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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일주/브라질

브라질: 소스템플 하산, 상파울루의 카니발, 아름이네 집 (여행 230일째)

2017년 3월 5일 일요일

[1막: 소스템플]

아침 5시에 일어나 바나나와 요거트와 죽을 먹었다. 오늘 하루종일 못 먹을수도 있다는 생각에 과식을 해서 출발하기 전에 똥을 두번이나 쌌다.

떠날 시간이 되어 게스트하우스 앞에서 그동안 정들었던 친구들(봉사자들과 학생들)과 작별했다. 

배낭을 메고, 대나무 지팡이를 땅에 짚으며 마지막으로 손을 흔드는데, 내 모습이 딱 어벙이 순례자(타로카드 0번의 바보) 모습을 하고 있다는 느낌이 들어 웃음이 나왔다. 친구들도 비슷한 생각을 했는지 나와 같이 한바탕 웃음을 터뜨렸다.

소스템플에서 쿠냐로 가는 길. 한적한 시골길을 따라 걷다가 첫번째로 만난 자동차가 픽업해 주었다. 남자 운전자와 여자 승객 3명이 타고 있었는데, 여자 한명이 자리를 옮겨 내가 조수석에 앉을 수 있게 해 주었다. 13킬로미터라는 거리가 생각보다 훨씬 더 길었다. 걸어서 갔으면 4시간은 족히 걸렸으리라는 생각이 들었다. 가다가 보니 운전자와 승객들이 서로 잘 모르는 것 같았다. 왠지 이게 택시일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하지만 쿠냐에 도착해서 운전자는 손으로 따봉 표시를 하며 아무것도 요구하지 않고 내려 주었다.

쿠냐(Cunha)에서 과라(Guaratinguetá)로, 다시 과라에서 타우바테(Taubaté)로 버스를 타고 이동했다.

[2막: 타우바테]

타우바테에서는 에듀왈도의 집에 찾아가 보았다. 

집 앞에서 이름을 불러 보았지만 개(롤라) 짖는 소리만 나고 대답이 없었다. 돌아가려는데 집에서 카밀라가 나왔다. 에듀왈도는 집에 없었다. 

빵집에서 사온 빵과 돌멩이 목걸이를 선물로 주고 카밀라와 헤어져 다시 버스 터미널로 갔다. 오후 1시에 출발하는 상파울루행 버스를 기다리며 또 다른 돌멩이 목걸이를 만들었다.

[3막: 상파울루 - 터미널 부근]

다시 돌아온 상파울루의 티에테 터미널(Terminal Rodoviário Tietê). 다시 걷는 상파울루의 거리. 이제는 처음처럼 긴장되지 않는다. 

아름이와 만나기로 한 전철역(Bresser-Mooca)으로 가면서, 물총과 눈스프레이(snow spray)로 무장한 군단을 만났다. 서로에게 물총과 눈스프레이를 뿌려대는 수백 수천 명의 사람들과 화려한 복장을 입고 춤을 추는 사람들이 길을 가득 채우고 있었다. 카니발은 이미 끝난 줄 알았는데, 이건 또 무슨 축제지? 머릿속에 호기심과 의문을 담은 채로 축제 구역을 벗어나니, 파리 한 마리 보이지 않는 으스스한 거리가 나왔다. 도로와 건물은 멀쩡하게 있는데, 사람과 자동차는 단 하나도 보이지 않고, 가게 셔터는 모두 내려가 있었다.

알고보니 오늘이 카니발 마지막 날이었다.

약속 장소인 전철역에 도착해 아름이를 기다리다가, 술에 취한 채로 군것질을 하고 있는 걸인과 대화를 나누게 되었다. 얘기를 조금 하다가 동전을 달라고 해서 갖고 있는 1레알짜리 동전을 줬다. 걸인은 환하게 웃으며 고맙다는 말과 축복의 말을 한참동안 내뱉었다. "너의 앞길이 형통하길 바란다! 네가 안전하길 바란다! 하는 일이 성공하길 바란다! 네 가족 모두가 건강하길 바란다! 행복하기를 바란다! 항상 신이 너를 인도하시기를 바란다! ..." 1레알로 세상의 모든 축복을 다 받은 듯하다.

시간이 되었는데도 아름이는 나타나지 않았다. 다시 연락이 왔는데, 친구들 때문에 오지 못했다며 파울리스타(Metrô Paulista)에서 만나자고 한다. 혼자서 전철을 타고 파울리스타로 이동했다.

[4막: 상파울루 - 파울리스타]

파울리스타에서 아름이와 아름이의 친구들을 만났다. 아름이 친구들은 괴성을 지르며 미친듯이 환영해 주었다. 깡충깡충 뛰며 사하다(sarrada) 포즈를 취하는 친구도 있었고 그걸 보면서 깔깔 웃는 친구도 있었다. 남자애 한명은 나에게 맥주, 치즈빵, 물을 사주며 콘돔 하나를 손에 쥐어 주었다.

새로운 친구들과 함께 축제의 거리를 돌아다니는데 갑자기 비가 쏟아지기 시작했다. 시원한 빗줄기 사이로 둥둥 떠다니는 사랑이 보였다. 비를 피해 어디론가 달려가는 사람들의 얼굴에는 웃음과 흥분이 가득했다.

우리도 비를 피해 식당에 들어갔다. 식당에서 베지버거를 먹으며 새로운 친구들과 대화를 나누었다. 아름이 친구들 중 남자애들은 일본계 브라질인들이었고, 여자애(바네사)는 백인과 아시아인의 혼혈이었다. 오늘 처음보는 사람들인데도 무척 친근하게 대해 주었다. 원하면 집에서 재워준다는 얘기도 들었다. 정말 고마웠다.

택시를 타고 아름이가 차를 세워둔 곳으로 이동 후, 다시 아름이 차를 타고 아름이네 동네로 이동했다. 가면서 바네사는 아름이에게 자신의 새 남자친구에 대해 얘기했다. 몸 좋은 미남인데, 철이 없고 여자 관계가 복잡해서 바네사가 힘들어하고 있다는 토로였다.

[5막: 상파울루 - 아름이네 집]

아름이네 집에서는 예전에 한국에서 잠깐 본 적이 있는 아름이의 동생 보라를 만났다. 보라는 처음 봤을 때보다 차분하고 안정된 느낌이었다.

보라와 아름이에게 돌멩이 목걸이 만드는 방법을 가르쳐 주는 동안, 아름이의 어머니(줄리아), 아버지, 막내 동생(지혜)이 차례로 집에 돌아왔다. 아름이의 어머니는 한국어와 영어를 못하셔서 인사만 하고 대화를 거의 못했다. 

아름이 아버지와 와인을 마시며 새벽 3시 반까지 대화를 나눴다. 법륜 스님이 상파울루에 왔을 때 운전해 드리고 질문한 얘기, 채사장이라는 사람이 사고를 당해 같이 있던 사람들은 죽고 자신만 살아남은 얘기, 부엉이 바위 얘기, 행동은 생각으로부터 결정되고 생각은 지식으로부터 결정된다는 아름이 아버지의 철학 얘기(그래서 지식이 가장 중요하다는)를 들었다. 아름이와 보라는 아버지가 이야기를 시작하자마자 싫어하는 티를 내며 자리를 피했지만 나는 재미있게 얘기를 들었다. 하지만 무척 피곤했다.


소스템플에서의 마지막 아침

눈에 익은 늪지를 지나서

폭포를 지나

하산하는 길

쿠냐의 터미널

다시 돌아온 타우바테

에듀왈도와 연락이 닿지 않았지만 인사를 하기 위해 찾아가 보기로 한다. 빵집에서 빵을 조금 샀다.

다시 돌아온 상파울루

아직 축제가 끝난게 아니었다.

여기저기서 서로 다른 음악소리가 들린다.

축제 의상을 입고 퍼레이드 준비를 하는 사람들

눈스프레이

춤추며 행진하는 사람들

뒤를 따르는 악단과 자동차들

축제 구역을 벗어나자 무섭도록 황량한 거리가 나온다.

쓸쓸한 노숙자도 보인다.

돌멩이 목걸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