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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일주/브라질

브라질 해돋이 농장: 애벌레, 선인장, 제시카 (여행 262-264일째)

2017년 4월 6일 목요일

1. 오늘은 구아바 벌레와 선인장의 날인 듯하다. 작은 구아바 하나에서 하얀 애벌레 열 마리가 나왔다. 먹다가 뱉은 부분에서도 몇 마리 나온걸 보면, 발견하지 못하고 먹어버린 애벌레도 분명 있을 것이다. 

내가 자꾸 벌레를 골라내자 제시카가 묻는다. “왜 벌레는 안 먹어?” 

나는 대답한다. “나는 채식주의자다. 벌레를 죽이고 싶지 않다.” 

그러자 제시카가 이렇게 말한다. “먹지 않아도 이렇게 과일에서 나오면 죽잖아?” 

맞는 말이어서 할 말이 없었다. 

(Simba: “Oh well, Hakuna Matata.”)


2. 오전에는 방치되어 지저분해진 화단을 없애는 작업을 했다. 나무 울타리를 제거하고, 무성하게 자란 커다란 선인장들을 옮겨 심었다. 시간은 잘 갔지만, 가시 때문에 힘들었다. 점심으로 시몬이 요리한 선인장 파이와 콩죽을 먹고 난 후에는, 손에 잔뜩 박힌 조그만 선인장 가시들을 바늘로 빼내느라 몇 시간을 소비했다. 그렇게 쑤셔댔는데도 빼낸 가시는 거의 없는 듯하다. 가만히 있으면 아무렇지 않고, 눈에 잘 보이지도 않을 정도인데도, 물건을 집을 때마다 따끔따끔 아프다. 하지만 한편으로는 절대 치명적인 통증은 아니기 때문에 어떻게 대처해야 할지 난감하다. <빙점>에 나오는 가시에 관한 내용이 떠오른다.

3. 도끼질 하다가 파편이 강하게 튀어 오른쪽 눈을 크게 다칠 뻔했다. 다행히 아프기만 하고 별 문제는 없었다. 

4. 카타리니(시몬의 어린 딸)가 포어 공책 표지를 보면서 너무 예쁘다고 칭찬했다! 이 그림은 뭐고 저 그림은 뭔지 하나하나 설명해줬다.

5. 제시카실베의 도움으로 포어 공부를 열심히 하고 있다. 제시카가 한국어 욕을 가르쳐달래서, 생각 없이 “씨발”을 알려줬는데, 너무 강하다는 생각이 들어 다시 “바보” 등의 약한 욕을 알려줬다. 제시카가 처음에 알려줬던 심한 욕(“씨발”)을 다시 알려달라고 졸랐지만, 그 단어를 소리 내 말하는 것도, 듣는 것도 싫어서 거부했다. 그러자 삐져서 “안 알려주면 농장을 떠나겠다.”라며 어린아이처럼 고집을 부렸다. 

6. 엔지는 저녁식사를 따로 하더니, 사람들이 주방에서 없어질 때까지 다른 곳에 가 있다가, 설거지와 주방 청소를 하러 돌아왔다(오늘은 엔지가 주방 정리 담당). 정리를 도와주면서 얘기를 조금 나누었다. 엔지는 1년 4개월 동안 거리공연(busking)을 했다고 한다. 사람이나 차가 다니는 길에서 체조, 안 움직이기(하루에 3시간), 저글링 등을 했단다. 대단하다.

빵 반죽하는 엔지


2017년 4월 7일 금요일

1. 진보와 보수, 변화와 정체, 개발과 보존, 올드 앤 뉴, 여행과 정착, 흐름과 고임, 브라마-비슈누-시바, 음과 양, 좌측과 우측. 결국 대립하는 것들은, 새로운 무언가(혹은 이전의 어떤 상태)로 변화하는 힘과 현 상태를 유지하려는 힘으로 나뉠 수 있다. 이영도의 소설도 결국 그런 내용이었다. 이 두 군데 사이에서 균형을 잡아야 한다. 스님처럼 사는 것, 필요한 최소한의 소비만 하며 살겠다는 것은 “보수”이자 “현상유지”이고, 음식을 먹을 때 새로운 요리를 개발하거나 맛집을 찾아다니는 것, 즉 무언가 불필요한 것에 소비하는 것은 “변화”의 힘이고 다양성을 만들어 낸다. “문화”라고 불리는 춤, 노래, 그림, 게임, 의상, 장식, 스포츠, 문학 등은 모두 생존에는 불필요한 “초과소비”이면서 단순함을 벗어나려는 변화의 힘이다. 이 변화로의 힘이 무생물을 생물로 만들고, 단세포 생물을 복잡한 동식물로 만들었지만, 반대로 정체의 힘을 받아 변하지 않고 유지되고 있는 무생물과 생물들도 있다. 창조도 파괴도 변화라는 동전의 양면이다. 콘크리트 구조물을 만들려면 시멘트, 자갈, 모래를 파괴해야 한다. 어떤 것도 파괴없이 생산되지 않는다. 생산은 곧 파괴이다. 우리의 노동(생산력)이 곧 울타리의 파괴와 나무의 파괴였으니, 파괴는 곧 생산이다.

2. 오늘은 철거한 나무울타리에서 못을 제거하는 일과, 인터넷 위성 주위에 쇠격자울타리를 설치하는 ""을 했다.

3. 제시카가 “어제 어린이(지미)처럼 굴어서 창피하고 미안하다”며 사과했다. 내가 욕을 가르쳐주지 않고 냉정하게 대한 것을 계속 신경 쓰고 있었나보다. 이제 21살인 친구인데, 내가 너무 높은 기대를 가지고 너무 차갑게 한 게 아닌가 싶다. 

4. 저녁에는 주먹밥을 먹으며 차를 마셨는데, 다 먹고 나니 제시카가 “사실 음식이랑 차에 대마초 가루를 조금 넣었어”라고 한다. 뭐라고?

지붕 위에서 작업하는 실베와 아래에서 놀고 있는 카타리니

오븐에서 나오는 것은 뭐든 맛있다.


2017년 4월 8일 토요일

토요일마다 있는 주간 회의에서 여러 안건이 나왔다. (내용은 정확히 이해할 수 없었지만.)

1. 음식: 그레놀라를 먹는 것에 대한 얘기. (너무 많이 먹는다는 얘기인가? 궁금했지만 물어보지 않았다. 여기 그레놀라는 정말 맛있다.) 루나가 빵과 쌀 등 흰 곡식 음식을 먹지 않는 것에 대한 얘기.

2. 연극: 부활절을 기념해 연극을 준비하기로 함. 괴테의 <초록뱀과 예쁜 백합>이라는 이야기(괴테 환상 동화). 제시카는 부활절 전에 떠나는지 연극에 참여하지 않는다고 함.

3. 묵언수행: 요가 제시카와 실베는 다음주에 말을 안 하기로 함.

4. 설거지: 얼마 전부터 설거지 및 주방 청소 담당을 정해놓고 있는데, 내가 매번 다른 사람들을 도와준다는 얘기가 나와서, 나는 다음 주까지 설거지 및 주방 청소가 금지됨.

아름답고 맛있는 빵

토요 공동묘지 탐험대

뉴 제시카, 라일라, 제시카, 자파카(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