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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일주/볼리비아

볼리비아 수크레: 볼리비아 사람들 (306日)

2017-05-20 토요일

[1] 밤새 앓아누으며, 혹시나 누가 이 방에 체크인하지는 않을까 불안해했다. (공용 방인데 다른 손님이 없어서 나 혼자 쓰고 있었다.)

설사 기운이 있어서 방귀를 낄 때도 조심스럽게 끼고, 배를 어루만지며 몸을 달래다가, 신호가 오면 변기통에 앉아 똥물을 쏟아내고, 찬물로 엉덩이를 닦고, 다시 누워서 낑낑대다가, 계속 누워 있자니 자세가 불편하고 허리가 아파서 잠시 앉았다가 다시 눕기도 했다. 

똥을 몇 번 더 쏟아내고 빈속이 된 후에는 상태가 좀 나아져서 핸드폰 후레시를 켜고 책을 읽었다. 피를 마시는 새. 하늘누리가 폭주하는 정신없는 부분을 읽을 때에는 내 상태도 정상이 아니어서, 죄다 귀찮고, 힘들고, 죽음을 떠올리게 되고, 여행이니 관광이니 하는 것도 무의미하다는 생각이 들고, 집에 있었으면 괜찮았을까 하는 의문도 들었다.

그러다가 아침이 되자 목은 좀 텁텁했지만 머리는 맑아졌고, 배는 고픈건지 아픈건지 쓰라렸지만 식욕은 돌아왔다. 그래서 다음에는 어디로 갈지 도시들과 숙박비를 조사할 만큼 의욕이 되살아났다.

[2] 시내를 쭉 관통해 걸으며, 환전하고, 슈퍼마켓에 들러 빵 쇼핑을 하고, 텅 빈 교회에 들어가 본다. 처음으로 수크레에서 맑은 하늘을 본다. 이제는 익숙해진 좁은 인도를 따라, 빽빽한 자동차들 사이로 걷는다.

오늘따라 눈에 많이 띄이는 서양인 여행객들이 왠지 얄밉다. 아침에는 커다란 오토바이로 여행하는 뉴질랜드 사람들을 만났는데, 굵고 낮은 목소리가 왠지 허세로 가득차 보이고 귀에 거슬렸다. 부유한 나라에서 왔기 때문에 삐딱하게 보게 되는 걸까? 실제로는 나와 별다를 것 없는데 말이다.

반면 볼리비아 사람들에 대해서는 커다란 경외와 존경과 미안함을 느낀다. 다섯 살쯤 되어 보이는 쪼그만 남자애가 저글링을 하면서 구걸하는 것, 시장에서 가판대도 없이 가위를 몇 개 들고 서서 팔고 있는 아저씨, 알록달록 빛나는 플라스틱 장난감을 잔뜩 들고 있는 상인.

길모퉁이에서 쪼그리고 앉아 과자를 팔고 있는 어린 여자는 너무나 피곤하고 우울하고 힘든 표정을 하고 있어서, 내가 할 수 있는 거라면 뭐든지 해주고 싶은 마음이 든다.

군것질하는 꼬마들, 골목마다 있는 야채장수, 과일장수, 아이스크림 장수, 과자 장수. 어쩜 이렇게 당근, 바나나, 귤, 파인애플, 감자 파는 사람이 많은지. 다들 하루에 얼마나 벌런지. 수많은 얼굴들과 모자들, 등에 둘러멘 보자기, 주름살, 검게 탄 피부, 바구니, 옷 수선하는 기계들. 다들 어찌나 치열하게 살고 있는지! 그래도 가끔 옆에 있는 사람과 뭔가 얘기하며 웃는 모습은 행복해 보인다.

이 모습을 보고도 어찌 빈둥거리며 내 보고 싶은 것, 듣고 싶은 것, 먹고 싶은 것, 느끼고 싶은 것만 찾아다닐 궁리를 할 수 있겠는가.

과연 부유한 나라에서 태어났다는 이유로, 자신이 노동으로 만들어 낸 가치보다 훨씬 과대평가된 돈을 싸들고 와서, 이 나라의 가난한 사람들보다 더 많이 쓰고 누리며 즐기며, "여긴 참 살기 좋은 곳이다"라고 말할 수 있는걸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