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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일주/브라질

브라질 해돋이 농장: 부활절 달걀 꾸미기와 묵언수행자들 (여행 265일째)

2017년 4월 9일 일요일

우와, 긴긴 하루였다. 마치 명상센터에서 하루를 보낼 때처럼, 어떻게든 시간이 흘러가 주기만을 바랐다. 

부활절을 기념하여, 묵언수행을 시작한 2인(아르헨티나 제시카실베)과 어린이들(라일라지미)과 함께 버스를 타고 카타리니네 집을 방문했다. 카타리니는 9살난 시몬의 딸인데, 평일에는 칼레비와 함께 해돋이 농장에 와서 지내다가 주말에는 엄마네 집에서 지낸다. 

나는 포르투갈어를 못하고, 동행한 어른 둘은 말을 안 해서, 어린 라일라가 버스 기사에게 목적지를 얘기하고, 돈을 내고, 어른들을 인솔하는 웃기는 광경이 연출되었다. 

카타리니 엄마네 집에 도착하니, 아이들은 모두 자고 있어서 조용했다. 우리 일행도 조용했다. 내가 왜 여기에 와 있는지도 모르는 채로 가만히 앉아 있었다. 

카타리니가 잠이 덜 깬 표정으로 인형을 껴안고 나오더니 소파에 누웠고, 칼레비도 방에서 나와 (평소와는 다르게도) 얌전히 돌아다녔다.

아줌마(카타리니 엄마)가 이웃집에 가서 우유와 양파껍질을 얻어오라고 했다(-고 라일라가 말했다). “em silêncio(침묵 중)”라고 적힌 팻말을 목에 건 실베제시카, 그리고 유일한 의사소통가능자 라일라를 따라 이웃집 농장으로 갔다. 

새로운 사람들을 만날 때마다 라일라가 “이 두 사람은 지금 말을 안하고 있고요, 저 사람은 한국인이에요.”라고 설명했다. 

이웃집에서는 양파껍질이 잔뜩 있다며 잘 왔다고 반겨줬다. 이야기 하는 동안, 이웃집의 정원과 텃밭과 창고를 구경하며 기다리다가, 물건을 받아 돌아왔다.

이번에는 아줌마가 앞뜰에서 적당한 크기의 약초 잎을 뜯어 오라고 한다. 왜 그러나 봤더니, 달걀에 꽃이나 잎을 올려 못 쓰는 스타킹으로 고정시키고, 그것을 양파껍질 끓인 물에 삶아, 꽃과 잎사귀 모양이 달걀 껍데기에 남게 하기 위한 것이었다. 달걀이 삶아지고 나서 스타킹을 벗기니 너무 예쁜 무늬가 새겨져 있었다. 아이들도 좋아했다.

원래 이 ‘부활절 활동(달걀 꾸미기)’만 하고 돌아올 예정이었던 것 같다. 그런데 비가 와서, 걸어 돌아갈 수 없었고, 꼼짝없이 저녁 버스를 기다려야 하는 상황이 되었다. 집구석에는 할 일도 없었을 뿐만 아니라 어른 세 넷이 들어가 있기에는 좁았다.

대화는 안 통하고, 비는 내리고, 초대받지 못한 손님이 너무 오래 머무는 것 같은 느낌이 들었기 때문에 시간이 고통스럽게 천천히 흘렀다. 

아이들과 놀아주면서 시간을 보낸다. 지미를 목마 태워 돌아다니다가 너무 힘들어 비에 젖은 앞뜰의 나무 틈으로 숨었다. 일종의 숨바꼭질 놀이가 된 것이다. 지미가 날 찾는 걸 포기하고 돌아갈 때까지 비를 맞으며 숨을 죽이고 웅크려 있었다. 

이상하게 오줌이 자꾸 마려워서, (마치 정글 같이 커다란) 마당의 우거진 수풀 뒤쪽에서, 흐르는 빗물 속에 오줌을 흘려 보냈다.


헤르만 헤세의 <싯다르타>를 다시 읽으며 많은 것을 느낀다. 수행자의 금욕이 아니라, 사람들의 일상적인 욕망과 삶에 진리가 있다는 것. 달라이 라마성 프란체스코가 아닌, 그라지(라일라지미의 엄마)가 보여주는 ‘한 어머니의 모습’, 실베와 제시카가 일찍 일어나 일과를 시작하는 모습, 아이들이 노는 모습 속에 진리가 있다는 것, 그리고 그 무엇보다 사랑이 중요하다는 것을 느끼고 있던 중인데, 그 내용이 책에 잘 표현되어 있다. 옛날에 읽었을 때에도 많은 감동을 느끼고, 좋은 책이라고 생각했었는데, (명상도 여행도 해보지 않았던) 그 땐 어떤 면에서 그리 느꼈을까?


몸이 가렵고, 벌레가 귀찮고, 젖고 냄새나는 옷이 찝찝하고, 실내화 냄새는 지독하다. 왠지 방어적이 되는 것 같다.

집에 갈 때가 된 것인가? 떠날 때가 되었나? 

영원한 안식은 없는 것인가? 

그 신비로운 미소를, 배고픔과 가려움 속에서도 지을 수 있을까?


카타리니 엄마네 집

지미와 개

아직 조용하고 어두운 아침

아침 일찍부터 남의 집에 와서 실례는 아닐까

방에서 나와 우울한 표정을 짓는 카타리니

묵언의 2인방 사이에서 행복해진 카타리니

칼레비, 카타리니 엄마, 라일라

이 사진을 보면 웃지 않을 수가 없다.

심각한 칼레비

나무 위의 실베

실베와 투칸(왕부리새)

꽃과 잎을 스타킹으로 고정시킨 달걀

재활용 화분들

사랑스러운 아이들

이웃집의 개

이웃집 호박

이웃집 화분 장식

얻어온 양파껍질과 함께 삶는다

완성! 너무 예쁘다.

간소하지만 맛있는 밥

소스템플에서 봤던 그림

돌로 열매를 깨먹은 흔적

실베와 노는 강아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