이시

언덕 올라가는 길. 좌측 하단에 소스템플의 건물들과 호수가 보인다.

언덕 중간의 바위에서 쉬는 케이시와 아름다운 빛깔의 식물

호빗 동산 아니면 텔레토비 동산

독수리가 가까이서 날고 있다.

정상의 바위

이름모를 과실

바위에 자리를 잡고 앉은 독수리 두마리.

케이시가 명상을 했던 나무 그늘 아래. 완만한 구릉이 끝없이 펼쳐져 있다.

내려오는 길. 자꾸 뒤를 돌아보게 된다.

신비롭게 생긴 이끼류


사진 더보기: 2019/03/03 - [Photos] - 브라질 몬졸로 소스템플(Source Temple) 부근 회색 바위 언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