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브라질 해돋이 농장: 벼룩, 부활절, 연극 (여행 266-272일째) 2017년 4월 10일 월요일비가 온다. 먼 하늘에서 번개가 번쩍번쩍 거리더니 비가 온다. 어제도 오더니 오늘도 온다.지금은 停電. 번개가 치더니 결국 정전이다. 꼬마 아이들은 무섭다는 듯 소리 지르고 난리를 부리지만 실제로는 즐거운 것 같다.밤새 긁적긁적 벼룩에 시달려서인지 아침부터 침울했다. 이불을 털다가 하나 이상의 벼룩 시체를 발견했다. 침대보에는 잠결에 때려잡은 모기가 피를 잔뜩 묻히고 죽어 있었다. 모기와 벼룩. 침울하다.칠레에서 바텐더를 하던 우아하고 예쁜 루나(Luna). 농장에서 누군가와 로맨스가 생겨야만 했다면 그 대상은 루나였을 것이다. 그런데 오늘 아침 루나의 얼굴이 달랐다. 무슨 벌레에 물렸는지, 음식을 잘못 먹어서 알레르기 반응이 있었는지는 모르겠지만 얼굴 한쪽이 팅팅 부어서 완..
브라질 해돋이 농장: 부활절 달걀 꾸미기와 묵언수행자들 (여행 265일째) 2017년 4월 9일 일요일우와, 긴긴 하루였다. 마치 명상센터에서 하루를 보낼 때처럼, 어떻게든 시간이 흘러가 주기만을 바랐다. 부활절을 기념하여, 묵언수행을 시작한 2인(아르헨티나 제시카와 실베)과 어린이들(라일라와 지미)과 함께 버스를 타고 카타리니네 집을 방문했다. 카타리니는 9살난 시몬의 딸인데, 평일에는 칼레비와 함께 해돋이 농장에 와서 지내다가 주말에는 엄마네 집에서 지낸다. 나는 포르투갈어를 못하고, 동행한 어른 둘은 말을 안 해서, 어린 라일라가 버스 기사에게 목적지를 얘기하고, 돈을 내고, 어른들을 인솔하는 웃기는 광경이 연출되었다. 카타리니 엄마네 집에 도착하니, 아이들은 모두 자고 있어서 조용했다. 우리 일행도 조용했다. 내가 왜 여기에 와 있는지도 모르는 채로 가만히 앉아 있었다...
브라질 해돋이 농장: 간지럼, 바나나 심기, 목성 (여행 255-256일째) 2017년 3월 30일 목요일. 맑고 뭉게구름.간밤에는 온몸이 너무 간지러워서 긁고, 긁고, 긁었다. 무슨 나쁜 벌레에 물렸나 걱정했다. 모기장에 몸이 엉키고, 상반신이 모기장 밖으로 빠져 나오는 등 엉망진창으로 밤을 보냈다. 밤새 잠을 설쳤는데도 아침에 일어날 때는 피로감이 없고 상쾌했다.아직도 여행 시작할 때의 예산과 거의 비슷한 돈이 남아 있다. 약 680만원. 하고 싶은 것을 하고 가고 싶은 곳에 갈 수 있는 돈이다. 다시 길을 떠나고 싶기도 하지만 여기서 좀 더 배우고, 익숙해진 일들을 계속 하고 싶기도 하다. (하루하루 뭔가를 배운다. 어제 배운 곡괭이 수리는 오늘 대형 낫 수리할 때 써먹었다.)새로운 패턴(다이아몬드)으로 팔찌를 만들었다(다른 사람들이 가르쳐 달라고 했다). 일기장에 사수자리..
브라질 해돋이 농장: 물구나무서기, 풀 베기, 별자리 포즈 (여행 253-254일째) 2017년 3월 28일 화요일오전에는 프란체스코와 함께 밭에다 ‘물이 뚝뚝 떨어지는 호스’를 설치했다. 호스에 뚫린 조그만 구멍으로 물이 조금씩 새어 나오기 때문에 온종일 밭에 지속적으로 물을 공급할 수 있다. 이스라엘에서 나온 시스템이란다. 호스 설치 후에는 생강 밭 근처에서 잡풀을 제거했다. 가시달린 풀들 때문에 따끔거려서 소심하게 조금씩 했다.오후에는 루나에게 팔찌 만드는 방법(두 줄씩 사선으로 내려가기)을 알려주고, 케이크와 빵을 잔뜩 먹고 낮잠을 잤다.저녁 의식 전, 아직 햇빛이 밝고 찬란할 무렵, 전망 좋은 남쪽 공터에서 검은 고양이 루앙과 사진을 찍고 서로 몸을 비비면서 놀고 있는데, 엔지, 프란체스코, 루나가 나타났다. 셋이 풀밭에서 ‘머리대고 물구나무서기’ 연습을 하기에 나도 가서 동참했..
브라질 소스템플: 마지막 날, 줄리와의 데이트 (여행 229일째) 2017년 3월 4일 토요일 22:30브라질 소스템플. 낮에는 구름과 햇살. 밤에는 비가 많이 내림.[1] 드디어 마지막 날이다! 너무 금방 지나가 버린 2주일이었다. 적응했다 싶으니 떠날 때가 되는구나. 누군가에게 말을 잘 했으면 돈을 내지 않고 지금처럼 봉사자로 더 오래 머무를 수도 있었을 테지만, 약속되어 있는 곳들도 있고, 무엇이든 끝은 있는 법이니, 감사하는 마음을 끝을 맞이하자.[2] 오전의 요가와 만트라 모임이 끝나고, 게스트하우스에 다들 모여 팬케이크를 만들어 먹었다. 그 후에는 줄리와 함께 돌멩이 목걸이를 만들었고, 라져와 케이시와 셋이 프리스비를 했다. 따뜻한 햇살이 내리쬐는 초록빛 잔디밭에서 산책나온 강아지들처럼 신나게 놀았다.[3] 오후에는 피터와 함께 독서 모임에 가기로 약속이 되..
브라질 소스템플: 폭포, 개미, 구아바, 이름놀이 (여행 227-228일째) 2017년 3월 2일 목요일저녁식사 전. 시계 고장. 비가 한바탕 내림.[1] 가만히 눈을 감고 복구에 의식을 집중하면 배의 빵빵함이 느껴진다. 사실 거의 하루 종일 배가 빵빵하고 (식욕은 있지만 배가 고프지는 않다) 먹을 것이 냉장고에 가득하지만, 에밀리와 케이시를 핑계로 항상 배부름을 유지하며 많이 먹고 있다. 줄리와 비슷하게 생활한다면 훨씬 적게 먹을 것 같다. 그래도 지금은 먹자. 먹을 수 있을 때 잔뜩 먹자.[2] 점심 식사 후, 라져와 케이시의 '영적인 길'과 '깨달음'에 대한 얘기를 가만히 들으면서, 아는척 하고 싶은 욕심과 대화의 중심에 있고 싶은 욕망이 내 안에 건재함을 느꼈다.[3] 오후에는 폭포(Cachoeira do Pimenta)에 가 보기로 했다. 폭포 쪽으로 내려가는 길에 많은..
브라질 소스템플: 언덕 등산, 담배와 헤로인, 바위와 독수리 (여행 226일째) 2017년 3월 1일 수요일브라질 소스템플. 오후 7시 50분.소스템플. 컨티뉴엄 학생들의 "기부"가 없으면 얼마나 지속 가능할까?이제 이곳을 떠나 포르토 알레그레(Porto Alegre) 근처의 다른 공동체로 이동할 계획이다. 일요일까지는 여기에 머무르는 것이 좋을 것 같다.오전에는 낙엽쓸기(raking)와 숲 속 건물 화장실의 페인트칠 위에 약품을 덧칠하는 일을 했다.점심을 먹고 낮잠을 자다가 케이시와 함께 산에 오르기로 했다. 이전부터 "산에 한번 가야지, 가야지-" 하다가 떠날때가 다 되어서야 가게 되는구나.소스템플의 농지를 지나서 들판으로 난 길을 걷다가 덤불이 점점 무성해지는 숲속으로 들어갔다. 대나무 숲과 개울을 지나고 진흙탕을 건너니, 다시 태양이 내리쬐고 풀이 무성한 들판이 나왔다. 풀들..
브라질 소스템플: 라져와 농장일, 유료 강의, 케이시와 폭포 명상 (여행 224-225일째) 2017년 2월 28일 화요일.브라질 소스템플. 맑음. 오전 6시 40분.2월도 끝이군.어제는 식당에서 한시간 청소하고, 농장에서 세시간 동안 낙엽, 잡초, 박스 잔해 제거하는 일을 했다. 농장에서는 라져와 함께 일을 했다.라져는 힘도 좋고 성실해서 아주 듬직한 일꾼이었다. 그런데 라져는 강렬한 태양과 수레의 무게 때문에 땀을 무척 흘리며 힘겨워했다. 덩치가 커서 힘은 좋았지만 그만큼 체력이 빨리 고갈되는 것 같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라져는 뺀질거리지 않고 열심히 일했다.쉬는 시간에 라져가 나에게 오더니, "너는 체력이 정말 좋구나. 나는 농장일이 너무 힘들어. 농장일을 배정받지 않았으면 좋겠어"라고 말했다. 나는 오히려 라져의 체력과 힘에 감탄하고 있던 터라 라져의 말을 듣고 조금 놀랐다. 나는 겸손..
브라질 소스템플: 루드비아, 줄리, 매리, 찬양 모임 (여행 220-223일째) 배경음악: Hare Krishna Hare Rama2017년 2월 25일 토브라질 소스템플. 흐림. 오전 11시 20분.일기를 쓰는 것도, 사진을 찍는 것도 잊어버리고 있다. 이 좋은 곳, 좋은 분위기 속에서 한없이 정체되고 싶은 기분도 든다.목요일에는 루드비아(루디)와 신(新)예루살렘에서 잡초를 제거하고 화초에 물을 주는 일을 했다. 일이 쉬웠고, 루드비아와 일하는게 좋아서 시간이 금방 갔다. 루드비아는 나에게 어떤 일을 시킬 때마다 공손하게 부탁했고, 일이 끝날 때마다 기쁜 표정으로 감사의 말을 했다. 루드비아가 틀어놓은 잔잔하면서도 경쾌한 음악이 루드비아와 잘 어울렸다. 루드비아는 신이나면 깡총깡총 뛰었다. 오후에는 줄리가 게스트하우스에 새로 들어왔다. 줄리는 조그만 독일 여자애였다. 원래는 나와 ..
브라질 소스템플: 새로 만난 친구들과 심술쟁이 염소 (여행 216일째) 2017년 2월 19일 일요일브라질 소스템플(Source Temple)소스템플의 대문을 열고 길을 따라 들어갔다. 넓은 부지의 왼쪽으로는 작은 숲이 있었고, 오른쪽으로는 개울과 언덕이 있었다. 정면으로는 완만한 언덕을 따라 길이 이어졌고, 길 옆으로는 물을 모아두는 호수가 보였다. 호빗골같이 평화롭고 한가한 분위기를 풍기는 연둣빛 언덕에는 낮은 목조건물들이 듬성듬성 들어서 있었다. 입구 근처의 단층 목조건물에 설치된 해먹에 누워있던 남자가 나에게 인사를 했다. 리노라는 레바논 출신 친구였다. 2주 전에 나처럼 봉사자로 들어왔고, 이제 2주의 봉사기간이 끝났지만 이곳이 마음에 들어 학생으로 등록하고 더 지낼 예정이라고 했다. 리노는 내가 묵을 숙소를 알려주고, 다른 봉사자들과 학생들을 소개시켜 주었다. (..
브라질 히치하이킹: 소스템플 가는길 (여행 216일째) 2017년 2월 19일 일요일브라질 우바투바(Ubatuba) - 쿠냐(Cunha) - 소스템플(Source Temple)소스템플은 세계일주를 시작하기 전부터 관심을 갖고 있던 곳이다. 소스템플의 헬프엑스 프로필(바로가기)에 달린 수십 개의 리뷰에는 "기쁨이 가득한 공동체", "놀라운 경험", "아름다운 사람들" 등의 수식어가 달려 있었고, 하나같이 별표 다섯개가 달려 있었다. 소스템플을 거쳐간 봉사자들은 그들의 아름답고 충만했던 경험을 이야기했고, 나는 그 글들을 읽으며 환상을 키웠다. 오늘 바로 그곳으로 가는 것이다.하지만 문제는 교통편. 나는 오늘 오후까지 소스템플에 도착하기로 되어 있는데, 마르쿠스네 가족은 우바투바에서 며칠 더 머무를 예정이어서, 이곳을 빠져나갈 교통편이 없는 상황이다. 이런 걱정..
영국 옥스포드 헬프엑스 마감: 지옥의 밤과 과대요리 (여행 200일째) 진정으로 선한 사람은 끝까지 저 똑바른 길을 걸어가려고 애쓴다. 길을 반쯤 가다가 기운을 잃어버리는 것, 그것을 우리는 두려워해야 한다. - 중국 금언 (톨스토이, 인생이란 무엇인가)2017년 2월 3일 금요일영국 옥스포드(Oxford)[1] 지옥의 밤: 어젯밤 영감님은 어깨 통증 때문에 신음하면서 잠 못들어 하더니, 계속 침실 밖으로 나갔다 들어왔다 했다. 나는 괜히 신경을 건드리지 않으려고 꼼짝 않고 누워서 자는척 했다. 깨어 있으면서 미동도 하지 않고 누워 있는 것은 말로 표현할 수 없을 만큼 괴로운 일이었다. 잠이라도 들었으면 좋겠는데, 영감님의 뒤척거리는 소리 때문에 신경이 곤두서 잠이 오지 않았다. 고통스러운 밤이었다. 내가 지옥에 떨어져 실시간으로 벌을 받고 있는게 아닌가 하는, 절망적으로 ..
영국 옥스포드 헬프엑스: 미스터 손과 영감님 (여행 199일째) 2017년 2월 2일 목요일영국 옥스포드(Oxford)[1] 오늘 한 일: 우유 사가기, 설거지, 온실 입구 닦기, 나뭇잎 쓸기, 침구류 빨래 널기.[2] 미스터 손: 영감님은 헬프엑스(helpx) 외에 카우치서핑(couchsurfing) 손님도 받고 있다. 보통 헬프엑스는 일을 도와주는 대신 좀 더 오래 머물고, 카우치서핑은 대가 없이 손님으로 머무는 대신 기간이 좀 짧다. 몇 개월 전에 영감님 집에서 카우치서핑을 했던 '손'이라는 남자가 어젯밤 다시 방문해서, 1번집에서 영감님과 함께 잤다. 덕분에 나는 2번집에서 혼자 편하게 잘 수 있었다. 조금씩 내리는 비를 맞으며 1번집으로 가서 영감님과 아침식사를 준비했다. '손'은 늦게 일어났다. '손'이 일어난 후에 처음으로 만나 인사를 나누고, 다같이 아..
영국 옥스포드 헬프엑스: 천장 청소, 이야기 박물관, 마지막 책가게 (여행 198일째) 2017년 2월 1일 수요일영국 옥스포드(Oxford)[1] 천장과 지붕 사이: 오전에는 1번집 2층 천장과 지붕 사이의 공간에 사다리를 타고 올라가, 마스크를 끼고, 한손에는 후레시, 한손에는 빗자루를 들고, 토끼 걸음으로, 천장장선(들보)을 따라 이쪽에서 저쪽으로 왕복하며, 거미줄을 제거하고 먼지를 털었다. 꽤 재미있었다. 그 다음에는 주방과 거실(TV방) 카페트를 청소기로 밀었다. 오후에는 2번집으로 가서 한국인 박사 하숙생이 나가고 그리스인이 새로 들어올 방을 2시간 동안 청소했다. 벽, 천장, 나무문, 책상, 의자, 창틀을 닦고, 벽의 얼룩을 제거하고, 청소기를 돌렸다. 오늘도 원래 일을 안하는 날인데 일을 하긴 했지만, 영감님 기분도 괜찮았고, 일도 재미있게 했다.[2] 이야기 박물관: 청소가..
영국 옥스포드 헬프엑스: 계속되는 노예생활 (여행 197일째) 2017년 1월 31일 화요일영국 옥스포드(Oxford)배경음악: Dave Greenslade - Cactus Choir[1] 작업: 가스레인지 윗부분 청소, 주방 수납장 청소, 창고 물 샌 것 받은 통 비우기, 사다리 꺼내서 윗부분 솔질하는 것 보조, 욕실 바닥 청소, 수프와 케이크 만드는 것 보조.[2] 새우버거: 오후에는 어떤 인도쪽 계열 남자(아마도 네팔)가 차를 타고 왔다. 남자는 맥도날드 새우버거를 건네주고 영감님과 얘기를 하다가 갔다. 점심으로 그 새우버거를 반으로 갈라 영감님이랑 나눠 먹었다.[3] 성폭력: 케이크를 만들면서 설탕을 저울에 계량하는데, 그램수가 정확히 맞나 확인을 하던 영감님이, 갑자기 기분이 좋아졌는지 나를 껴안으면서 몸을 비볐다. 명백하게 거시기를 내 왼쪽 허벅지에다가 ..
영국 옥스포드 헬프엑스: 2번집 화장실 청소와 늪지의 새들 (여행 196일째) 2017년 1월 30일 월요일영국 옥스포드(Oxford) / 흐림, 약한 비[1] 꿈과 여행: 꿈에서는 반 친구들이 졸업 기념으로 다들 밖으로 나가 사진을 찍고 있는데, 나만 혼자 딴짓을 하다가 늦게 돌아와서 창밖으로 사진 찍는걸 내려다보며 허둥지둥 내려갈 준비를 한다. 머리가 이상하게 삐직삐직 산발이라 어찌할 줄을 모르고 있는데 친구 한 명이 옆에서 도와준다. 아- 중고등학교 친구들은 어떻게 지내는지. 나는 무슨 대단한 우정과 모험을 찾아 여기에 와 있는지. 그래도 새 소리는 아름답다. 새장에 갇힌 새들이 아닌 야생의 새들이 내는 소리다.[2] 청소와 쿠키: 아침을 먹고, 건물 주변 이곳 저곳의 물 고인 것을 바가지로 퍼낸 후, 혼자 자전거를 타고 2번집으로 이동했다. 2번집에서는 어제 영감님이 지시해..
영국 옥스포드: 온실 빗방울, 산책, 존재, 이븐 바투타 여행기 (여행 195일째) 2017년 1월 29일 일요일영국 옥스포드(Oxford) / 하루 종일 비[1] 온실: 온실 천장에 떨어지는 빗소리. 빗방울 수천 개가 무작위로 유리에 부딪히고 있는데, 어떻게 이렇게 타닥타닥 일정하고 규칙적인 리듬이 느껴지는 건지. 데이브 영감님은 팔이 아프다며 온실 소파에 누워 깜빡깜빡 졸고 있다. 저렇게 누워 있는 모습을 보면 늙어가는 아빠의 모습이 겹쳐진다. 영감님은 비틀즈(1960)와 스타워즈(1977)의 출현을 목격했다고 한다. 그리고 당시 존재하지도 않았던 나에게 그 당시의 이야기를 들려주고 있다. 먼 훗날 나도 노인이 되어, 지금 존재하지도 않는 아이에게, 포켓몬(1996)과 해리포터(1997)의 시대에 살았던 얘기를 들려주게 될까?[2] 산책: 영감님과 강을 따라 산책을 했다. 작년인가 ..
영국 옥스포드: 과학 역사 박물관, 애쉬몰리안 박물관, 영국식 건물들 (여행 194일째) 2017년 1월 28일 토요일영국 옥스포드(Oxford)[1] 마법의 램프: 며칠 전 영감님이 궁금한 게 없냐고 물어봤을 때 깨달은 것처럼, 눈 앞에 신이 앉아 묻고 싶은게 없냐고 물어본다고 해도 이 순간에는 묻고 싶은게 없다. 마찬가지로 지금 내 손에 마법의 램프가 있다고 해도, 바라고 싶은 소원이 없다. 나만의 아름다운 농장도, 수백 명의 미녀도, 몇 십 억이 든 통장도, 순간이동 능력도, 그저 그 순간일뿐 아무것도 바꾸지 않는다는 것을 깨닫고 있다. 무엇을 택하겠냐고 물어본다면, 그저 이 침대에 앉아 일기를 쓰며 오늘 하루 일어날 일들을 겸허히 받아들일 준비하는 것을 택하겠다. 지금 이대로.[2] 성희롱: 데이브 영감님이 희미한 성적 암시를 담고 있는 농담을 할 때나 신체 접촉을 할 때마다(특히 뒤..
영국 옥스포드 헬프엑스: 모닝티, 이야기 박물관, 죽음과 불안 (여행 193일째) 네가 여태까지 사랑하지 않았던 사람, 오히려 비난했던 사람, 나에게 악한 짓을 한 사람을 사랑하도록 노력하라. 만일 네가 그리할 수 있게 된다면 너는 지금까지 전혀 몰랐던 멋진 기쁨의 감정을 경험하게 될 것이다. (톨스토이, 인생이란 무엇인가)2017년 1월 27일 금요일영국 옥스포드(Oxford)[1] 모닝 티: 일어나자 마자 데이브 영감님이 차를 끓여달라고 하신다. 우선 주방으로 가서 물을 끓인다. 물이 끓는 동안 주전자를 준비하고 머그컵에 우유와 설탕과 사카린을 적당량 넣는다. 우유는 1.5 센티미터 정도, 설탕은 두 세 스푼, 사카린은 한두 알. 너무 많아도 안되고 너무 적어도 안된다. 물이 끓은 후에는 찻주전자에 뜨거운 물을 조금 부어 한 번 헹궈낸 후, 티백을 넣고 뜨거운 물을 붓는다. 2분 ..
영국 옥스포드 헬프엑스: 파트너십, 마사지, 작업, 자석 답안기 (여행 191-192일째) 네 눈길을 기만의 세계에서 돌려라. 그리고 오관의 유혹을 물리쳐라. 오관은 너를 기만할 것이다. 오히려 너 자신 속에서, 자아를 망각한 너 자신 속에서 영원한 인간을 찾아라. - 부처의 금언 (톨스토이, 인생이란 무엇인가)2017년 1월 25일 수요일영국 옥스포드(Oxford)[1] (09:35) 어젯밤 자기 전 데이브 영감님이 기분이 별로라고 해서 이유를 물어보니, 첫째로는 추워서, 둘째로는 내가 내향적이어서라고 대답했다. 그 대답이 내 마음에 안 들었는지 잠이 안 들어 한시간에 한 번씩 시계를 확인하며 불편하게 밤을 새웠다. 잠을 설쳤다고 해서 아침에 피곤해지지는 않았지만, 어제와 무드가 달라진 영감님을 보고 있자니, 먼 옛날 여자친구 기분 맞춰주던 생각이 나며 급격히 피곤해진다. 떠나고 싶다. 하지..