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세계일주/브라질

브라질 해돋이 농장 사람들 소개 (여행 236일째)

2017년 3월 11일 토요일

브라질 해돋이 농장(Chácara Sol Nascente)


우와, 어젯밤에는 자신의 한계를 절실히 느꼈다. 수십 마리의 모기들이 밤새 윙윙거리며 머리 주변을 날아다녔다. 기피제를 얼굴에 덕지덕지 발라서 마구 뜯기지는 않았지만, 모기떼의 엄청난 날개소리에 완전히 압도당했다. 미군 헬기부대에 포위당해 기관총 세례를 받는 땅굴 속의 베트콩이 된 기분이었다. 얇은 천으로 온몸을 감싸 보지만 소용이 없었다. 자기 전에 샤워를 하지 않아서인지, 아니면 모기에게 많이 뜯겨서인지, 밤새 온몸이 간지러워 잠들 수가 없었다. 명상하듯이 가만히 참아보려고 했지만, 지칠대로 지쳐버린 정신은 도저히 반항할 수 없는 강렬한 감각에 철저히 휘둘렸다.

커튼 건너편에서 자고 있는 오스카(콜롬비아에서 여기까지 9개월 동안 자전거를 타고 왔음)도 마찬가지로 고통스럽게 잠들기 위해 애쓰고 있는 것 같았다.

그리고 창밖에서는 개가 내는 소리인지 사람이 내는 소리인지 헷갈리는 낑낑거리는 신음소리가 들리는 것 같은데, 실제인지 환청인지 구분이 되지 않았다. (바깥의 텐트에서 자는 커플이 내는 소리라는 것을 나중에 알게 되었다.)

몇 번이나 밤을 새운 것처럼 시간이 느리고 고통스럽게 흘렀지만 신기하게도 아침에는 개운했다. 다행히 아침 무렵에는 모기들도 쉬는것 같았다. 화장실에 가니 모기 수십 마리가 앉아 있었다.

해돋이 농장에서의 첫 아침을 맞는다. 오늘은 주말이라 일은 없지만, 아침 7시쯤 다같이 모여서 체조를 한다. 양팔을 돌려 점점 큰 원을 만들다가 한팔을 위로 뻗고, 다른 한팔도 뻗고, 팔을 내리며 교차해 가슴에 양 손을 올리는 등의 동작을 태양이 떠오르는 동쪽부터 시작해 동서남북을 바라보며 반복한다. 체조의 의미는 전혀 모른채로 주변 사람들을 곁눈질 하며 따라한다. (한참 후에야 이 체조가 "할렐루야"를 뜻하는 율동기도[Eurythmy Body Prayer]라는 것을 알게 된다.)

체조가 끝난 후에는 식당으로 돌아와 빵, 쌀가루 죽, 시리얼, 바나나 잼, 오렌지 잼 등을 먹었다.

조금씩 해돋이 농장에 대해서 파악하고 있다. 알고 보니 지금 여기서 지내는 사람의 90% 이상이 나와 같은 단기 봉사자였다. 여기에 정착했다고 할 만한 사람은 시몬프란체스코 정도인데, 시몬은 이 농장을 실질적으로 소유하고 운영하고 있는 사람이고, 프란체스코는 장기간(거의 2년) 여기에서 봉사자로 지내는 중이었다. 해돋이 농장은 생명역동농법(Biodynamics Agriculture)을 가르치고 실천하는 곳이었는데, 프란체스코는 시몬의 제자라고 할 수 있겠다.

여기서 간단히 농장 사람들을 소개하겠다.

  • 시몬: 50대 남성. 키가 크고 마름. 해돋이 농장의 개척자. 어렸을 적 스위스의 생명역동농법 공동체에서 자람. 만능 재주꾼. 외부 강연을 통해 수입을 얻어 농장 사람들을 먹여 살림.
  • 시릴: 20대 초반 남성. 시몬의 아들. 아르헨티나에 거주. 시몬의 농장을 방문해 잠시 머무는 중.
  • 프란체스코: 30대 남성. 이탈리아계 브라질인. 키가 작고 다부진 체격. 이탈리아에서 교사 생활을 하다가 돌아와 생명역동농법을 배우는 중.
  • 그라지: 30대 후반에서 40대 초반 여성. 브라질인. 키가 작고 마른 체격. 자녀 두 명과 함께 해돋이 농장에 2개월째 체류중.
  • 라일라: 10대 중반 여성. 그라지의 딸. 아버지가 누구인지 모름.
  • 지미(지미트리): 6살 남성. 그라지의 아들. 아버지는 포르투갈인.
  • 루나: 20대 후반 여성. 칠레인. 등 전체가 문신으로 덮여 있음. 항상 잘 웃음. 1개월째 체류중.
  • 다니엘: 30대 남성. 포르투갈인. 대머리이지만 수염을 기름. 박식하고 다재다능함. 색소폰 연주. 짧은 기간 동안 그라지와 연인이 됨.
  • 엔지: 20대 후반에서 30대 초반 여성. 흑인계열 브라질인. 오랫동안 버스킹을 했음. 프란체스코와 연인이 됨.
  • 샬린: 20대 초반 여성. 프랑스인. 짧은 기간 동안 시릴과 연인이 됨.
  • 줄리아노: 20대 후반에서 30대 초반 남성. 고릴라처럼 덩치가 큰 백인-원주민계열 브라질인. 기타 연주. 마리네즈와 함께 몇개월 째 여행 중.
  • 마리네즈: 20대 후반에서 30대 초반 여성. 예쁘고 요리를 잘함. 줄리아노와 연인.
  • 오스카: 30대 남성. 콜롬비아인. 자전거를 타고 9개월 째 여행 중. 몸통이 없는 일렉기타 연주. 

다들 친근하고 분위기가 좋아 보여서 나만 신참인줄 알았는데, 다니엘, 엔지, 샬린, 줄리아노, 마리네즈, 오스카도 나보다 겨우 하루나 이틀 먼저 도착했을 뿐이었다.

아침을 먹고 꽤 긴 시간 동안 회의가 이어졌다. 새로 온 사람들이 많아서 일을 배정하느라고 그런 것이다. 나는 지붕씌우기(roofing)와 도구 청소 및 수리를 배정받았다. 

다니엘이 조금씩 통역을 해 줄 때도 있었지만 전반적으로 포어를 한 마디도 못 알아들었기 때문에 미팅이 지루했다. 시몬의 아들 시릴에게 끈으로 팔찌 만드는 법을 배워, 회의 시간 내내 팔찌를 만들었다. 얼마나 오랫동안 머물 계획이냐는 질문에는 한두달 정도라고 대답했다. 지내다 보면 언어도 일도 어떻게든 되겠지.

밖으로 나가 농장을 둘러보니 바나나 나무가 가득했다. 닭과 병아리들이 보였고, 개 두 마리와 어른 고양이 두 마리도 있었다. 내일이 라일라 생일이라고 그라지가 어디서 아기 고양이를 얻어와서 고양이가 하나 늘어났다.

오후에 프란체스코가 사람들에게 점성술(Astrology)을 가르쳤다. 생명역동농법에서는 별자리를 매우 중요하게 생각하고 농사에도 반영하기 때문이다. 사람들은 열심히 강의를 들으며 질문도 하고 메모도 했지만 나는 강의를 알아들을 수가 없어서 아쉬웠다.


내가 오기 전에 아이들과 함께한 창작활동인것 같다.

생명역동농법으로 기른 순수 유기농 바나나

아침과 저녁마다 모여서 율동기도를 하는 장소. 질리지 않는 아름다운 전망이다.

건물 뒷편

건물 입구. 생명건축(bio-construction)이라는 친환경적인 방식으로 지었다.

지저분한 건물 내부

지난 밤 연주회가 열렸던 모임 공간

벽면에는 교육 자료가 정리되어 있고 칠판에는 낙서가 가득하다.

버려진 오븐

소뿔은 생명역동농법의 재료로 쓰인다.

버려진 오븐

나중에 심기 위해 파파야 씨앗을 따로 모아 두었다. 개미들이 바글바글하다.

봉제인형 위에 앉아있는 수십마리의 모기

잔반통을 뒤지는 고양이

시릴에게 배워 만든 첫번째 팔찌

새로 온 아기 고양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