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세계일주/브라질

브라질 소스템플: 폭포, 개미, 구아바, 이름놀이 (여행 227-228일째)

2017년 3월 2일 목요일

저녁식사 전. 시계 고장. 비가 한바탕 내림.

[1] 가만히 눈을 감고 복구에 의식을 집중하면 배의 빵빵함이 느껴진다. 사실 거의 하루 종일 배가 빵빵하고 (식욕은 있지만 배가 고프지는 않다) 먹을 것이 냉장고에 가득하지만, 에밀리와 케이시를 핑계로 항상 배부름을 유지하며 많이 먹고 있다. 줄리와 비슷하게 생활한다면 훨씬 적게 먹을 것 같다. 그래도 지금은 먹자. 먹을 수 있을 때 잔뜩 먹자.

[2] 점심 식사 후, 라져와 케이시의 '영적인 길'과 '깨달음'에 대한 얘기를 가만히 들으면서, 아는척 하고 싶은 욕심과 대화의 중심에 있고 싶은 욕망이 내 안에 건재함을 느꼈다.

[3] 오후에는 폭포(Cachoeira do Pimenta)에 가 보기로 했다. 폭포 쪽으로 내려가는 길에 많은 동물들을 만났다. 소들은 멀뚱하게 나를 쳐다봤다. 늪지의 말들은 무관심하게 풀을 뜯고 있었고, 병아리와 닭들은 소란스럽게 돌아다녔다. 투구를 쓴 것처럼 머리가 커다란 개미도 있었고, 공중부양을 하듯이 허공에 떠 있는 애벌레도 있었다. 폭포에 도착한 후에는 목걸이 재료로 사용할 돌멩이를 찾아 보았지만, 쓸만한 것이 많지 않았다. 물 속에는 조그만 물고기들과 벌레들이 보였다. 방송국에서 나온 듯한 남녀가 커다란 카메라로 폭포 앞에서 무언가 촬영을 했다.

[4] 돌아오는 길에는 비가 조금씩 내리다가 후두둑 쏟아지기 시작했다. 서둘러 소스템플로 돌아와 빨래를 걷었다. 해가 지기 전에는, 줄리에게 드림캐쳐 만드는 방법을 배우기 위해 마른 풀줄기를 채집하러 돌아다녔다. 저녁에는 블라블라카를 예약하고 상파울루에 갈 준비를 시작했다. 떠나고 싶지는 않지만 떠나야 할 때인 것 같다.


2017년 3월 3일 금요일

[1] 오늘도 역시 너무 감사한, 의미로 가득한, 아름다운 하루였다. 

[2] 새벽 요가 수업은 비가 와서 그런지 참석자가 없었다. 심지어 페니의 남자친구 존도 오지 않아서, 페니가 개인 강습을 해줬다. 요가 수업이 끝나고 언덕길을 내려가면서, 어제와 마찬가지로 5시 반 리딩 수업을 위해 언덕을 올라오는 줄리와 엇갈리면서, 바통을 터치하듯 손뼉을 "짝" 마주쳤다.

[3] 오전 과업으로 3시간 동안 라져와 아마와 함께 소스템플 전역을 돌아다니며 구아바를 나무에서 따거나 땅에서 주웠다. 농장일보다 훨씬 편하고 여유있는 일이었지만, 구아바를 따거나 주울 때는 구아바의 상태를 보고 '충분히 익었는지'와 '썩지 않았는지'를 판단해야 하기 때문에 나름대로 정신적 고충이 있었다. 구아바를 잔뜩 모은 다음에는 주방으로 가서, 벌레먹은 구아바를 골라내고 성한 것들만 껍질을 벗겨내, 구아바 쥬스를 만들 수 있도록 준비했다.

[4] 점심을 먹고 설거지를 하면서 재미있는 얘기를 많이 들었다. 기억나는 것 중 하나는 아마와 어떤 사람(A)의 이름이 이전에는 반대였다는 것, 다시 말해 A라는 사람이 아마라는 이름을 썼고, 아마는 A의 현재 이름을 썼다는 것이다. 그리고 루드비아(신나면 깡총깡총 뛰고, 리코더를 환상적으로 잘 부는 여인)의 이름이 이번주부터 글로리어쩌고(?)로 바뀌었다는 얘기도 들었다. 설거지를 하다가 웃음이 터져버렸다. 소스템플 사람들의 이름 중에는 제이(J), 엠(M), 티(T) 등 간단한 호칭이 많이 있었는데, 이게 다 이유가 있는 것이었다. (내 예상으로는) 자아를 없애고 자신의 고정된 정체성에 얽매이는 것을 피하기 위해 이름을 주고 받고 바꾸고 간소화하는 것 같다. 아니면 단순한 기분전환일 수도 있고, 장난일 수도 있다. 어쨌든 남들에게 혼란을 줄 수 있다는 것에는 아랑곳하지 않고, 이렇게 '이름놀이'를 한다는 것이 매우 신선하고 유쾌하게 다가왔다.

[5] 줄리에 대해서. 줄리는 예쁘지는 않지만 다람쥐처럼 귀엽게 생겼고, 아담하고 건강한 몸으로 요가와 수영을 곧잘 한다. 돌멩이와 금속으로 장신구를 만들고, 식탐이 거의 없고, 채식을 하는 등 여러 면에서 이상적인 여성이다. 그래서 같이 있거나 신체적/정신적 접촉이 있을 때마다 느낌이 좋고, 특별한 사람이라는 마음이 든다. 하지만 막상 이렇게 호감이 생기자 그 감정이 오히려 줄리와 함께 있는 것을 불편하게(불안하게) 만든다.

[6] 반면 오늘 라져와 마을 바(bar)에 내려가서 대화를 나누는 것(뉴질랜드, 스위스, 유니버셜 스튜디오 등에 살던 것, 온라인 사업과 레스토랑 등을 하다가 실패한 것, 일을 안하는게 돈을 더 버는 것이라는 결론 등), 에밀리를 도와 주방에서 바나나를 써는 것, 피터(미국에서 온 흑인)와 바람에 튀기는 빗방울을 맞으며 차와 바나나 케이크를 먹는 것, 핸드폰으로 장진호 전투와 흥남 후퇴 등에 관한 글을 읽으며 "나 자신"에 대해 너무 모르고 있었다고 깨닫는 것 등의 자잘하고 일상적인 순간들은 오히려 더 편안하다. 그런 면에서 인간의 감정은 참으로 모순적이다.

[7] 혼자서 폭포로 내려가는 길의 온갖 신비한 사물들, 조랑말을 만지려다가 발길질에 채일 뻔하고 놀라서 도망친 것, 심술쟁이 염소가 머리로 들이받는데도 전혀 무서워하지 않고 깔깔 웃으며 염소를 데리고 노는 동네 소년들을 바라보는 것, 이 순간들은 누군가와 같이 있었다면, 그게 줄리든 베라든 누구든 간에, 제대로 느끼지 못했을 순간들이다. 그래서 명상은 결국 혼자하는 것, 누구도 내 길을 대신 가 줄 수 없다는 생각이 든다. 하지만 한편으로는, 함께 하는 명상이 더 큰 의지력을 주듯이, 누군가와 함께 있는 것에도 어떤 의미가 있다.

[8] 소설이나 역사를 읽을 때 더 실감나게 다가오는 것들. 예를 들어, "분노의 포도"를 읽을 때 히치하이킹을 하는 장면은, 히치하이킹을 해보기 전과 해본 후 전혀 다르게 읽힌다. 마찬가지로 행군, 추위, 야영, 모포를 밧줄로 묶어 비를 피할 곳을 만드는 장면 등이 이제는 보다 현실적이고 실제적인 묘사로 다가온다.


소스템플 입구. 동물들이 점령했다.

오줌을 싸는 흰 소

마을 사람들이 키우는 말

공중에 매달려 있는 벌레. 작고 말랑말랑한 몸을 가시로 보호하고 있다.

저수지와 검정 개

개미 구멍

머리가 큰 개미

폭포에 놀러 온 사람들

과일을 공격하는 개미들

나방 사체(?)를 공격하는 개미들

어떤 개미의 머리

개미굴

다리를 건너는 왕개미

비가 쏟아지기 시작한다.

밤의 게스트 하우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