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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일주/브라질

브라질 해돋이 농장: 도랑파기, 동물놀이, 폭포 소풍 (여행 273-275일째)

2017년 4월 17일 월요일

[1] 묵언수행 3인방(루이스, 실베, 제시카)은 폭스바겐 콤비를 타고 포르투 알레그레(Porto Alegre)에 볼일을 보러 갔다. 그동안 나와 엔지, 프란체스코, 프랑코는 도랑을 팠다. 빗물을 가둬두는 곳이다. 60-70cm 너비에 80-100cm 깊이로 땅을 파서 죽은 나뭇가지를 채워 넣었다. 널널하게 작업했다.

[2] 벼룩으로 들끓는 옷을 비누로 빡빡 문지르며 ‘벼룩만 없었으면-’하고 생각한다. 웃긴 건, 한 달 전에는 ‘모기만 없었으면-’이라고 생각했고, 그 전에는 ‘목에 담만 없었으면,’ ‘혓바늘만 없었으면,’ ‘따뜻한 신발만 있었으면,’ ‘잠 잘 곳만 있었으면-’이라고 생각했다는 것이다.

(즉, 지금은 담이나 혓바늘이 없고, 따뜻한 신발과 잠 잘 곳이 있다는 것!)


2017년 4월 18일 화요일

[1] 똥 범벅이 된 칼레비의 바지를 물로 씻어내고, 똥으로 막힌 배수구를 뚫었다.

[2] 시몬의 주도로 ‘동물놀이’를 했다. 각자 한 동물씩 정해서 그 동물처럼 행동하며 실내 마당을 돌아다녔다. 파충류, 조류, 원숭이 고양이 등이 소란을 피우고 싸우고 울부짖고 서성거렸다. 나는 다람쥐가 되어 다른 동물들을 피하며 소리 없이 돌아다녔다. 마지막에는 ‘눈 마주보기’와 ‘안아주기’를 했다.


2017년 4월 19일 수요일

[1] 벼룩이 없어진 것 같은데 아직은 확실하지 않아 지켜보고 있다. 벼룩 발생 이후로 개와 고양이들을 피해왔는데, 시몬이 “(고양이 몸에 약을 쳤으니) 고양이를 가까이하고, 자주 방에 데리고 가라-”고 한다. 살고자 하면 죽고 죽고자 하면 사는 이치와 같은 것이다. 벼룩을 겪어보고 나니 모기 정도는 아무것도 아니라는 생각이 든다.

[2] 오전에는 라일라, 실베와 함께 페인트칠을 했다. 카우(Cal)라는 가루를 물에 풀면 뜨거워지는데, 그 액체를 벽에다 칠하는 일이었다. 페인트 붓을 흠뻑 적셔서, 벽의 갈라진 검은 틈에 푹푹 뿌려야 한다.

페인트칠을 하면 쓸데없는 생각을 많이 하게 된다. ‘역시 인생은 게임과 비슷한 것이고, 우리는 어려서부터 그저 놀이를 하고 있다...’ 적어두고 싶을 정도로 재밌는 생각들이 많이 떠올랐지만 지금은 기억나지 않는다.

[3] 점심 식사와 청소 후에 폭포에 놀러가기로 했다. (엔지와 프란체스코를 제외한) 모두가 루이스의 콤비에 우르르 올라탔다. 

루이스가 운전석에 앉고 나와 프랑코가 앞좌석에 앉았다. 루이스에게 콤비 가격이 얼마냐고 물어봤다. “이런 차는 1000헤알(당시 환율로 36만원)이면 살 수 있을 거야. 하지만 나는 그 가격에 차를 팔 생각은 없어. 이 콤비는 3000헤알은 받아야 해,” 라고 루이스가 대답했다. (루이스가 27살, 프랑코가 32살이라는 것을 알고는 충격을 받았다.)

목적지에 도착해 차에서 내렸다. 숲길을 조금 걸어가니 폭포가 나왔다. 남자들은 웃통과 신발을 벗었다. 여자들은 웃통과 바지를 벗었다. (속에는 비키니가 있었다.) 모두들 미끈한 바위에서 미끄럼을 타고, 커다란 물웅덩이에서 수영을 했다. 

전체는 자연스럽게 몇 개의 부분으로 나누어졌다. 사랑이 싹트기 시작하는 실베와 라일라는 풋풋했고, 연륜이 있는 프랑코와 그라지는 이미 뜨거웠다. 루이스는 제시카에게 적극적으로 접근했다. 나와 루나는 어색했다. 시몬은 아이들(지미, 카타리니, 칼레비)을 돌봤다.

마른 바위 위에서 몸을 말리다가, 루나, 제시카, 루이스, 프랑코, 그라지와 함께 산길을 통해 계곡 상류로 올라갔다. (올라가는 길에 '파란색 고추'를 봤다. 야채 색깔치고는 정말 특이하지만 먹어보니 괜찮았다.) 폭포가 시작하는 상류에 도착하니, 시몬과 아이들이 있는 아래쪽은 보이지 않았다. 햇볕을 받으며 나무처럼 움직이지 않고 서 있으니, 제시카가 가만히 다가와서 껴안고 볼에다가 입을 맞추고 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